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시공간 오주상 대표 (전기정보공학부 19학번)
이서원 PM (영어영문학과 21학번)
이한비 학생 (고고미술사학과 23학번)
시간과 공간을 일컫는 ‘시공간(時空間)’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만, 시각에 의해 지각되는 공간 세계를 뜻하는 시공간(視空間)은 다르다. 시각장애인들은 후자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시공간을 이끄는 오주상 대표는 구성원들과 함께 창의성을 발휘해 다양한 시각장애인 대상 서비스를 개발, 이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시공간을 선사하고 있다.
오감 중 가장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의 핵심’인 시각. 전국의 25만여 명이 시각장애인에 해당한다고 한다. 시각장애인들은 시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단념한 채, 살아야 할까. 다행스럽게도 그 답은 ‘아니오’다. 전 세계 곳곳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적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다채로운 노력을 펼치고 있다.
오주상
대표가 서울대학교 학부생들과 함께 설립한 스타트업 시공간의 사업 영역도 여기에 속한다. 시공간은 시각장애인이 세상을 한층 세밀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이하 앱)을 개발해 출시했다.
“새내기 때 큰 단체에서 어떤 일이든 해보고 싶어서 총학생회 인권안전국에 들어가 활동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장애인 학우들이 일상과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알게 됐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일에 나서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군 전역 후, 글로벌 리더십 단체인 인액터스(Enactus)의 서울대학교 지부에서
시각장애인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학부생들을 만났습니다.”
오 대표 눈에 띄었던 ‘인액터스’는 여러 사회 문제를 주로 다루는 단체다. 그 안에서도 특히 시각장애인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젝트 모임이 있었다. 그가 합류하기 전, 약 두 달 먼저 시각장애인 프로젝트를 갓 만든 두 명의 학생이 있었다. 그 프로젝트에 오 대표가 참여했고, 이후 자연스럽게 ‘시공간’이라는 스타트업을 시작하게 됐다.
초창기
멤버와 시공간이 시각장애인 대상 서비스를 기획했는데, 2023년 5월 정부의 창업지원사업인 예비창업패키지 소셜벤처 트랙 선정을 계기로 시공간을 설립,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시공간은 여섯 명의 학생이 같은 목표를 향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 이서원 PM(영어영문학과, 21학번)은 “문학을 전공하며 다양한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의 어려움에 공감하게 되었지만, 문학만으로는 실질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현실에서 직접 참여해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공간을
함께하게 되었어요.”라며 시공간 참여 동기를 전한다. 최근에 합류한 이한비 학생(고고미술사학과 23학번)도 “작년부터 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소외계층에게 도움을 줄 방안에 관심을 많이 뒀는데요. 봉사만으로는 근본적인 사회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답답함을 해소하고자 시공간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라며 시공간에
지원한
이유를 말한다.
이서원 학생은 PM으로서 시공간의 각 프로젝트의 총괄 업무와 팀 전반에 걸친 운영 업무를 맡았다. ‘소리앨범’의 PO (Product Owner)인 이한비 학생은 앨범의 방향성을 기획한다. 또 외부 협업 개발자나 디자이너와 소통하며 앱을 개발해나간다.
시공간은 학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설립 첫해인 작년 8월 첫 번째 앱 ‘픽포미’를 출시했다. 대부분 시각 정보로 구성돼 있어 시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온라인 쇼핑을 돕는 서비스다. 초창기에는 인공지능(이하 AI)을 활용해 상품 페이지 내 이미지 정보를 문장화하여 제공하는 ‘상품 분석 서비스’와 구매할 제품의
종류와 상세 조건을 입력하면 AI와 직원이 힘을 합쳐 1~2시간 이내에 상품 3개를 선정해 추천하는 ‘상품 추천하기 서비스’를 제공했다.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중복되는 피드백이 있었다. 바로 스스로 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보다 능동적으로 쇼핑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현재 시공간은 픽포미를 대표하던 상품 추천하기 서비스를 과감하게 없앴다. 대신 제품 이미지나 상세페이지 이미지와 같이 이미지로 된 정보를 텍스트로 전환해 요약해준다는 점이 서비스의
핵심인 만큼, AI 알고리즘 성능을 향상했다. 또 AI 분석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은 챗봇과 직원 질의를 통해 보완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업데이트하고 있다.
2024년 3월 출시한 ‘소리앨범’ 앱은 시각장애인의 취약 영역인 사진을 주제로 삼는다. 현재 제공되는 다른 서비스를 살펴보면 대체 문장을 생성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공간은 이미지와 대체 문장을 함께 저장하는 기능을 제공해, 시각장애인이 나만의 사진 앨범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특장점 덕분에 이용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시각장애인이 이미지 대신 제공된 대체 텍스트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수 있는데요. 스마트폰에는 기본적으로 화면의 문장을 읽어주는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 기능이 탑재돼 있습니다. 따라서 시각 정보를 설명할 수 있는 대체 문장을 생성해서 제공하기만 하면, 시각장애인은 스크린
리더 기능을 통해 해당 정보를 들으며 학습할 수 있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지를 설명하는 대체 문장 생성 AI 기술 고도화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는 이유입니다.”
수익은 기업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핵심 원동력이다. 좋은 취지의 사업도 현실적인 수익 창출이 어렵다면 기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이에 시공간은 고심 끝에 B2B로 시선을 돌렸다. 픽포미와 소리앨범을 통해 축적한 대체 텍스트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바탕으로 ESG 경영을 선도하는 기업들에게 대체 문장 생성 서비스의 필요성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B2B 전용 대체 텍스트 생성 서비스인 ‘에이택(Aitag)’를 출시하며 실질적인 수익 모델 구축에도 나섰다.
픽포미 출시 직후, 오주상 대표는 시각장애인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며 깨달음을 얻었다. 한 시각장애인이 가습기 추천 의뢰를 했고 상세 조건에 가장 알맞은 가습기를 추천했다고 확신했는데, 의뢰인이 ‘추천해준 가습기는 물리 버튼이 없는 터치식이어서 사용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한
것이다.
“이 일을 기점으로 창의에 대한 생각이 상당 부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창의라고 하면 단순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실제로 세상에 유용한 창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지식과 경험을 갖춰야 한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죠. 이후에는 막연한 직관적 구상이 아닌, 근거 있는 객관적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공간이 하고 싶은 취지와 목표를 잃지 않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곧 설립 3년 차를 맞이하는 시공간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분명한 점은 이들의 여정 내내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향상이라는 이정표가 굳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