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ople②
안주은 체육교육과 교수
의학의 발달로 평균 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효과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살아가는 방법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인체 구조와 인간 심리, 공학적 구조 등을 두루 조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을 향한 길을 열어온 안주은 교수의 여정은 더욱 특별하다.
안주은 교수는 국내에 몇 안 되는 공학자 출신 체육교육과 교수다. 체육 관련 학위가 없는 대신 공학적 도구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왔다. 미묘한 경계 넘기 혹은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과 결을 같이 한다.
“기계항공공학과 졸업 후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며 연구가 더 적성에 맞다는 사실을 깨닫고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MIT 공대 유학 초반, 수학 이론을 다루는 실험실에 있을 때는 순수 이론보다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연구가 저에게 더 맞다는 것을 알게 됐죠. 로봇을 활용해 사람의 재활을 돕는 연구에 도전했는데 배워야 할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처음 천착한 주제는 사람의 보행이었다. 동물의 다양한 보행 방식 중 사람이 고유한 직립 보행을 하게 된 이유를 탐구했다. 뇌졸중 환자 등 인체의 한 부분이 손상돼 걷기 힘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로봇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뇌와 근육이 운동을 제어하는 원리, 나아가 ‘사람’이라는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지 않고 연구를 완성할 수 없었다. 결국 안주은 교수는 생물과 화학을 공부하기 위해 두 번째 박사 후 연구과정에 돌입했다.
“생물과 화학이 재미없어서 기계항공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정말로 풀고 싶은 문제가 생기니 마음이 달라지더군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호불호를 떠나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공학의 토대 위에 생물과 화학 분야 지식을 결합하며 안주은 교수는 학문적 지향점을 또 한 번 확인했다. 지식 자체에 몰입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일상을 바꿀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한 가치였다.
실제로 안주은 교수는 기술이 사람의 몸과 감각, 감정에 어떻게 닿는지 끊임없이 물으며 문제를 해결해 왔다. 2020년 국제 학술지에 발표한 발바닥 자극을 통한 낙상 방지에 관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노화로 발바닥 감각이 둔화하면 넘어질 위험이 커진다는 것에 착안해, 미세한 진동을 발바닥에 전달해 낙상 위험을 15%가량 줄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효과를 입증했다. 노인에서 젊은 층으로 대상을 확대해 연구한 것도 중요하다.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라고 한정하면 꼭 필요한 분들도 사용을 주저하게 되고 파급력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노화뿐 아니라 피로로 둔해진 발바닥 감각을 조정하는 기술을 만들고 특허도 냈어요. 누구나 장벽 없이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세계 10종 경기 정상급 선수 450명(20~75세)을 대상으로 한 연령대별 근력 노화 데이터를 수집해 공개한 것도 의미가 크다. 50세 이전까지 가장 적은 폭으로 떨어지던 근력이 50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진다는 분석 결과는 건강 증진과 운동 참여 정책 수립 등의 과학적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과는 ‘스포츠 엔지니어는 신체 움직임을 통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더 잘, 더 오래, 더 재미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안주은 교수의 정의와 맞닿아 있다. 발끝이 바깥으로 벌어진 발레리나의 외회전 자세(out-toeing, 아웃토잉)를 해결하는 교정 타이즈 개발은 융합 연구의 어려움을 그대로 드러냈다. “타이즈는 의복이기도 하니 기계과 교수님, 의류학과 교수님과 의기투합해 융합 연구를 했습니다. 보편성, 유용성을 얻으려고 기능만이 아니라 편의성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논문을 썼어요. 그런데 저널에 싣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여러 분야가 섞여 있으니 기계학이나 의류학 등 한 분야의 관점으로만 심사할 수 없다는 이유였죠. 세상에 나오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안타까웠죠.”
“융합은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사람들을 결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죠.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문제 해결을 향한 융합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안주은 교수는 ‘사람과 연대하며 사람에게 도움을 주겠다’ 는 비전으로 꾸준히 나아가는 중이다. 2018년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이 협업한 뇌성마비 성인들을 위한 ‘Let’s 창작무용 프로그램’에 커뮤니티 일원으로 참여했던 경험은 비전을 더욱 확고히 했다. 창작무용이 장애인의 신체 활동과 자존감을 회복시킨다는 것을 확인한 덕분이다. “전공 분야인 공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혼자 하는 연구는 없어요.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알고 타인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이야기하는 이유죠. 경험을 통해 자신을 파악해야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찾을 수 있고, 과제가 생기면 머리를 맞댈 사람들을 찾게 된다는 뜻입니다.” 안주은 교수는 묵묵한 실천으로 융합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삶 가까이 옮겨 놓았다. 풀고 싶은 문제를 찾고,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 융합의 출발이자 끝이라는 사실을 그는 흔들림 없이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