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부자
이광우 회장(섬유공학과 73학번)
퇴직금 300만 원으로 창업해 4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이광우 전 스타일러스 회장이 모교에 총 20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아내 김추양 여사는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은 이루기 바라서 한 투자라고 생각했어요”라며 남편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이광우 회장은 1988년, 첫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 3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섬유공학 전공을 살려 사업체를 설립하고 해외 진출도 하는 등 부지런히 성과를 일구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때문에 스스로 은퇴를 선택한 후에도 해방이나 자유가 아닌 낯선 감정을 먼저 마주했다. “여생 동안 편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니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앞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더니 모교 후배들이 생각나더군요. 꿈은 있는데 상황이 안되는 젊은 친구들을 조금 도와주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줄 테니까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뿌듯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한 것은 기부가 아닌 투자예요.” ‘투자’라고 힘주어 말하는 데에는 이광우 회장 개인사가 얽혀 있다. 유학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나 무역회사에 입사하고도 살기 위해 사업가의 길을 택했던 아쉬움이다. 아내인 김추양 여사는 “제가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라면서도 남편의 결정을 담담한 말로 응원했다. “남편은 일찍부터 해외 생활을 동경했지만, 실현하기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매년 해외유학 비용을 지원하는 ‘이광우 글로벌 공학인재 양성 기금’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을 거예요. 저 역시 똑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줄 거라고 믿어요.”
“뒤를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았다”라고 스스로 말하듯, 이광우 회장은 요령 대신 원칙을 평생의 경영 밑천으로 삼았다. 여직원 한 명과 함께 의류수출업체를 설립해 해외 스포츠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와 곳곳에 매장을 열 만한 규모로 사업을 키우기까지 화려한 확장 대신 내실 있는 성장을 고수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직원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것이 사업가의 정석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출신들은 어떤 위치에 있든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무모한 도전보다는 안정과 원칙을 우선에 두는 것이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경영은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매달 월급날을 지키고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물론 그렇다고 돈만 좇은 것은 아닙니다. 그건 서울대인의 자존심을 저버리는 행동이니까요.” 안을 향한 책임감은 자연스럽게 바깥을 향한 나눔으로 번졌다. 사업 초기부터 수출용 옷 샘플과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물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전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부침을 겪기 마련이지만 이광우 회장에게는 당장의 어려움보다 ‘한번 시작한 일은 끝까지 해야 한다’라는 책임감이 더 컸다. 2020년 코로나19 당시 대구 시민들을 위해 2억 5,000만 원 상당의 물품을 기부한 것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런 책임감과 뚝심은 사업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 모교 기부라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단 하나, 공식적인 행사가 부담으로 여겨졌다. “더 많이 기부한 분들도 많은데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될까?”라던 이광우 회장을 돌려세운 건 아내 김추양 여사였다. 누군가 이 이야기를 접해 기부 결심을 한다면 좋지 않겠냐는 권유였다. 동시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죽마고우가 남긴 “존경한다”라는 한 마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훈장으로 남았다. “대학 시험을 같이 보고 기숙사 생활도 같이했어요. 대학 다닐 때는 서로 어려울 때마다 생활비를 나눠 쓰기도 했고요. 사회인이 된 후에는 각자 바빴지만 은퇴 후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병상에 누운 친구가 존경한다고 하니 그제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도’와 ‘책임’으로 일군 자산이 사랑하는 친구에게는 존경의 이유가 되고, 모교에는 미래의 씨앗이 된다는 사실은 은퇴 후의 공허함을 보람으로 바꿔놓았다. 그래서 더더욱, 이광우 회장은 후배들의 발걸음에 마음이 쓰인다. 지식의 깊이나 역량에는 걱정이 없으니 주변을 돌아보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서울대 학생들이라면 좀 더 이타적이 되어도 좋겠어요. 너무 자기만 생각하지 말고 주위도 살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자기 앞가림에만 급급해야 했던 각박한 시대는 지났잖아요. 필요하면 저 같은 선배들이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이고요. 그러니 후배들은 결핍이 아닌 호기심에 집중하며 세계 무대에서 마음껏 꿈을 펼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