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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 철 미 술 대 학 학 장
디자인은 아름다움이나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활동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이로울 수 있도록 본질을 묻고 또 물어 공유 가치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정의철 학장은 관점을 바꾸어가며 ‘누구에게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반복하여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구 인 회 사 회 복 지 학 과 교 수
사회복지는 제도를 설계하기에 앞서 다양한 삶의 조건을 탐색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낙인과 차별 대신, 공감하고 존중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다. 제도와 삶을 위한 구인회 교수의 모든 발걸음은 연대의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수렴한다.
이성과 직관을 융합해 현상을 이해하며 정말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디자이너의 사고 과정은 새로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주목받곤 한다. 디자인은 경제 대공황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최근에도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적 컨설팅 기업들이 디자인 전문회사와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제품 개발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경영에서 기획한 전략을 인간 관점에서 해석하고 형상화하여, 공학에서 개발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석 과정에서는 제품 관여자 간에 공유 가치를 창조하고, 형상화 과정에서는 경영과 공학의 간극을 고려하여 가치를 실현합니다. 디자이너는 여러 다른 차원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정의철 학장은 바로 이 대목에서 디자인이 ‘융합’의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대전환기에 예술과 기술, 경영의 역할이 어우러져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태동했던 역사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의철 학장이 말하는 ‘가치’는 단순한 해결과 다르다. 발명이 기능적 해법을 만드는 반면, 디자인은 가추적 사고를 통해 또 다른 세상을 연다. 전제에서 결론을 내는 연역법과 반복된 사례에서 일반화를 이끄는 귀납법과 달리, 가추법(abduction)은 관찰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그럴듯한 가능성을 가정하고 시도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나 끝없이 항해하는 배를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투명한 가정용 컴퓨터는 ‘사무실 같지 않은 개성 있는 작업 공간을 꾸미려면?’, 날개를 숨긴 선풍기는 ‘손을 다칠 위험 없이 시원한 바람을 쐬려면?’이라는 고민에서 출발했어요. 사람 마음 깊은 곳의 진짜 질문을 찾아내면 혁신적 디자인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정의철 학장이 디자인했던 ㈜삼보컴퓨터 ‘페르마타(Fermata)’*와 닥터노아 ‘대나무 칫솔’도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왜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은 생소했던 모바일 환경을 상상한 태블릿을, ‘모두가 건강한 환경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대나무 생산자와 소비자는 물론 지속 가능한 생태환경까지 고려한 칫솔로 구현됐다. 두 제품 모두 국내외 저명한 디자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여러 사람의 다른 시각을 헤아리고 중재하는 디자이너의 태도는 미래를 밝히는 등대와 같다. 정의철 학장은 ‘카메라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는 예술가는 도태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언급하며 인공지능 시대의 융합에 관해 이야기한다. “카메라 발명 후 초상화가 등 기존 방식만 고수하던 사람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 인공지능은 특정 직업군만이 아니라 인류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잖아요. ‘인공지능을 활용해 어떻게 융합할까?’가 아니라 ‘인공지능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무엇일까?’를 먼저 물어야 해요. 미래를 상상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죠.” 융합은 방법일 뿐,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모든 분야가 반드시 융합을 추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정의철 학장은 학문의 다양성과 평등을 존중하는 건강한 지식 생태계 형성, 인간과 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이 먼저라고 말한다.
빈곤과 양극화, 저출산과 고령화, 경제위기 등 수많은 과제는 단일한 관점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한 사람 안에서도 경제·건강·돌봄 같은 필요가 동시에 발생한다.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도 얽혀 있는 탓이다. “경제학은 경제, 심리학은 심리, 보건학은 건강에 초점을 맞추지만, 사회복지학은 인간 복리 문제에 다원적으로 접근합니다. 청년, 노인, 장애인, 여성 등 다양한 욕구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충족시켜야 하죠. 노인의 기본 의식주 이외 소속감과 자기 존엄성 실현 욕구를 고려해 경제학과 보건학, 심리학, 사회학 등을 융합한 ‘지역사회 통합 돌봄’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융합 학문’에 더해 사회복지학이 전방위적으로 영역을 넓혀온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시대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욕구는 계속해서 바뀌고, 해소되지 못한 욕구가 사회 문제를 만들어낸다. “삶의 질, 사회적 관계, 자기 결정권 등은 주목하지 않던 욕구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복지의 영역이 되었죠. 그래서 사회복지 연구자들은 사람들의 삶을 깊이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한 구인회 교수는 야학 교사로 일하며 사회복지에 눈떴다. 기본권이 박탈된 노동자들과 어려운 형편으로 고통받는 빈곤층이 마주한 불평등이 마음을 움직였다. 유학 시절 미국 사회의 빈곤을 보며 시작한 연구는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예전에도 도시빈민과 철거민은 있었지만, 서울역에 노숙인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외환위기 종식 선언 후에도 빈곤은 깊었지만, 당시 제도로는 쉽게 못 풀 것 같아서 연구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고속 성장과 성공적인 산업화 이면에 숨은 허점들이 드러난 시기였다. 구인회 교수는 사회 통합의 전제가 되는 시민의 기본권, 사회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정책 자문가로서 제도 설계와 해법을 조율하는 일에 꾸준히 참여했다. 빈곤과 불평등 해소에는 여러 부처와 민간, 지역사회의 협력이 필요하기에, 균형을 유지하며 학문 이상과 현실 융합에 나섰다. “연구자로서 분명한 가치 지향이 있고 실행법도 여러모로 고민하지만, 내가 모르는 현실이 있다는 걸 명심합니다. 다방면으로 대안들을 준비하고 장단점을 설명하죠. 정책 결정자들이 최대한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 학자의 역할입니다.”
복지 제도 설계에 힘써온 구인회 교수는 제도가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남은 복지 사각지대가 그 증거인데, 낙인찍고 배제하는 상황에 놓인 복지 수혜자는 낮은 문턱조차 넘지 못한다. ‘각자도생’이 농담처럼 번지는 현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취약한 처지의 소수자보다 성장이 우선이었던 과거는 우리 사회가 포기했던 연대를 되짚게 한다. “청년이 어렵고, 장애인이 고립되고, 노인이 가난해도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혼자서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독립적이고 경쟁에 능한 개인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와 상호 의존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엄연한 현실을 인정하고 ‘누군가’를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나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받습니다.” 구인회 교수는 감수성 예민한 청년들이 모인 공동체일수록 다양한 삶을 마주하며 연대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은 사회에서 지원과 혜택을 받은 만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책임감을 가지라고 당부한다. “사회복지의 핵심은 인간 존중입니다. 상황과 차이를 서로 인정하며 균형을 모색해야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융합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합치는 것이 아니라 분야의 특성을 살리며 인간 존중과 어떻게 연결할지 세심하게 고민할 때 진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