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boratory
일상에서 행동은 다양한 감각이 얽히고설킨 기억으로 이뤄진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은 뇌가 순간순간 필요한 정보를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능력 덕분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환경에서 뇌가 어떻게 ‘정보의 충돌 없이’ 기억을 유지하는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문제였다.
작업기억의 핵심 구조,
인간의 뇌에서 처음으로 확인
심리학과 이수현 교수 연구팀
우리가 냉장고 문을 열고 콜라를 꺼낼 때, 머릿속에는 분명히 ‘콜라’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처럼 어떤 행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머릿속에 잠시 올려두는 기능을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고 한다. 전화번호를 누르기 전 숫자를 기억하거나,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동시에 답을 생각하는 것도 작업기억의 작용이다.
심리학과 이수현 교수 연구팀은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있는 작업기억이 감각을 넘나들며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했다. 기존에는 작업기억이 시각, 촉각, 청각 등 각 감각에 따라 분리되어 유지된다는 것이 주된 이론이었다. 그러나 작업기억이 이런 형태로만 나타난다면 일상 생활 속에서 계속 들어오는 감각정보와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즉,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낼 때 ‘콜라’라는 작업기억 유지 때문에 실제 냉장고의 콜라를 보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원하는 콜라를 냉장고에서 꺼낼 수 있다.
연구팀은 작업기억이 감각에 따라 유지되는 것뿐 아니라 동시에 감각을 초월한 형태로도 존재한다는 신경학적 근거를 밝혀냈다. 실험 결과, 뇌의 상두정피질(superior parietal cortex)*이 시각과 촉각 등 감각의 종류와 무관하게 동일한 정보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 구조를 초감각형태 작업기억(supramodal working memory)이라 명명했다.
또한,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하두정피질(inferior parietal cortex)*** 에서는 감각이 섞여 있을 때만 활성화되는 교차감각형태 작업기억(cross-modal working memory)도 발견했다. 이는 특정 감각에만 의존하지 않고 감각이 혼재된 상황에서만 작동하는 독특한 구조다. 이 두 가지 기억 구조는 작업기억이 단일한 방식이 아닌, 조건에 따라 여러 처리 경로를 병렬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작업기억이 단순히 감각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감각형태와 교차감각형태로도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 구조는 어떻게 우리가 외부에서 여러 감각정보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원하는 행동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이 발견은 주의력 결핍, 기억인출 장애, 인지 제어 이상과 같은 뇌 기반 질환의 이해와 치료, 생각을 읽고 행동을 예측하는 차세대 마인드리딩 기술의 이론적 토대로도 확장될 수 있다.
-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5.7)』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