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②

노래의 날개 위에,
운명의 힘*을 타고

조란 토도로비치(Zoran Todorovich) 성악과 교수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오페라로, 비극적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남자 주인공인 돈 알바로(Don Álvaro) 역으로 여러 차례 무대에 섰던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는 이 작품을 특히 좋아한다고 밝혔다.

엔지니어에서 오페라 가수로, 리릭 테너에서 드라마틱 테너로, 오페라 가수에서 연출가로. 음악의 세계로 발을 들인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는 한평생 ‘오페라’라는 주제 안에서 끊임없는 변주를 시도해 왔다. 그는 여러 방면에서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전환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중이다.

모두가 ‘전환’이었던 선택들

하나의 선택이나 경험은 점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지만, 시간의 궤적을 따라 이으면 인생을 보여주는 하나의 선이 된다.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생은 절대 우리가 세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죠.”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의 지난날 또한 삶의 방향을 바꾸는 크고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첫 번째는 항공기 엔지니어라는 길에서 벗어나기로 한 것이었다.
“군 항공기 연구소 엔지니어로 일하던 중 여자 친구의 권유로 합창단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년 후 음악이라는 길을 계속 가기로 했죠. 아버지는 반대하셨지만, 지금 생각해도 용기 있는 결정이었어요. 안정된 직장이 있는데 미래가 불투명한 일을 선택한 것이니까요.”
오디션을 통해 지역 오페라 극장 여러 곳에 합격한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는 가장 작은 오페라하우스에서 경력을 쌓았다. 작은 오페라하우스야말로 다양한 역할을 맡아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의 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예상대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은 안정적인 리릭 테너(Lyric tenor)로 활동하는 바탕이 됐다.
두 번째는 더 극적이었다.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맡은 역할과 자신의 목소리 사이의 불균형을 감지한 그는 해결책을 찾아 나섰다. 이탈리아 바리톤 브루노 폴라(Bruno Pola)로부터 두성이 아닌 온몸을 사용하는 완전히 새로운 발성법을 배우고 익혔다.
“새로운 발성법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예전과 완벽하게 다른 오페라 레퍼토리를 소화해냈죠. 오페라하우스에서 제게 오텔로, 돈 알바로와 같은 역할을 제안했고 이후로 20년 동안 오페라 가수로 계속 활동해 왔습니다.”

‘서울대학교’라는 새로운 가능성의 땅

세 번째는 무대 위를 떠나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기꺼이 응한 것이다.
“성악과 교수이자 바리톤 사무엘 윤 교수에게 권유를 받고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응했습니다. 유럽의 어떤 기관도 서울대학교만큼 놀라운 감동을 주지 못할 테니까요.”
그는 자신의 삶을 바꿨던 성악 기술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동시에,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가르치며 열정을 다한다. 그의 목표는 수줍음이 많지만, 열심히 하는 한국 제자들이 반드시 가진 재능을 펼치도록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게 돕는 것이다.
성대와 몸 전체를 이용해서 노래하는 기술, 30년간 거쳤던 무대 경험과 함께 학생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것은 ‘아하 모먼트(AHA moment)’라고 부르는 순간이다.
“아하 모먼트는 가수가 목소리, 감정, 음악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감동적인 순간인 동시에 성악가가 자신의 매력을 깨닫게 되는 순간입니다. 성악가의 풍부한 감성이 무대 위에서 객석까지 음파처럼 퍼져나가는 감동을 통해 성악가도, 관객도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게 되죠!”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를 위해 특별히 편곡된 푸치니 곡으로 꾸민 갈라 콘서트.
베오그라드 콘서트홀(Belgrad Concert hall)에서 세인트 조지 현악 오케스트라 (St. Georg string ochcestra)와 함께했다.

28년 만의 한국 초연, <장미의 기사>를 올리다

2024년 열린 제21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연출 감독을 맡아 <장미의 기사>를 개막작으로 무대에 올린 것은 여러 의미에서 변곡점이 되었다. <장미의 기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최대 흥행 작품인 동시에 가장 제작하기 까다로운 오페라로 손꼽힌다. 주요 등장인물만 5~6명에 다양한 조연, 합창과 코러스가 많아 무대에 오를 성악가들을 섭외하는 데에만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가 연출에 나서기까지 28년간, 국내에서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 적이 없을 정도다.
“장미의 기사는 어려운 작품이에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도 공연 3년 전에 가수들과 계약하고 준비하죠. 그런데 우리는 3월에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9월에 공연했죠. 모두가 정말 놀라운 집중력과 열정으로 참여했고, 결과는 몹시 감동적이었습니다. 유럽의 어떤 오페라하우스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훌륭한 오페라 무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한국에서만 가능하죠.” <장미의 기사>는 그에게도, 대한민국 오페라 역사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인 성악가들만으로 이루어진 공연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전한 것은 물론,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새로운 오페라 시대’를 열어가리라는 기대감을 높였다. 계획하지 않지만 준비하는 삶, 통제하려 애쓰기보다는 경험을 통해 배우는 자세. 예술가의 삶을 입체적이고 풍요롭게 만들어 온 그가 전하려는 철학인 동시에 삶의 태도를 그대로 실천한 결과였다.

조란 토도로비치 교수에게 전환은 예술적 재탄생

“몸 전체를 이용해 노래하는 새로운 발성법 덕에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레퍼토리를 소화할 수 있었어요. 더 극적인 역할을 맡게 됐고,
그 경험으로 20년 이상 오페라 가수 경력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무대에 섰을 때
감정을 숨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필요하다면 무대 위에서 키스하는
법까지 가르칠 겁니다. 저는 학생들이
진짜 예술가로 성장하길 바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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