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④

세상에 없던 질문을 던지다

김가람 PD(언론정보학과 06학번)

시청률이 보장되지 않는 공영방송 다큐멘터리를 15년째 만들고 있는 김가람 PD는 세상에 없던 질문들을 찾아 현장으로 향한다. 매뉴얼도 없고 정답이 없는 촬영 현장에서 그는 묻고, 듣고, 묵묵히 기록한다. 만들어진 장면들은 마음에 잔잔한 균열을 일으키며 새로운 생각으로 스며든다.

걸어서 세계 속으로, 그리고 다시 환경 속으로

수많은 팬덤을 확보하고 있는 여행 다큐멘터리,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제작 과정이 힘들기로 유명하다. 7대의 카메라를 짊어진 채, 기획부터 섭외, 촬영, 체험, 인터뷰, 편집, 내레이션까지 PD 혼자 도맡아야 한다. 덕분에 시청자들이 여행하는 PD의 시선을 따라가면 마치 자신이 직접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든다.
“2주 동안,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28개가 넘는 장면을 만들어야 했어요. 한 번 간 곳은 다시는 찾고 싶지 않을 만큼 진이 빠졌죠. 그러다 브라질의 산에서 드론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포기하려는 저를 데리고 현지인들이 덤불을 헤치며 4~5시간 동안 산을 수색해줬어요. 드론을 찾고 나서야, 산 너머로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출장자에서 ‘여행자’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죠. 시간도, 돈도,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환대와 우정이 너무 고마워서 1년 뒤 브라질을 다시 찾았어요. 그때는 진짜 여행자로요.”
2018년까지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누볐던 김가람 PD는 2020년 코로나 팬데믹 한복판에서 <생로병사의 비밀>**을 제작하며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주민의 3분이 1이 암에 걸렸다는 충북의 ‘암마을’ 촬영이었다. 1999년, 마을에 소각장이 생겼는데 지금은 면사무소를 기준으로 반경 2km 안에 소각장이 3개로 늘었다. 전국 소각시설 하루 처리용량 중 6.8%에 달하는 양을 매일 태우고 있다.
“소각장에서 정말 분홍색 연기가 올라오는 거예요. ‘한국에서, 그것도 21세기에 가능한 일인가?’ 생각하며 놀랐죠. 만약 여의도나 강남에서 분홍색 연기가 단 10분 만이라도 올라왔다면 어땠을까요?” 방송을 만들기 전까지 그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신뢰해 환경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이었다. 쓰레기 치우는 값은 지불했고, 종량제 봉투에 담아 분리수거까지 했으니 알아서 처리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깨끗함이 공장과 쓰레기장을 떠안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방송을 만드는 현장에서야 깨달았다. 그는 주저 없이 환경 전문 PD를 자처해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로 2022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 * <걸어서 세계 속으로> KBS1_2005.11.05. ~ 방영 중
  • ** <생로병사의 비밀>KBS1_2002.10.29. ~ 방영 중
  • ***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KBS 환경스페셜 KBS1_2021.07.01. 방송

어설픈 대안보다 불편한 진실을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는 2021년 7월 방송된 이후 입소문을 타며 관심을 끌었다. 풀 대신 버려진 헌 옷을 씹어 먹는 소들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김 PD는 “‘옷을 사지 말자, 소비를 줄이자’고 말하면서도 기업들은 매년 옷 생산량을 늘리고 있잖아요? 앞뒤가 맞지 않는 현실이죠”라고 말했다.
이야기의 주요 대상은 환경에 전혀 관심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김 PD는 자신의 작품이 기존 환경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을 설명했다.
“교양 다큐는 40~45분쯤 되면 희망찬 음악과 함께 대안이 나와야 해요. 독일을 배우러 간다든지, 미국을 배우러 간다든지 ‘이걸 해라, 저걸 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저는 어설픈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불편한 채로 남겨 두고 싶었어요. 역할을 거기까지 한정시키고 싶었죠.”

김가람 PD에게 전환은 낯선 시선을 받아들이는 연습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대화를 나누고 내가 주장한 생각이 틀렸다면
바꿀 수 있는 태도에서 전환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는 제도를, 목소리는 기업을 움직인다

환경 캠페인에서 흔히 범하는 실수는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개인을 공격하거나 ‘음식물을 남기지 말자’,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자’, ‘전기 플러그를 뽑자’ 같은 잔소리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초기에 조금 시도하다가 금방 패배감이 드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암마을에 갔을 때 한 분이 비닐로 싸서 배달되는 신문을 보여주시며 ‘이런 것을 만들지 말라고 방송에서 말해 달라’고 하셨던 게 기억나요. 프로그램을 보고 많은 시청자들이 활동가가 되어 주말 환경 행사에 나가기 시작하면 곧바로 사회의 정책이나 제도로 이어집니다. 소비자들이 기업 홈페이지에 남기는 댓글이 10개, 100개, 1000개를 넘어서면 기업이 변할 수밖에 없고요. 개인 생활 습관을 바꾸라고 강요하기보다 참여 목소리로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그는 ‘다큐 인사이트****’ 팀장이 되어 후배들의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팀에서 선보인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역시 불편하고 답도 없는 주제였다. 그는 공영방송 다큐멘터리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고 믿는다. 자극적인 논쟁에는 수많은 미디어가 몰리지만 사람들은 불편한 진실 앞에서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지금은 미약한 울림이겠지만 시간이 흘러 누군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파동이 된다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김가람 PD는 믿음을 더해 카메라를 든다.

  • **** <다큐 인사이트> KBS1_2019.10.03. ~ 방영 중. 인재전쟁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 2025.07.10, 07.27 방송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 나이지리아 전자폐기물 촬영 현장

<걸어서 세계 속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편’ 촬영 중 방문한 현지인의 집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헌옷집하장 현장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하루 종일
코발트를 캐는 4~5살 아이들을 촬영한 적이 있어요.
하루에 1달러를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기업가들이 아동 노동 착취를 정말 모를까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일을 공론화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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