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boratory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무늬가 전자의 움직임과
성질을 바꿀 수 있다면?

겉으로는 시각적 착시처럼 여겨지지만 과학계는 무아레(moiré) 현상이 전자의 움직임과 성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무아레 현상은 두 개의 규칙적인 무늬를 겹치고 살짝 비틀 때 나타나는 새로운 중첩 무늬를 의미한다.

무아레 격자 중첩으로
2차원 양자물질 플랫폼 구현

재료공학부 유효빈 교수 & 고등과학원 공동연구팀

이중 무아레 격자의 차세대 재료 플랫폼 가능성

고체 물질 안의 원자들은 대부분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전자의 성질이 거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핀(graphene)처럼 원자 한 층으로 이루어진 매우 얇은 2차원 물질 두 장을 겹친 후 비틀면 각 층의 원자 배열 사이에서 간섭이 일어나며 새로운 격자 구조인 ‘무아레 격자(moiré lattice)’가 형성된다.
무아레 격자는 기존 물질로는 구현할 수 없는 새로운 격자 주기를 인위적으로 설계하고 전자의 흐름과 성질을 정밀히 조절하게 한다. 양자기술과 차세대 전자소자 개발을 위한 새로운 재료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유효빈 교수 & 고등과학원 공동연구팀은 그래핀 세 층을 겹치고 각 층의 비틀림 각도를 정밀하게 조절해 두 개의 무아레 격자가 서로 중첩되는 ‘이중 무아레 구조(moiré-of-moiré lattice)’를 구현했다. 연구팀은 원자들이 스스로 안정된 배열을 찾아가며 형성하는 새로운 격자 패턴을 고성능 투과전자현미경으로 직접 관찰했고, 이전까지 보고된 적 없는 삼각형, 카고메(Kagome)*, 육각별 등 새로운 격자 패턴이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것을 발견했다. 세 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직접적·간접적 상호작용의 복합적인 결과로, 기존의 단일 무아레 구조에서는 보지 못했던 위계적 격자와 독특한 전자적 특성이 구성된 것이다. 연구팀은 한 층을 건너뛴 층들 사이에서도 비교적 약한 상호작용이 발생하며, 이것이 전체 구조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실험 결과와 모의실험을 결합해 어떻게 구조가 형성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했고, 비틀림 각도에 따라 어떤 격자 패턴이 나타나는지를 정리한 ‘도메인 격자 상태도’를 완성했다. 또한 상태도는 전자의 성질을 설계하는 지도와 같아서 앞으로 다중 무아래 구조를 연구하는 기초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다. 무아레 격자는 전자의 흐름을 조절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이번 연구는 겹침을 세 겹으로 확장하며 격자 설계의 자유도를 한층 높였다. 특히 층과 층 사이의 미세한 비틀림과 간섭만으로 물질의 전자 상태를 제어하는 가능성은, 외부 자극으로 성질이 달라지는 프로그래머블(Programmable) 재료** 개발로도 이어질 수 있다. 연구를 책임진 유효빈 교수는 “이중 무아레 구조에서 나타나는 위계적 격자 형성과 장거리 상호작용은 기존 재료 설계 방식과 전혀 다른 접근법을 가능케 한다”며 연구 결과가 차세대 전자기기와 양자기술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설계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 『네이처(Nature, IF 48.5)』 게재 -

  • * 카고메(kagome): 정삼각형과 육각형이 교차하는 격자 구조
  • ** 프로그래머블(programmable) 재료: 외부 조건에 따라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성질을 바꿀 수 있도록 설계된 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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