▶ 탐구
성영은 |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나노 촉매 설계로 차세대 에너지 연구의 길을 열어온 성영은 교수의 성취는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든 결과다. 해당 연구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전기화학 촉매를 연구해 온 그에게 왜 이 분야를 택했냐고 묻자, “헷갈려서, 알고 싶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 ‘탐구’ 섹션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을 다수 보유해 상위 1% 연구자(HCR, Highly Cited Researchers)에 이름을 올린 서울대 사람들을 만나, 연구의 과정과 그 이면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성영은 교수의 PEEL(Photo & Electrochemical Energy Lab, 광전기화학 에너지 연구실)에서는 “이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소리가 자주 들려온다. 이곳에서 다루는 나노 분야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설계도를 그리는 것에 더해 입자를 배치하는 방법에 따라 성능이 확연히 달라지는 정교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연구는 늘 탐험과 같습니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시작했다가 좋은 결과가 나올 때면 엄청난 희열을 느껴요. 반대로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연구는 팀으로 하는 거니까 희로애락을 나누며 견디는 거죠. 이런 것들이 지난한 실험을 지속하게 만드는 동력이 됩니다.”
그의 주력 연구 분야인 촉매는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에너지 산’ 을 깎거나 터널을 뚫어 지름길을 만드는 물질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주목받은 백금(Platinum) 연구가 대표적이다. 백금은 반응 속도가 빨라 최고의 촉매로 꼽히지만, 지금까지도 왜 그런 효율을 보이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에 성영은 교수는 백금 입자를 더 작게 만들거나 다르게 조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며 연구와 실험을 거듭해 왔다. 이 과정은 2020년경 발표한 ‘과산화수소 합성 촉매 연구’로 이어졌다. 우리 몸속 효소 구조를 모방한 후 과학적 방법을 더해 발표에 힘입어 과산화수소 합성 촉매는 값비싼 백금을 대체할 친환경적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백금을 비롯한 다수의 촉매는 불순물을 발생시킵니다.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반면 과산화수소는 사용 후 물이 되기에 그럴 우려가 없어요. 그래서 반도체 공정을 비롯해 종이 제작 시 표백제나 우리 몸에 닿는 소독제 등 다양한 용도로 쓰입니다.”
실생활에서 명확한 쓰임새를 지닌 기술을 내놓은 것과 달리, 성영은 교수 연구의 출발점은 ‘모호함’이었다. ‘전자는 마이너스(-)를 띠고 있는데 왜 다른 한쪽은 양극(+)이라 부를까?’라는 의문이 발단이었다. 공부를 거듭할수록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여겼던 개념들이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 무심코 넘길 법한 지점에서 멈춰 선 그는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전기화학 연구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보통은 어렵고 복잡하면 안 하기 마련이지만 그는 분명히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흥미를 느껴서 전기화학을 전공한 게 아니었지만, 할수록 재미있더라고요”라는 말에 무게가 더 실린다.
이런 자세는 30년 넘게 한 분야 연구를 지속해 온 힘인 동시에 경로 수정마저 실패가 아닌 성장의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토대가 되었다. 미국 유학 시절, 모두가 동경하는 하버드대학에서 일리노이대학으로 옮긴 일을 꼽을 수 있다.
“하버드에서 2년 동안 원자현미경을 들여다봤는데 진짜 재미가 없었어요. 억지로라도 버티려고 했지만 도저히 안 돼서 그만뒀습니다. 인생에서 실패하는 것 같다는 두려움과 고민이 정말 컸죠. 하지만 이제는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자현미경 연구 역시 나노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요.”
수소를 흘리면 전기가 발생하는 막 전극 접합체. 중앙의 까만 부분이 백금으로, 연료전지자동차에 사용된다.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정직함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성영은 교수가 연구를 시작할 당시 비주류였던 전기화학이 리튬 배터리의 등장, 전기자동차 산업 급성장 등에 힘입어 주목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성영은 교수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문제가 과학으로 설명되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기계와 AI의 역할이 커질수록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덕분이다.
“좋은 연구는 결국 좋은 친구를 많이 얻는 여정입니다. 혼자만의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없으니까요. 제자들과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사실 기발한 발상은 대부분 젊은 연구자들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다양한 실패 사례를 알아 두었다가 가능성을 가늠하고 정리해 주는 것입니다.”
협업을 통해 다듬어진 창의적인 생각은 연구실을 넘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검증을 거쳐 인정받기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다.
“이제 우리도 남들이 해놓은 것을 빨리 따라잡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길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합니다, 될 수 있다고 믿고요. 다만 최초의 아이디어나 연구 결과는 늘 의심받고 거절당하기 마련이니 실망하지 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해요. 노벨상만 해도 남보다 더 좋은 수치를 내는 연구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길을 낸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수소 연료전지와 이차전지 등 차세대 에너지 시스템의 핵심인 전기화학 및 나노 소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나노 입자의 정교한 설계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실용적 가치를 정립하는 데 힘써왔다. 특히 백금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대체할 수 있는 촉매 원천 기술을 개발해 전 세계 에너지 공학 연구의 이정표를 제시했으며, 글로벌 학계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대한민국 전기화학 기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젊은과학자상(대통령상), 대통령 표창, 홍조근정훈장, 수당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한국전기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