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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원 2025 상반기 Class-Up <Post Tool>
2025년 6월 6일부터 8일까지 68동 제1파워플랜트에서 Post Tool 전시가 열렸다. 시각디자인과 Chris Hamamoto 교수가 이끄는 수업 <Design Studio 21>에서 기획·운영하고 문화예술원이 주최·주관한 전시로 문화예술원의 ‘2025년 Class-Up 프로그램’에 선정된 프로젝트다. 국내외 작가 20명의 20개 작품과 아티스트 프로그램 3회로 진행했다.
디지털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 디자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기술을 연결하는 창조 언어가 되고 있다. 사람이 사용하는 도구들도 마찬가지다. 목적을 위해 사용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도구 자체가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관계 맺고 존재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디자인은 우리의 몸, 각자의 미학적 선택과 관점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춤을 통해 타이포그래피를 만들거나 무대 위에서 작업하는 동시에 결과물을 생산하는 경우처럼, 결과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인간다움’이 더 중요해지고 있는 이유다. 한편 일반인들은 예전과 달리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디자인 작품을 직접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끊임없이 고치고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디자인 도구들 역시 스스로 생각하고 실수하고 자동으로 작업하며 상황과 환경에 맞춰 변화하기도 한다.
이 현상을 2025 시각디자인과 석박사로 구성된 <Design Studio 21>과 지도교수인 크리스 하마모토(Chris Hamamoto)* 는 ‘Post Tool’이라 정의하며 이번 전시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통제자에서 공존자로 바뀌고 있는 지금, 그래픽 디자인은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깊은 존재론적 전환을 겪고 있는 새로운 실천 영역이라는 것이다.
* 크리스 하마모토(Chris Hamamoto) 디자인과 교수: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디자이너로 자동화와 알고리즘이 커뮤니케이션과 미학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독립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Printed Matter, Walker Art Center, 홍익대학교 등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강연했다.
<염증 안내서>, A4, Sunyao
<Cooperation(협동)>, 5m×1m×3m, StudioSpass
20개 작품은 네 개의 존(Zone)에 나누어 전시됐다. 존1은 우연성, 글리치(glitch)**, 예측 불가능성을 통한 ‘불안정성의 미학’, 존2는 디지털화된 세계에서 언어와 정체성의 변화를 다룬 ‘기호 체계’, 존3은 글로벌화된 시스템 속에서도 지역적 맥락을 유지하는 ‘문화 위치 찾기’, 존4는 공간적·상호작용적 차원으로 확장된 ‘확장된 지각’을 탐구하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관객들이 4개의 존을 오가며 포스트-툴 시대 그래픽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체험하게 했다.
그중 StudioSpass의 <Cooperation(협동)>은 서울대학교 학생들과 협력해 제작한 관객 참여형 프린트 설치 작품이다. 타이포그래피 종이를 여러 겹 겹쳐 격자 형태의 작품을 완성한 후 관객이 개별 시트를 떼어가며 설치 작업에 참여하게 했다. 시트가 제거될 때마다 시각적 풍경이 바뀌고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는 등 실시간으로 작품이 재구성되는 형식으로,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디자이너인지 참여자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로빈에그파이(Robineggpie)의 <@soldout_musinsa(2023 무신사 솔드아웃 팝업)>은 2023년 무신사 솔드아웃 팝업 전시를 재현한 것으로,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프로젝트다. 몰입형 공간 연출, 작업 맥락을 담은 서적과 굿즈를 접하며 관객이 작품을 ‘소유’하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
민구홍(Min Gu Hong) 작가의 <Min Guhong Manufacturing @2025(Introucing the Introduction)>은 NFC 칩을 활용해 디지털 웹 제품을 물리적 오브제로 확장했다. 관객은 NFC 칩이 탑재된 오브제에 휴대전화를 가져다 대며 웹과 물리 공간 사이를 넘나드는 새로운 방식의 ‘소개’를 경험할 수 있었다.
Sunyao의 <염증 안내서>는 일상 속 다양한 염증 반응을 탐구한 책이다. 재미있는 것은 책의 좌측 페이지에 한국어와 중국어를 결합한 그래픽 타이포그래피를 배치하고 우측에는 염증과 관련된 상세한 설명을 담았다는 점이다. 건강 정보 전달을 넘어 점차 획일화되는 그래픽 디자인의 흐름에 저항하고, 독자에게 시각적·감각적인 이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작가의 <한 마디, 한 구절>은 과거 디자인 실천에 대한 반성의 기록으로, 기존 작업물에서 이미지와 그래픽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오직 문자 정보만 남기는 ‘비(非) 이미지화’ 방식을 통해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읽는 시각’의 가능성을 재탐색했다.
이밖에도 미디어와 춤을 결합한 Luna Maurer의 <A danced commentary on the future of media and graphic design>, 시국선언 포스터 프로젝트 기록집인 Everyday Practice의 <시대정신>, 도시 시각 문화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다룬 Maki Suzuki의 <Fugu School>을 비롯한 20여 점의 작품은 포스트-툴 시대 그래픽 디자인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동시대 그래픽 디자이너들과 함께, 디지털 시대 속 디자인이 인간다움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탐색한 이번 전시는 관객들에게 도구와 인간, 통제와 공존이 교차하는 그래픽 디자인의 미래를 다시 상상하게 했다.
문화예술원 2025 상반기
Class-Up <Post Tool>
포스터
** 글리치(glitch): 픽셀 깨짐, 색 분리, 화면 왜곡 등의 ‘실패한 신호’를 의도적으로 재현해 디자인적 언어로 활용하는 표현 기법
<Min Guhong Manufacturing @2025
(Introucing the Introduction)>,
2m×1m×2m, 민구홍
<Fugu School>
7.5m×1m×1.7m, 7.5m×1m×1.7m,
Maki Suzuki
Artist Program: <dot-to-dot: 점잇기>,
Goeun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