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①

먹고 자는 공간에서
함께 사는 ‘마을’로

서은영 |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 관장(간호학과 교수)

6,500여 명의 학생과 40여 개의 건물이 어우러진 서울대학교 관악학생생활관은 그 규모만큼 역동적인 하나의 마을이다. 최근 이곳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삶을 나누고 배우는 ‘서울대형 RC(Residential College, 생활형 대학)’를 도입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취임 4개월 차를 맞은 서은영 관장을 만나 그가 꿈꾸는 행복하고 안전한 공동체의 청사진을 들었다.

잠만 자는 곳? 이제는 ‘삶’을 쓰는 곳

대학 생활관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일까? 관악학생생활관(이하 생활관)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 궤적을 좇다 보면 우리가 찾는 공간의 본질이 어렴풋이 보인다. 서은영 관장은 “한 방에 40~60명이 북적이며 살던 시절도 있었다고 해요. 어떤 교수님은 40인실에 배정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셨을 정도니까요”라며 그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수용 인원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과거의 모습이다. 이후 생활관은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2인 1실 구조를 중심으로 개편되었고 외국인 학생을 위한 복층형 공간과 소통 중심의 복합 커뮤니티 공간인 ‘LnL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주거 방식의 변화에 발맞춰 생활관의 정의와 역할 또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시작된 거대한 변화의 중심에 서울대형 RC(Residential College)라 불리는 ‘LnL(Living & Learning)’ 프로그램이 있다. 2022년 기획, 2023년 시범 운영을 거쳐 2025년 정식 출범한 LnL은 2026년 3월 906동, 919C·D동에 거주하는 신입생 560여 명(전체 신입생의 약 17%)이 참여하게 되는 주거-교육 통합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관악모둠강좌’와 ‘학생자율세미나’에서 학점을 이수하고 K-pop 댄스·DIY 향수 제작·꽃꽂이 등 다채로운 비교과 활동으로 각자의 관심사를 확장할 수 있다. 약 20명 내외의 소규모 모둠에는 대학원생 조교(프록터)와 학부생 멘토가 배치되어 생활과 학습을 밀착 지원한다. 수용 공간조차 빠듯한 현실에서 굳이 이런 프로그램과 시설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 관장은 확신에 찬 어조로 답한다.
“이곳은 단순히 먹고 자는 숙소가 아니라 서로 교류하고 삶을 나누는 ‘마을’입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싱가포르의 RC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깨달은 핵심은 결국 ‘함께하는 공간’이라는 점이었어요. 함께 토론하고, 그림을 그리고, 요리하며 자연스럽게 교류하는 것이죠. 실제로 공용 공간 유무에 따라 학생들의 공동체 의식과 반응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구체적인 사례에 대해 묻자 서 관장은 수첩에 붙여두었다는 LnL 이용 학생의 소감을 소개했다. ‘적당히 밥벌이하자는 목표에서 거대한 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대학 생활의 자세 전환.’ LnL의 존재 이유를 백마디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 페이지를 펼쳐 보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공간의 혁신, 마음을 돌보는 ‘관심(館心)’으로 이어지다

하드웨어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정서를 돌보는 시스템으로 이어진다. 서 관장의 안내로 방문한 919동은 이러한 ‘공유’와 ‘돌봄’의 철학이 시각화된 공간이었다.
“2인 1실 구조의 방 3개가 하나의 거실을 공유하는 ‘유닛형’ 구조인 919동은 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널찍한 공용 공간에서는 토론이 이뤄지고, 공용 주방에서는 학생들이 함께 요리하며 정을 나누죠.”
공간이 주는 활기 이면에는 학생들의 남모를 고민까지 세심히 살피는 ‘보이지 않는 돌봄’도 자리한다. 대표적인 것이 ‘생활관의 마음’이라는 뜻을 담은 ‘관심(館心) 상담센터’다. 전문 상담 인력이 상주하며 한 달 평균 340여 건의 상담을 진행해 학생들의 마음을 지킨다.
“아마 교내에서 대기 없이 가장 빠르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일 거예요. 조금 우울하더라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거나 운동을 하며 교류하는 이들은 위기를 훨씬 쉽게 극복하거든요. ‘함께하는 것’ 자체가 치유의 시작인 셈이죠.”

생활관을 행복하고
따뜻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면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서로 어깨를 기대면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

서은영 관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학생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직접 기획한다. ‘김창옥 TV’를 초청해 강연도 듣고, 생활관 축제인 ‘한울제’에서는 바비큐 파티를 열어 즐거운 추억을 선사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노후화된 생활관의 재건축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마그넷, 수건, 텀블러 같은 기념품을 제작하고 있어요. 5월 학부모 행사를 기점으로 1년 내내 후원금 모금도 대대적으로 진행할 계획이에요.”
학생들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고 품어 안으려는 관장의 열정이 대화 내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물이 따뜻한 온기를 머금으면 당장은 끓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끓어오르게 마련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온기로 안아준다면 그들의 삶도 그만큼 따뜻해질 거라 믿어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가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지 알거든요. 훗날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이 아이들이 좋은 영향력을 듬뿍 받았으면 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는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인터뷰를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 ‘학생들의 삶을 담는 공간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충분히 들은 듯했다. 생활관이 유난히 따사롭게 느껴졌던 것은 결코 날씨 덕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서은영 교수에게 질문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최소한의 몸부림

“맹목적인 생존 대신 ‘삶의 의미’를
묻는 본질적인 질문은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빚어내기 위한
한 인간의 가장 숭고한 몸부림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스스로 묻는 사람만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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