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담
박상우 미학과 교수 &
이복직 항공우주공학과 교수
인간의 감각과 사유를 탐구하는 미학과 미지의 공간으로 길을 내는 항공우주공학. 각자의 지평선 너머를 향해 온 박상우 교수와 이복직 교수는 한계를 성찰하며 담대하게 나설 때 새로운 가능성을 만날 수 있다 했다.
하늘을 날고자 했던 꿈에서 우주를 향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늘 ‘저 너머’를 궁금해했다. 박상우 교수와 이복직 교수는 미학과 항공우주공학의 시선으로, 인류가 공유해온 열망의 이유를 짚어보았다.
박상우 교수저희 둘을 조합한 이유가 궁금하다가 접점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19세기에 펠릭스 나다르(Nadar, Gaspard Felix Tournachon)1 라는 사진가가 열기구를 타고 파리 상공을 처음 찍었거든요. 지도를 만들고 적군을 살피려는 목적이었지만, 지상을 벗어난 적 없던 인간이 새가 되어 날고 싶은 욕망이 담겨 있죠. 저는 그렇게 하늘에 오른 인간의 기록을 읽으며 논문을 썼는데 지금은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가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이복직 교수님 연구와 통하는 데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복직 교수놀랍네요. 미학과에서 사진을 연구하는 분이시니 연결고리를 찾기 어렵겠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주에 올라가서 지구를 보기 위해 우주 개발을 시작했어요. 지금도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진 한 장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많은 걸 생각하게 하죠.
1 펠릭스 나다르(Nadar, Gaspard Felix Tournachon) : 프랑스의 화가, 사진가. 그의 초상 사진들은 19세기 사진 예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복직 교수유전자에 있는 것 아닐까요? 인류라는 종은 늘 보이지 않는 곳에 뭐가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아이도 언제나 어딘가로 넘어가려고 하잖아요. 옛날 사람들도 수평선 뒤에 있을 대륙이 궁금해서 탐험에 나섰는데, 지구가 둥그니까 결국 제자리로 왔죠. 그러다 그다음 지평선인 하늘 너머에 있는 우주를 본 겁니다.
박상우 교수 저는 끊임없이 자기 한계를 성찰하고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복직 교수님 말씀처럼, DNA에 새겨져 있는 거죠. ‘나도 새처럼 날 수 있다면 어떨까’, ‘나도 피카소처럼 그림을 잘 그리면 어떨까’ 하는 바람과 결핍이 있잖아요. 그래서 덜 보일수록 더 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을 만들겠다는 의지 덕분일 거고요.
이복직 교수가 보여준 사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용골자리 성운의 ‘우주 절벽(Cosmic Cliffs)’이다. 지구에서 약 7,600광년 떨어져 있다.
우주를 만나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항공우주공학이 로켓으로 길을 연다면 사진은 우주의 풍경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이렇게 확장된 시선은 사람들을 다시 꿈꾸게 한다.
박상우 교수 19세기 이전까지 사람들은 신문으로 황제의 소식을 매일 읽으면서도, 정작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진의 탄생과 함께 처음으로 황제의 얼굴을 아는 시대가 열렸죠. 수백, 수천만 장씩 복제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사진을 ‘기술 복제 이미지’라 부르기도 했는데요. 예전에는 문자가 세계와 사람들 사이를 이어줬지만 사진의 탄생과 함께 기술 이미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어요. 지금은 영상으로 발전해서 사람들이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죠. 이미지가 새로운 언어가 된 셈입니다.
이복직 교수 마침 저도 사진 몇 장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는 달에서 지구가 떠오르는 장면이에요. 우리는 지구에서 보니까 ‘해가 뜬다’라고 하지만, 달에서 보면 지구가 뜹니다. 다른 하나는 보이저 1호가 태양계 끝으로 멀어져가면서 찍은 지구예요. 칼 세이건2 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는데, 그 작은 점 안에서 수십억 명이 다투고 질투하고 사랑하며 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이상하죠.
2 칼 세이건(Carl Sagan): 미국의 천문학자이자 과학저술가. 보이저 1호가 1990년 태양계 끝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 명명하고, 같은 제목의 저서에서 그 의미를 널리 알렸다.
농업·산림 관측을 위해 개발된 차세대중형위성 4호 모형
이복직 교수로켓은 길을 터주는 수단일 뿐입니다. 다만 길이 없을 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죠. 에베레스트 정상에 뭐가 있는지 몰랐지만, 원정대가 먼저 길을 뚫은 후 후발 주자들이 오가며 뭔가 해볼 수 있게 됐잖아요. 우주도 같아요. 예전에는 우주에 뭐 하나 올리는 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길이 열리니 새로운 상상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로켓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우리가 그려 나갈 몫입니다.
박상우 교수그렇게 길이 열리면 사람이 직접 가지 않아도 카메라는 그곳의 사진을 담을 수 있잖아요. 보여주신 사진들처럼요. 그런 이미지들이 다수에게 우주를 처음 보여주는 거죠. 그러니 로켓에 무엇을 실어 보내느냐는 결국 우리가 무엇을 함께 볼지를 정하는 셈이네요.
이복직 교수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쏘는 기술만큼 쓰는 기술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로켓은 화물을 나르는 수단일 뿐이고, 무엇을 실어서 누구에게 어떤 기쁨을 배달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0.1s 장치교란 14〉, 2025. @박상우(작가명: 박남사)
휴대폰 카메라를 1초에 10장 찍히는 연속촬영모드로 설정한 뒤, 휴대폰을 공중에 던져 촬영한 연속사진 중 한 장.
이 작품은 야간에 어두운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던져 촬영한 사진이다.
카메라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프로그래머도 예상치 못한 촬영 상황을 만듦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와 인간을 갈수록 통제하는 장치 프로그램을 교란하고자 했다.
또한 사진 교과서에 나온 모든 규칙을 벗어남으로써 예술 제도를 교란하고자 한 의도도 담겨 있다.
하늘을 날고 우주로 향하겠다는 생각은 오랫동안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건 가능성을 따지지 않고 뛰어든 사람들이다.
박상우 교수결국 같은 말이라고 봅니다. 상상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설계이고, 설계는 정리된 상상이니까요. 사실 저는 꿈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씁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꿈이 없거나, 있어도 이미 많이 접은 것 같아요. 저희 과만 해도 예술을 하고 싶어 들어왔다가 현실의 어려움을 깨닫고 꿈을 하나하나 내려놓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복직 교수저 역시 상상과 설계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뭘 해보려고 하면 지금 가진 걸로 가능성을 따지죠. 그러면 또 그 안에서만 답이 나오고요. 월급이 얼마라고 정해지면 그걸로 살 수 있는 것만 떠오르지, 비싼 물건은 아예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지금의 속도와 방향은 무시하고, 가고 싶은 자리에 먼저 점을 하나 찍어보라고요. 그 점을 바라보며 가다 보면 경로가 그쪽으로 향한다는 겁니다.
박상우 교수저도 동의합니다. 도전이라는 말 자체가 합리성을 잠시 미뤄두는 일이잖아요. 여러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의견은 대개 합리적이지만, 담대하다는 것은 바로 그 합리를 뚫고 나가는 것이죠.
이복직 교수우리 학생들은 공부 잘하는 교육은 많이 받았지만, 엉뚱한 상상을 하라고 하면 오히려 어색해합니다. 하지만 똑똑한 친구들이라 한두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질 테니, 어떤 말을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습니다.
박상우 교수사실 저는 도전하라는 말을 쉽게 못합니다. 미학을 전공하면 취직도 힘들고 부모님도 걱정하시니까요. 대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학생에게는 사회가 정해둔 기준을 잠시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놓는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고 죽을 힘을 다하게 되거든요. 실제로 원하는 길로 가면 접어두었던 것들이 뒤늦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시각 매체로 인간의 인식을 탐구하는’ 박상우 교수는 인문대학 미학과 교수로, 사진과 영상이 문명과 인간의 인식을 어떻게 바꿔왔는지 연구해 왔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사진영상학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8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부임했다. 롤랑 바르트, 발터 벤야민, 빌렘 플루서 등의 이미지 철학을 국내에 소개해 왔으며, 19세기 과학사진의 역사를 추적한 『박상우의 포톨로지』(2019)를 펴냈다. 2023년 제9회 대구사진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로켓으로 인류의 한계를 넓히는’ 이복직 교수는 공과대학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로, 극초음속 추진과 로켓 연소 분야를 연구하고 가르쳐왔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석·박사를 마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거쳐 모교에 부임했다. 음속의 다섯 배가 넘는 속도에서 작동하는 스크램제트 엔진을 연구하며, 이를 지상에서 시험하기 위한 극초음속 충격파 터널(SHyST)을 서울대에 구축했다. 한국연구재단 우주기술단장을 지냈고, 2026년 제1회 K-우주포럼을 열고 의장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