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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명 신 물 리 · 천 문 학 부 교 수 &
이 동 신 영 어 영 문 학 과 교 수
과학과 문학은 다른 언어로 세계를 탐구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본다는 지점에서 다시 만난다. 우주와 SF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물리·천문학부 임명신 교수와 영어영문학과 이동신 교수는 확장이란 서로 얽히며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 말했다.
과학적 발견은 문학에 새로운 상상의 재료를 제공하고, 문학적 상상은 과학자에게 연구의 동기를 부여한다.
로봇, 사이버스페이스, 메타버스 같은 단어들은 모두 SF(Science Fiction)에서 태어나 현실이 되었다.
임명신 교수저는 물리학의 다양한 분야 중 눈에 보이는 게 많은 천문학을 선택했습니다. 나노입자, 고체물리 등은 잘 안 보이는 세계를 연구하지만 천문학은 망원경으로 우주를 볼 수 있으니까요. 다만 우주의 약 95%는 볼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기술 진화와 함께 보이지 않던 것들을 발견하는 묘미도 큽니다.
이동신 교수SF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 가보지 못한 세계를 그립니다. 보이지 않는 걸 상상으로 만드는 거죠. 저는 과학과 연관이 깊은 포스트휴머니즘 이론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SF를 연구하게 됐습니다. 양자역학이나 천문학에 이어 요즘은 동물학 공부도 합니다. 기본기가 없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동신 교수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로봇’, ‘사이버스페이스’, ‘메타버스’ 같은 단어들은 다 SF에서 나왔어요. 사이버스페이스는 상용 인터넷이 거의 없던 1984년,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라는 작가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초기 컴퓨터를 보고 상상해서 만든 말이 몇 년 사이에 현실이 됐죠. 반대로 요즘은 과학이 문학에 엄청난 영감을 줍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상상은 이미 어느 정도 다 나온 것 같은데,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다면 그걸 소재로 다양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임명신 교수과학자로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과학자들도 SF에서 영감을 많이 받습니다. SF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개념을 접하면 ‘과학적으로 가능할까?’를 진지하게 따져보는 거죠. 그 결과가 연구 성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인터스텔라처럼 잘 만든 영화는 수업에 활용하기도 좋습니다. 블랙홀의 모습, 중력이 강한 곳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는 현상 등이 잘 구현되어 있거든요. 강의실은 물론이고 대중 강연에서 이해를 높이는 자료로 자주 활용합니다.
확장의 방법은 다양하다. 천문학은 우주를 더 선명하게 보려 하고,
문학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통해 상상의 경계를 넓힌다.
이동신 교수동물 연구를 많이 합니다. 그중 문어 연구가 흥미로워요. 뉴런의 약 2/3가 다리에 퍼져 있는 문어는 특정한 결정을 내릴 때 머리만이 아니라 8개 다리가 참여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예를 들어 다리 하나가 잘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번에는 네가 떨어져 나가”라고 하면서 역할을 재분배한다는 겁니다. 흔히 낯선 존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외계인을 꼽지만 일부 과학자는 바닷속에 가면 된다고 했어요. 그만큼 인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 지구에도 여전히 많다는 뜻입니다. 문어와 함께 SF에서는 요즘 거미도 중요한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거미줄을 쳐서 얽혀 사는 모습은 물리학에서의 ‘얽힘(entanglement)’1과 연결되기도 하고요.
임명신 교수양자 얽힘 개념이 나오니 반갑습니다. 저는 요즘 7차원 우주 탐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차원 공간에 시간, 밝기, 파장, 시선속도 등을 더한 7개의 매개 변수(parameter)로 우주를 이해하는 연구입니다. 사실 천체의 밝기나 색깔이 변하는 등 우주는 역동적인데, 지금까지는 기술의 한계 탓에 정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진을 찍어 별의 밝기나 색깔을 보는 정도였죠. 하지만 7차원 우주 탐사 연구가 진척되면 약 40개 색깔을 표현하는 고화질 동영상으로 우주를 보며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임명신 교수외계 생명체의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추론하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제가 가르치는 주제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원근감을 파악하려면 눈이 두 개는 있어야 하고, 중력이 센 곳에서는 다리가 튼튼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인간과 비슷한 모습이 나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형태의 생명체도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이동신 교수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상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SF에서 대부분의 외계 생물체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도 두 발로 걸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으로만 그려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SF의 진정한 사명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한계를 인식하고 문어나 거미 같은 낯선 생물에 대해 연구하며 상상의 틀을 깨려고 노력하는 거죠.
임명신 교수박사 후 연구원으로 있을 때 켁(Keck) 망원경2으로 우주를 관측했던 때가 떠오르네요. 50억, 60억 광년 떨어진 은하의 스펙트럼 자료가 컴퓨터 모니터에 들어오는데, 제가 그 은하의 모습을 처음 보는 인간이라는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전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것,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죠. 그래서 관측천문학에 더 매료됐던 것 같아요.
새로운 발견은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AI가 조합과 분석을 대신하는 등 인간 중심적 사고가 흔들리는 지금, 천문학과 문학이 던지는 질문은 더욱 중요해졌다.
임명신 교수질문을 던지는 주체는 여전히 인간이니 당분간은 가능할 겁니다. AI는 기존 자료를 조합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진 못합니다. 천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걸 바탕으로 질문을 던지는 건 인간의 몫입니다. AI가 궁금증을 품고 관측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동신 교수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과연 인간이 중심인 적이 있었을까요? 중심에 서려고 다른 존재들을 계속 주변으로 밀어냈다고 생각해요. 인류와 문명의 역사에서 그 과정은 대부분 폭력적이고 차별적이었죠. 그런데 동물 등 다른 존재가 없으면 우리가 ‘인간’일 수 없잖아요. 중심과 주변은 항상 쌍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다양한 존재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야 각자 외연을 넓힐 수 있어요. 지능이 높다고 한쪽이 다른 쪽을 배제하면 공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AI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찾을 때지 중심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임명신 교수우리나라는 쏠림 현상이 심한 편입니다. 천문학처럼 당장 돈이 안 되는 학문보다는 기술 발달을 주도하는 분야가 각광받죠. 하지만 시간을 들여 발견한 법칙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은 사례가 정말 많습니다. 주목받지 못하던 분야가 어느 날 갑자기 주류가 되는 일도 흔하고요. 그러니 빠르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다양한 학문이 가진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저희 같은 학자들이 더 열심히 해야겠죠.
이동신 교수문학은 특히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즘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한두 가지로 집중되잖아요. 전공이나 직업을 어떻게 선택했냐고 물으면 경제적 이유로 귀결됩니다. 휴대전화를 왜 새로 사냐고 물으면 “신형이니까, 새로운 색깔이 나왔으니까”라고 답하고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학문 연구만이 아니라 평소 생활할 때도 다시 한번 질문하고 뻔하지 않은 답을 낼 수 있게 만드는 게 문학, 나아가 학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50억 광년 너머를 관측하는 사람’ 임명신 교수는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관측천문학과 외부은하를 연구하고 가르친다. 다중신호 천문학 분야를 개척하며 중성자별 합병을 통한 금의 기원 연구에 기여했고, 초기우주 퀘이사 발견 등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7년 한국과학기자협회 올해의 과학자상, 2019년 한국천문학회 학술상, 2020년 서울대학교 학술연구교육상(연구부문)을 수상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묻는 사람’ 이동신 교수는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포스트휴머니즘, 현대 미국소설, SF 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인간-동물 관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론과 문학 비평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SF, 시대정신이 되다』 등의 저서를 펴냈고, 『갈라테아 2.2』를 번역했다. 「좀비 서사의 한계와 감염의 윤리」, 「망가진 머리: 인공지능과 윤리」 등 동시대 문제를 SF로 사유하는 논문들을 발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