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onation ③
황금빛 식사쿠폰에서 천원의 식샤까지, 받은 나눔을 다시 나누는 선순환의 고리와 천 원 기부에서 시작된 나눔의 기쁨 등 서울대학교발전재단 나눔공모전 당선작에 담긴 따뜻한 이야기들을 공유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가끔 학교에 다시 찾아왔습니다. 학생회관에 도착해 진열된 메뉴들을 보며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있노라면 저는 다시 한번 황금빛 식사쿠폰이 떠오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2010년대에 가장 저렴했던 메뉴는 1,700원짜리였는데, 가난한 고시생이었던 저는 다른 메뉴를 선택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중앙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중에는 황금빛 동전을 길게 탑처럼 쌓아놓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저는 수백 번의 황금빛 동전쿠폰을 식권함에 넣고 나서, 원하던 시험에 통과할 수 있었고 직장인이 되어 아이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게 되니 마트에서 장을 봐야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돼서야 비로소 시장 물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난날 제게 빈틈없는 영양소를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챙겨주었던 학교는 마술을 부린 게 아니라 나눔을 실천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몇 년이 흘러 저는 대학원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 찾아간 학생회관에서 ‘천원의 식샤’라는 푯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천원의 식샤’에 기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쓰여 있는 안내판을 보고 함께 공부하며 힘든 시기를 보냈었던 친구들에게 곧장 전화해 함께 기부하자는 뜻을 전했습니다. 행정대학원에서 정책스터디 소모임 마지막 날에 가장 인상 깊었던 정책이 무엇이었냐는 외국인 친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도 기억납니다.
“제가 어려웠을 때 황금색 식사쿠폰이 내게 황금빛 꿈을 꾸게 해주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천원의 식샤를 통해 나눔을 꿈꿀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학업을 이어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다행히도 신양문화재단 장학생에 추가로 선발되어 마지막 학년은 등록금 걱정 없이 졸업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신양장학생 수여식에서 휠체어를 타고 오신 신양 정석규 이사장님을 뵈며 언젠가 반드시 이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후 모교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신양학술정보관을 이용할 때마다 이사장님이 주셨던 도움과 나눔이 떠올라 기부를 약정했습니다. 장학생 출신 동문이 기부를 약정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신양 정석규 이사장님의 호 신양(信陽)은 ‘빛을 믿는다’라는 뜻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저 또한 보잘것없는 도움이나마 드릴 수 있음에 자부심과 영광을 느낍니다.
서울대총동창회 편집팀에서 근무하며 ‘천원의 식샤’ 기사를 위해 시험 삼아 천 원을 기부했는데 몇 개월 후 아너월 제막식에 정말로 제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용돈을 모아 기부한 초등학생, ‘4년 후 살아 있으면 죽을 때까지 기부하겠다’는 구순의 교수님을 보며 이렇게 훌륭한 분들과 이름을 나란히 해도 될까 생각했습니다.
5개월 후 1주년 성과보고회에서 1,500여 명이 7억 3000여만 원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내가 낸 천 원으로 든든하게 속을 채웠겠구나’ 하는 생각에 절로 어깨가 펴졌습니다. ‘천 원으로 시작해도 괜찮다’고 외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