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먼저 가서 문을 여는 사람

김솔 학생 | 음악학과 23학번(학석사연계과정)

원하는 것이 있을 때 판을 바꿀 생각부터 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적인 가능성을 헤아리며 단단히 나가는 사람도 있다. 김솔 학생은 새로운 방향을 찾되, 차분한 발걸음으로 길을 만들며 수많은 문들을 먼저 열어왔다. 지난 1월, 리사이틀 무대에서 자신의 장애 상황에 맞게 직접 편곡한 쇼팽 발라드 1번(Ballade No. 1 in G minor, Op. 23)을 피아노로 연주하던 순간처럼.

북한음악을 연구하는 음대생

음악학과 23학번 김솔 학생은 틈틈이 뉴스를 본다. 초등학교 때부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 들었던 습관이 취미로 이어졌다. 서울대 입학 전에는 국제관계와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살려 중국지역학을 공부하며 타 대학에서 국제통상학사를 취득했고, 로스쿨에도 진학했다가 중퇴했다. 스스로 “음대생이지만 머릿속을 보면 사회과학 전공자에 더 가깝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지만 음대 입학은 꿈꾸기 힘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저처럼 손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성악이나 음악학을 택해야만 음대에 진학할 수 있으니까요. 음악학도 실기를 봐야 해서 쉽지는 않았는데, 2023년도 입시에서 처음으로 제가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지정곡으로 나왔어요. 운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행운에 기댄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음악에 녹여내기에 음악학이 적합하다는 판단이 먼저였다. 학부 과정 중에는 ‘북한음악학’ 공부에 집중해, 북한 김정일의 음악관을 검토하는 졸업논문을 썼다. 국내에 전공자가 드문 분야지만 연구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자신만의 방향을 고심해 찾아가는 중이다.
“북한음악은 사상성이 너무 커서 용어나 배경을 모르면 이해하기 힘들어요. 그런데 저는 사회주의권 문화와 리얼리즘에 일찍 흥미를 느꼈고, 중국학을 전공하며 북한에 대해서도 배웠잖아요. 여기에 서양음악 기초를 더하면 북한학과 음악학 사이의 경계를 독특하게 융합할 수 있을 것 같았죠.”

답을 찾고 길을 만들며

김솔 학생의 말에 힘이 실리는 건 행동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택한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한때 사범대학 진학을 고려할 만큼 교육에 관심이 많았지만 음악학과 학생이 교육학을 경험할 기회는 적었다. 음악학과에는 교직 과정이 개설되지 않았고, 사범대학에서는 복수전공 학생을 뽑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부전공’이라는 답을 찾은 그는 교육학에서 배운 아이디어를 지금도 곳곳에 활용하고 있다.
7학기 동안의 학사과정을 마친 김솔 학생은 2026년 2학기부터 3학기 동안 석사과정에서 공부한다. 총 10학기로 구성된 음악대학 학석사연계과정에 최초로 선발된 덕분이다. 이 또한 스스로 개척해서 성취해 낸 성과이다.
“입학하자마자 음악학과 내규가 궁금해서 살피다가 ‘학석사연계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찾았습니다. 지도교수이자 학과장을 맡고 계신 서정은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한번 만들어보자고 하시더군요. 교수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서 주신 결과 제도 운영이 시작됐습니다. 소정의 절차를 거쳐 제가 첫 대상자가 될 수 있었고요. 그 과정에서 저희 과만이 아니라 음악대학 전체로 제도가 퍼진 것도 의미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에 힘입어 그는 후배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요청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늘 도전에 성공했기에 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미리 포기한 적은 거의 없다.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제가 피아노와
음악학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장애인 중
한두 사람이라도
용기를 얻고
음악을 하게 된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클 것 같아요.

다음 사람을 위해 문턱을 낮추는 일

장애인 음악 교육과 장애 학생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 목소리를 내는 등 그의 실천은 언제나 개인을 넘어섰다. 피아노 연주를 계속하며 무대에 오르는 것도 이유가 있다.
“손에 장애가 있는 친구들은 음악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당연히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제가 버티고 있으면 ‘저 형(오빠)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로 바뀔 수 있잖아요. 실제로도 변화가 생기고 있어서, 피아노 치는 게 힘들 때도 많지만 멈출 수가 없어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현실 감각에 바탕을 둔 솔직한 속내다. 인권 활동의 지향점 역시 ‘온건함’이다. 급진적인 변화나 거대한 의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현실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왔다.
물론 온건함이 언제나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중간 지대에 속한다는 이유로 오해와 공격을 받아 공허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인권 문제는 특정 정치사상을 가진 사람들만의 것이 아닌 만큼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서울대에서는 기대 이상으로 충족할 수 있어요. 특히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신 좋은 교수님들과 강사님들 덕분에 학습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김솔 학생은 새로운 문들을 열어 갈 것이다. 누구도 미리 포기하지 않도록, 모두가 문턱을 조금 더 가볍게 넘기를 바라면서.

김솔 학생에게 담대한 도전은 주변과 함께, 한발 더 나아가는 것

“기존 틀 자체를 완전히 없애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주변에도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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