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ople④
김민성 | 정치외교학부 23학번
배꼽시계가 분주한 식사 시간, 서울대 예술복합연구동 학생 식당 한편에서 십시일밥 봉사자들이 배식에 여념이 없다. 이들은 학식당 봉사로 받은 임금을 모아 식권을 구매해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건넨다. 공강 시간을 이용한 작은 노동이 또 다른 학생의 한 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3학기 동안 그렇게 전달된 식권만 1,898장에 달한다. 십시일밥의 나눔은 연민이 아닌 연대에서 비롯했다. 2023년부터 꾸준히 운영진으로 활동해 온 김민성 학생과 함께 캠퍼스 곳곳에 퍼져나가는 ‘밥의 온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공부에도 종류가 있다. 책상 앞에서 파고드는 공부가 있는가 하면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는 공부도 있다.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의 의미나 선한 마음으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가는 나눔의 가치는 책상 앞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김민성 학생은 이런 공부를 일찍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힘든 가정 형편으로 주변에서 대가 없는 도움을 받은 경험이 사회적 울타리의 힘을 깨닫게 했다. 대학에 와서는 그 나눔을 되갚기 위해 교육봉사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했지만 일회성에 그치는 한계를 느꼈다. 그러던 중 봉사와 경제 활동, 지원이 선순환하는 ‘십시일밥’을 알게 되었다.
“처음 십시일밥을 만났을 때 지속가능한 봉사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학생 식당은 바쁜 점심시간에만 잠깐 일할 사람을 구할 수 있고 봉사자는 공강 시간을 활용해 봉사 시간을 받을 수 있고 식권지원대상자는 식권을 지원받아 아르바이트하는 대신 공부에 매진할 수 있죠. 모두가 이익을 얻는 구조예요.”
코로나19로 멈춰 있던 봉사활동을 다시 살리기 위해 그는 직접 식당과 재계약을 맺고 봉사자를 새로 모집했다. 봉사자가 일한 임금은 단체 통장에 모여 식권으로 환원되었고 이렇게 모인 식권은 총학생회 홍보를 통해 선발된 학생들에게 등기로 전달되었다. 이렇게 복원된 십시일밥은 단순한 봉사를 넘어 지속가능한 나눔 플랫폼으로 서울대 안에 단단히 뿌리내렸다.
최근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는 점점 심화되고 있고 대학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대학 안에서는 ‘빈곤’이라는 문제를 직접 마주하기 쉽지 않다.
“만 18세부터 34세 청년의 빈곤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은 졸업 후 취업하지 못한 청년을 떠올립니다. ‘대학생의 빈곤’은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죠. 교복도 급식도 없는 대학생은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지만 그 부담을 겉으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없는 것이 아니라 숨길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와 시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김민성 학생은 학생회 활동을 하며 불평등의 실태를 더 가까이서 목격해 왔다. 신입생들이 입학 후 처음 참가하는 ‘새로배움터(새터)’ 행사에서도 저소득층 학생 지원이 이뤄지는데, 지원받는 학생 수가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고 한다. 옆자리에 있는 친구조차 대부분 서로의 사정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 안의 빈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돌봐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그 믿음은 십시일밥 운영의 원칙이 되었다.
“두 학기 동안 식권을 지원받던 학우가 봉사자로 돌아왔던 일이 기억나요. 그 학우는 자신이 받았던 지원이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연대’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십시일밥은 도움을 주고받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수평적 울타리를 지향한다. 식권은 ‘수혜자’ 대신 ‘식권지원대상자’에게 비대면으로 전달된다. 연대를 통해 서로를 지키되 개인의 사생활은 존중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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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0여 개 대학교에 걸친 십시일밥 네트워크 중 현재 봉사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6곳에 불과하다. 그중 서울대는 지난 학기 5만 시간의 봉사 시간을 기록하며 다른 대학보다 7배 이상 많은 실적을 쌓았다. 하지만 김민성 학생은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연대라고 강조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학생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봉사와 기부를 디지털화하려고 해요. 하지만 ‘확장’은 단순히 참여자 수를 늘리는 게 아니라 작은 연대가 더 큰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과정이죠. 한 사람의 참여가 또 다른 사람의 변화를 일으키고 그렇게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게 십시일밥이 꿈꾸는 미래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제도나 거창한 약속이 아니다. 공강 시간을 내어 친구의 한 끼를 책임지려는 마음, 밥 한 끼를 먹으며 또 다른 누군가의 부족함을 돌보려는 마음이다. 그 따뜻한 손길이 모여 오늘의 밥이 되고 내일의 연대가 된다. 십시일밥은 그렇게, 서로의 밥을 짓는 연대의 플랫폼으로 우리 사회의 온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회적 격차와 고립을 넘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해요.
연대가 자라나 서로의 삶을 감싸는 울타리가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