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①

하나에서 무한대로
융합의 장을 키우다

노유선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장

올해 초,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이 출범했다. 학부대학은 모든 학부생을 대상으로 기초 역량을 두텁게 하고, 비교과 프로그램과 글로벌 교육을 강화하며 전공 선택의 유연성을 넓히는 장이다. 학문 간 울타리를 넘어, ‘도전과 공감으로 미래를 여는 지성’을 키우는 서울대학교의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

연구실 밖 세상을 먼저 보는 식물학자

사시사철 각양각색으로 물드는 서울대학교 교정을 바라보며 노유선 학부대학장은 ‘식물은 왜 식물인가?’ 생각했다. 식물학자로서 오랫동안 품은 물음이었다. 식물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 처음 싹틔웠다. 시골에서 태어난 그는 산과 들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차별 없이 어울리고, 자유롭게 상상했다. 서울대학교 85학번으로 입학한 후에는 식물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학내 문제나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관성대로 진로를 결정하기보다 ‘나는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처절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 역사 등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많은 동료를 만나 교류하는 과정이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켰다고 믿는다.
교수가 된 지금, 학생들에게 “학점을 잘 받는 것보다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 더 중요하다”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미국 유학 시절, 개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질문하고 토론하는 학생들을 보고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것도 인생의 전환점 중 하나로 꼽힌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하러 갔을 때만 해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전공 역량은 시간과 노력에 따라 언제든 따라잡힌다는 걸 알았어요. 반면 경험과 성장의 차이는 쉽게 좁히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여러 분야에 관심을 두며 탐구했던 외국 학생들은 유연하게 사고하며 기발한 질문을 해내더군요. 노벨상 수상자들이 업적을 내기까지 과정을 떠올려 보세요. 대부분 잘 설계된 계획보다는 성장한 경험을 통해 엉뚱한 상상을 떠올리며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외국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유롭게 경험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위대한 결과를 탄생시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식물은 왜 식물인가?

식물 후성유전학(後成遺傳學) 권위자로서 연구를 이끌고, 식물가소성연구센터와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을 책임지는 노유선 학부대학장은 어린 학생들, 타 전공 연구자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새로운 질문과 아이디어를 얻는다. 그가 ‘식물은 왜 식물인가?’ 했던 질문 또한 지도하던 학생과 대화하며 시작됐다. “어느 날 지도하던 학생이 유학 준비를 한다며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묻자 ‘사람은 왜 사람인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답을 찾고 싶다’고 하더군요. 참 멋진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연구 분야에 있는 사람은 이런 것을 궁금해하는구나!’ 싶었죠. 그 후로 제 연구 분야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식물은 왜 식물인가?’ 하고 말이에요.” 연구자의 지식과 자세는 교육행정가로서 답을 찾을 때 힘이 되었다. 식물 후성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생명체의 형질은 타고난 유전자로 결정될 수 있지만 식물과 동물, 동물과 사람의 DNA는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종의 특성은 DNA 자체의 다름보다는 어떤 유전자들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노유선 학부대학장은 교육 현장에 대입했다. 그리고 ‘유전자의 사용처럼 여러 학문에 대한 경험은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낸다’는 가능성을 믿었다. 융합 교육에 대한 확신이었다.
“식물은 변화된 환경에 탁월하게 반응하고 적응합니다. 가소성(plasticity)이 매우 뛰어나죠. 사람도 주어진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한 분야에 깊이 빠지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방면에 관심을 두죠. 어느 한쪽이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에요. 폭넓게 사고하고 다른 가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많은 기회를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바라는 융합형 인재의 모습이죠.”

학부대학은 공통핵심역량과 융합 교육 강화, 글로벌 교육 확대 등 서울대학교 교육 혁신 플랫폼 역할 수행을 목표로 2025년 3월 공식 출범했다.

융합 인재를 키우는 서울대학교 학부대학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은 특정 영역에 집중하는 전공 교육과정과 다르다. 학문 분야 간 울타리를 넘어 공통핵심 역량과 융복합 역량을 키우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 플랫폼이다. 노유선 학부대학장은 학부대학 초대 학장으로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콘텐츠 제작 전반에 힘을 쏟고 있다. 학부대학이라는 경계 없는 교육의 장 안에서 학생들의 융합적 사고가 마음껏 성장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는 서울대학교 종합화 5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입니다. 그동안 우리 대학은 많은 발전을 이뤄왔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한 만큼 바라는 인재상이 달라졌는데, 50년간 교양과 전공을 기본으로 이어온 교육 방식은 바뀌지 않았어요. 서울대학교 학부대학은 교육 문화의 흐름을 바꾸는 시작점입니다. 학부대학은 견고한 학부·학과주의의 벽을 무너뜨리고, 융합의 가치를 들이는 곳이죠. 전공 간 칸막이가 사라진다면, 학생들은 더 이상 한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유선 학부대학장에게 융합은 시너지

“융합은 시너지를 만드는 근원(source)입니다.
‘나’와 ‘타인’이라는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습니다.
폭넓은 경험과 소통을 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융합의 기회가 많아지고,
시너지는 더욱더 커질 것입니다.”

노유선 학부대학장은 세포 하나에서 전체 식물체를 재생시킬 수 있는 식물의 뛰어난 가소성을 연구하는 재료 중 하나로 제비꽃을 사용한다.

지식은 배우면
따라잡을 수 있지만
위대한 결과는
경험과 폭넓은
사고에서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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