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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 우 재 료 공 학 부 교 수 &
신 자 경 디 자 인 학 부 공 예 과 교 수
인류의 역사는 재료를 발견하고 그 성질을 길들여온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료공학이 물질의 근원적 법칙을 규명하며 기술의 진보를 이끌어왔다면 금속공예는 차가운 물질에 질문과 예술적 숨결을 불어 넣으며 가치를 창출해 왔다.
각각 공학과 예술 분야에 속하지만 재료공학과 금속공예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공학의 데이터와 예술의 상상력이 만나 서로의 한계를 자극하며 새로운 기술적 가능성을 열고 있다.
이경우 교수저는 금속공예와 재료공학의 뿌리가 같다고 봅니다. 과거 대장장이들이 감각에 의존해 물건을 만들었던 전통을 미학적으로 이어가는 분들이 공예가라면, 그것을 수치화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게 기계화한 것이 재료공학이죠. 예전에는 저희 과 교수님들이 금속공예과에 가서 주조나 용접 기술을 강의하기도 했을 만큼 두 분야는 밀접합니다.
신자경 교수교수님 말씀처럼 규모에는 차이가 있지만, 재료공학부에서 실험에 사용하는 장비를 공예과에서도 실제 작품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분야는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자경 교수지난 학기에 건축학 전공 학생이 물성을 잘 모르고 아주 용감한 디자인을 해온 적이 있어요. 금속판을 단순히 구부리는 게 아니라 S자로 매끄럽게 연결하는 형태였죠. 저희 과 학생들이라면 애초에 시도하지 않았을 디자인인데, 그런 낯선 시도가 오히려 새로운 공정을 고민하게 했습니다.
이경우 교수그게 바로 상호작용의 묘미입니다. 저 같은 공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상상에 제약을 두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예술가들이 “이거 안 될까요?”라고 물으면 70%가 한계였던 연신율을 어떻게든 높여보려고 새로운 합금을 배합하거나 냉각 온도를 바꿔보는 등의 실험을 하게 되죠. 결국 서로의 상식이 부딪힐 때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것 아닐까요?
인류 문명은 불의 온도를 높여 토기와 청동기, 철기를 차례로 만들어온 기술적 진화의 과정이다. 정밀한 계측을 할 수 없었던 장인들은 경험과 노련한 감각으로 위험한 쇳물을 길들여 수많은 위대한 유산을 빚어냈다.
이경우 교수인류는 본래 나약한 존재였지만, 불을 제어하기 시작하며 비로소 동굴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불의 온도가 600℃를 넘어서며 토기가 나와 신석기 시대가 열렸고, 900℃에서 청동기, 1300℃ 이상에서 철기가 탄생했죠. 인류가 불의 온도를 한 단계씩 끌어올린 역사는 곧 물질의 본질을 파고든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산업혁명이나 전기의 탄생 역시 재료의 임계점을 넘어서기 위해 더 높은 에너지를 다루고자 했던 집요한 시도들이 쌓인 결과물입니다.
신자경 교수교수님 말씀을 들으니 저희 작업실 풍경이 떠오르네요. 작가들에게 온도는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이거든요. 주조하려면 금속이 몇 도에서 녹는지 정확히 알아야 기계를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가령 철은 1400℃ 이상에서 녹지만, 실제 작업할 때는 1500℃까지 온도를 올립니다. 가마를 떠나 붓는 찰나에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변수까지 계산하는 거죠.
이경우 교수1500℃라는 수치가 공학적으로도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철은 탄소 농도에 따라 녹는 점이 제각각이라 제어하기가 까다로운 재료거든요. 온도계도 없던 시절에 오직 불의 색깔과 쇳물의 점도만 보고 그 미세한 차이를 맞췄던 대장장이들의 노하우는 정말 경이로운 기술적 성취입니다.
이경우 교수저는 성덕대왕 신종을 꼽습니다.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20t 규모의 종인데, 이건 엄청난 기술의 집약체예요. 당시 우리나라는 구리 광산도 제대로 없어 여기저기서 시주받은 놋 그릇들과 오래된 작은 종을 모아 녹여 만들었거든요. 20t에 달하는 거대한 주물로 종을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인데, 그 속에서 아름다운 문양과 맑고 장엄한 공명까지 끌어낸 정교한 주조 기술은 세계 금속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성취입니다. 철저한 장인 정신이 빚어낸 예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죠.
신자경 교수최근 주철 작업에 매료되어 있어서 그런지 철이라는 재료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은(Silver)은 표면이 무르다 보니 작은 흠집 하나에도 완성도가 크게 좌우되어 늘 조심스러운데, 철은 투박하게 다뤄도 묵묵히 견뎌내는 맛이 있거든요. 특히 차가운 철이 빨갛게 달궈졌다가 말랑해지는 그 짧은 순간을 직접 제어하다 보면, 이 재료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스스로 묻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조형적인 해답들이 공예가로서는 아주 귀한 경험이죠.
공학과 공예는 재료에 새로운 존재 이유를 부여하며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질문을 던진다. 정답보다 ‘왜’를 묻는 집요한 정성은 기술의 한계를 넘어 우리 삶의 고유한 쓸모를 빚어낸다.
신자경 교수독일 유학 시절, 값싸고 질 좋은 공산품이 넘쳐나는데 ‘왜 나까지 또 만들어야 하나’라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기존에 없던 형태나 개념을 담아 사물에 새로운 존재 이유를 부여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버려진 은수저나 철 조각에 새로운 기능을 불어넣는 작업은 그 자체로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될 테니까요.
이경우 교수공학에서도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는 금 1g을 얻으려면 10t의 폐기물이 생기거든요. 은 역시 추출 과정에서 수천 배의 쓰레기를 남깁니다. 반면 철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재활용도 쉬운 재료죠. 현재 연구 중인 ‘수소 환원 제철’처럼 탄소 대신 물(H2O)만 배출하는 기술이 예술가의 상상력과 만난다면 재료의 가치는 더 높아질 겁니다.
신자경 교수기술이 뒷받침된다면 상상할 수 있는 폭도 넓어지죠. 가령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금속도 종이처럼 접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형상기억합금을 활용해 접어서 휴대하다가 뜨거운 커피를 부으면 다시 펴지는 컵 같은 것들이요. 이런 상상이 기술과 만나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쓸모가 탄생하지 않을까요?
신자경 교수서울대 학생들은 틀리는 걸 너무 두려워해서 정답만 말하려다 보니 질문을 아껴요. 하지만 공예 작업처럼 3D 프린터 버튼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서, ‘왜 안 될까?’를 묻고 응용하는 과정이 진짜 실력을 만듭니다. 레이저로 자른 티타늄의 거친 단면을 직접 손으로 매끄럽게 갈아내는 그 정성이 결국 사물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처럼요.
이경우 교수질문을 한다는 건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뜻이에요. 서 있는 지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고요. 제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끌어내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온 이유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직접 말하길 어려워할 뿐, 우리 학생들이 정말 많은 질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익명 게시판이나 메모지에 적어낸 질문들을 보면서 고민의 깊이에 매번 놀라거든요. 교수들은 언제나 학생들의 질문을 기다리고 있으니 정답에 갇히지 말고 마음껏 물었으면 좋겠습니다.
‘불의 온도로 인류사를 읽는’ 이경우 교수는 재료공학부 교수로 철강 제조 공정 및 단결정 성장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공학교육학회 부회장, 한국공학교육인증원 수석부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공학 교육 전반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한편, 서울대학교의 교양과 기초 교육 개선에도 힘을 보탰다. 인류 문명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관심으로 『문명 다시 보기』(공저)와 『문명의 오만과 문화의 울분』(공저) 등의 저술에 참여했고 불의 온도와 물질의 변천을 통해 인류의 진보를 읽어낸 『불, 에너지, 재료의 역사』를 펴냈다.
‘사물의 존재 가치를 빚는’ 신자경 교수는 디자인학부 공예과 금속공예 전공 교수로, 금속공예와 현대 장신구를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독일 뉘른베르크 미술대학에서 공부했고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사물이 가져야 할 본질적 가치를 탐구하는 작업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독일 하나우 금속공예박물관, 영국 런던V&A박물관, 독일 라이프찌히 그라씨박물관, 대한민국 서울공예박물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