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우재호 | 크리에이터(산림과학부 10학번, 생명과학부 석사 ’22년 졸업)
남다른 길로 향할 때 따라오는 두려움이나 주위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요즘 우재호 동문이 자주 하는 생각이다. 물론 두려움과 눈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은 안다. 그럼에도 스스로 기준을 세우고 움직여야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석사 졸업 후 크로스핏 코치로 활동하던 우재호 동문은 2024년 12월, 돌연 세종과학기지로 떠났다. 제38차 월동연구대 생물대원에 지원해 선발된 것이다. 이후 1년간 남극 대륙에 유입된 외래종이 번성하는 것을 살피고, 펭귄을 포함한 조류 그리고 물범 같은 포유류가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되는 상황을 모니터링했다. 기지에서 내보내는 생활용수 성분과 대원들이 마시는 물의 위생을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역할을 맡았지만 버겁지는 않았다. 세계를 누비며 동물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간접적으로나마 실현했기 때문이다. 다만 꿈에 가까워지는 일에는 여러 가지 대가가 따랐다. 하나는 뜻밖의 위험이었다.
“기지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펭귄마을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복귀하다가 앞이 안 보일 만큼 강력한 눈보라를 만났습니다. 감을 믿고 걸었는데 다시 보니 코앞에 절벽이 있었어요. 하마터면 못 돌아올 수도 있었죠.”
책임감도 가볍지 않았다. 생물대원부터 요리사와 의사까지, 열여덟 명이 맡은 임무가 달라서 누구도 서로를 대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위험한 길은 같이 나서고 필요할 때는 모두가 팔을 걷어붙였다. 발전기가 멈추거나 기지 외벽 수리가 필요할 때는 다른 대원들도 일손을 보태는 식이었다. 저마다 다른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우재호 동문은 시야를 넓혔다. 동시에 해가 일주일에 하루 뜰까 말까 한 남극의 겨울 내내, 찬찬히 자신을 들여다봤다.
제38차 월동연구대원들. 1년 동안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이들과 생활하며 우재호 동문의 시야는 한층 넓어졌다.
우재호 동문이 사비로 마련한 장비를 남극으로 가져가 만든
남극 최초의 크로스핏 체육관 웹페이지
펭귄마을에 갔다가 눈보라를 동반하는 강풍 속에서 고립될 뻔했던 날.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두려움은 기지로 돌아온 뒤에 찾아왔다.
“언제나 ‘나는 왜 한곳에 정착하지 못할까, 남들처럼 안정된 길을 가지 못할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저는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죠.”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뿐, 그는 오래전부터 변화에 과감했다. 과학고를 자퇴할 때도, 재학 중 크로스핏 동아리 스누와드를 창립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 복무 중 코치 자격증을 딴 그는 제대 후 스누라이프에 회원 모집 공고를 올렸다. 체육관 등록비도 줄이고 좋은 운동을 학우들과 나누겠다는 마음이었다. 자유롭게 기부하면 그 돈으로 장비를 사서 6개월 동안 무료로 운동을 알려주겠다는 제안에 한 달 만에 약 50명이 모였다. 문제는 장소였다.
“체육관을 돌아보니 남는 공간이 있길래 체육교육과 학과장님을 찾아갔어요. 사용 허가 요청을 드렸더니 PPT를 준비해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만든 스누와드에서 11년째 후배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했어요.”
동아리를 창립하며 더 가까워진 운동은 한때 그의 직업이 됐다. 석사과정 중 건강 문제를 겪으며 졸업 후 코치로 전향했고, 뒤이어 타 대학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체육관을 열었다. 한동안 즐겁게 몰입했지만 어느 날 문득 새로운 고민이 떠올랐다.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결국 그를 남극으로 이끌었다. 즉흥은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듯 일상을 이어가며 곱씹고 또 곱씹어 고민이 임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기다린 후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1년간의 남극생활 뒤 우재호 동문은 다섯 달간 남미를 여행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을 구체화했다.
“흔히 대학 졸업 후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는 등의 숙제를 끝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하잖아요. 저는 그런 의견들에 반대하면서도 자유롭지는 않았어요. 눈치를 본 거죠. 그런데 남미 사람들은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매 순간 감사하고 즐기며 살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원하는 삶을 미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괜찮다는 감각과 별개로, 번번이 뒤따르는 두려움을 다스릴 줄도 알게 되었다. 스카이다이빙에서는 “레디, 셋, 고” 구호에 맞춰 바로 공중으로 뛰어내리는 법을, 프리다이빙에서는 숨을 참고 물에 들어가기 전에 하는 준비 호흡으로 긴장 푸는 법을 익힌 덕분이다. 이 방법들과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그는 출발선에 섰다. 건강과 웰니스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한편 사하라 사막에서 열리는 2027년 울트라마라톤 출전 준비에 몰입하고 있다. 가장 추운 남극을 다녀왔으니 가장 뜨거운 사막도 경험하고 싶다는 것이다. 8일 동안 사막에서 250km를 완주하는 게 가능하냐는 질문에도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 다음 어디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지는 자신도 아직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있다. 자연 가까이에서, 대형견과 함께, 매일 운동할 수 있는 삶. 이 세 가지에 가까이 가기 위해 우재호 동문은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도전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호기심을 따라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도
시도해 볼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