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박유정 | 어린이보육지원센터장(아동가족학과 교수)
서울대 캠퍼스 안, 가장 생기 넘치는 특별한 존재들이 있다. 바로 백학 어린이집과 느티나무 어린이집에서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260여 명의 어린이들이다. 그 곁에는 아이들이 세상을 탐구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마음을 단단하게 키우도록 돕는 박유정 센터장이 있다. 지난 3월 취임 이후 센터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는 그의 교육 철학을 들어보았다.
매일 아침 8시 30분이면 어린이집 앞은 등원하는 아이들과 학부모들로 북적인다. 1998년 설립된 백학 어린이집에 만 1세부터 만 2세까지의 영아들이, 2011년 개원한 느티나무 어린이집에 만 3세부터 만 5세까지의 유아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활기찬 아침 풍경은 서울대 어린이보육지원센터가 지난 시간 동안 묵묵히 다져온 일상이자 대학 공동체를 지탱해 온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기도 하다. 지난 3월 취임한 박유정 센터장은 누구보다 이 현장을 깊이 이해하는 인물이다. 과거 이곳의 실습생이자 교사로 첫발을 디뎠던 그이기에 아이들을 맞이하는 감회와 포부가 더 새롭다.
“센터장으로 부임한 후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현장 교사들의 기록이었어요. 기록은 교사가 어린이의 삶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안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포착해 내는지를 보여주는 정직한 거울이기 때문이죠.”
그는 아이의 작은 변화 속에서 ‘배움’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똑같이 양말을 벗는 모습이라도 ‘양말을 벗었다’에 그치지 않고 ‘발가락부터 잡아당기던 아이가 이제는 발꿈치부터 벗는 법을 터득했다’처럼 세심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박 센터장이 ‘기록의 변화’를 취임 후 첫 번째 과제로 선언한 이유다.
이와 함께 중점을 두고 있는 과제는 센터의 독보적인 정체성인 ‘주제탐구표현활동(이하 주탐)의 재정립’과 시대적 변화에 맞춘 ‘마음 성장 프로그램의 도입’이다.
“주탐은 자칫 한 가지 주제에 갇힌 인지적 학습 활동으로 오해되기 쉬워요. 그러나 주탐은 아이들이 주도하는 활동이에요. 예를 들어 교실에 열대어 한 마리가 들어오면 아이들끼리 물고기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거죠. 아이들이 ‘물고기도 콧구멍이 있나요?’ 같은 기발한 질문을 쏟아내면 그걸 해결하려고 직접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다 관찰도 하고 조리사 선생님을 전문가로 초청해 부레를 보며 각자 탐구해요. 그 과정 중에 아이들은 자기 상상 속에서 제멋대로 대답을 하는데 절대 고쳐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들 눈에는 말이 안 되는 오답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엉뚱한 대답이 바로 그 아이의 현재 ‘가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정답을 알려주는 순간 아이가 세상의 비밀을 스스로 깨쳐가며 느끼는 ‘탐구의 희열’은 사라져버리거든요.”
주탐이 탐구의 희열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마음 성장 프로젝트는 사회 정서적인 면을 성장시키는 프로젝트다. 2019년 서울대학교에서는 ‘구성원을 위한 보육 서비스 지원 방안 연구’를 진행했고 그중 1위로 사회 정서 발달에 대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박유정 센터장은 이를 기반으로 삼성복지재단 후원을 받아 최근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팀과 ‘유아 마음 성장 프로그램’을 개발, 지난 7월부터 만 3~5세 유아반을 대상으로 시범 도입했다.
“아이들은 주로 외부 세계에 관심을 가지잖아요? 이런 관심을 내 몸과 마음으로 끌어와 몸의 감각과 감정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이러한 알아차림은 자기 조절과 자기 긍정으로 연결됩니다. 요즘은 똑똑하지만 끈기가 부족해서 욱하거나 쉽게 포기해 버리는 아이들이 확실히 늘었어요. 실제로 소아 청소년 전반의 정신 건강 수치도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니 초등 고학년만 돼도 또래 관계나 학교폭력 같은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그 모든 것의 근본은 아주 어린 연령에서부터 나를 긍정하고, 참고 양보하는 법, 때론 다 가질 수 없음을 수용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마음 성장 프로그램’은 한국영유아보육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전국 113개소에 보급될 예정이다. 센터는 이처럼 영유아 보육 현장의 변화를 이끄는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 공동체인 부모들 역시 이 가치를 깊이 이해하며 자료 수집이나 전문가 초청, 재능 기부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그렇다면 학문 공동체가 센터에 바라는 또 다른 역할은 없을까.
“야간 보육 확대 수요가 있지만 양육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부모가 양육의 보람을 포기하지 않도록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원하되 철저히 어린이의 행복과 발달을 최우선 기준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박유정 센터장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마음껏 부딪치며 행복하게 도전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제가 생각하는 담대한 도전은 실패 확률이 훨씬 높고 결과가 불투명해도 기꺼이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입니다. 영아들은 걷기까지 수천 번을 넘어져도 다시 걸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안정된 길을 권하면서 아이들이 가진 능력을 발현할 기회는 잃어버리게 만든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나아가 캠퍼스 안에서 어린이들을 만난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기를 바랍니다. 누구든 아이들의 시각을 접하며 각자의 연구 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갈 수 있기를요.”
박유정 센터장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다. 지금 성인이 된 우리의 모습 역시 어릴 때 쌓인 행동과 생각의 결과물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한 안전한 매트가 되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도록 위험을 감내하며 본성을 지켜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린이보육지원센터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백학 어린이집과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기꺼이 그 몫을 해내고 있다.
“영유아는 말을 배우고 걸음마를 떼기까지
수천 번을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해요.
그 모습을 보면 도전 능력은 새롭게 개발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타고난 본성이라고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