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자연의 아름다움과
귀함을 알리다

정영선 조경가 (농학과 64학번 ·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 75학번)

정영선 조경가는 기존 시설과 자연을 최대한 살려 조경을 설계한다. 조경은 땅 위의 과거를 기억하는 과정이어서 꽃과 나무를 심고, 예쁜 정원을 넘어서는 가치를 지닌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다.

국내 1세대 조경가이자 여성 1호 국토개발기술사, 조경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 한국 조경 50년 역사를 대표하는 아이콘까지. 모두 정영선 조경가를 지칭하는 수식어다. 그는 국내에 조경이란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조경설계의 중심과 방향성을 이끌고 있다. 제34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된 정영선 조경가를 만나서 그가 개척한 조경 세계와 철학을 들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제1호 졸업생이자 1세대 조경가로서
국내 조경설계 분야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고 계십니다.

누군가 조경 프로젝트를 맡긴다는 것은 일단 저라는 조경가를 믿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때문에 최대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했죠.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후에도 설계한 조경공간을 돌보려고 신경 썼습니다. 지속적인 관리와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 업무를 진행했지요. 결국, 작업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관리를 실천하는 거잖아요. 겸손한 자세로 조경에만 몰두했던 일련의 과정이 지금의 좋은 평가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조경가님의 삶과 조경 활동을 담은 전시〈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열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조경가의 역대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는 처음인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전시 기획자분들께서 큰 전시를 개최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관객분들이 전시에 가서 보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냐고 하시는데요. 작업한 스스로가 볼 때는 이것밖에 안 했나,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유의미한 작업을 더 많이 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

과거 조경을 나무 심는 일 정도로 치부했을 때, 조경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애로사항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힘들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자신만의 철학이나 인생관이 있는지요?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사소한 애로사항이야 어딜 가나 있겠지만, 조경가로 일하면서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인간이라 속상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빨리 지워버리는 게 낫잖아요. 일하는 데 중요한 것은 첫째, 일을 대하는 자세가 정직해야 합니다. 자신 스스로가 정직해야 논리적인 설득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조경을 하던 시절은 아주 초기였기 때문에 맡기는 분들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던 것 같습니다.

서울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올림픽공원, 선유도공원,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서울식물원, 북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 등의 프로젝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경관’을 재정의하셨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는지요.

어느 프로젝트는 중요하고, 어떤 것은 안 중요하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모든 프로젝트가 한결같죠. 그럼에도 굳이 말하라고 하면 지금 문득 초창기 시절이 생각나는데요. 나라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이끈다고 정부에서 전국에 있는 좋은 나무를 모았죠. 아시아선수촌이며 올림픽공원 등의 조경에 많은 것을 시도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서로 존중하며 관계자와 의견을 통합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땅에 쓰는 시〉에 출연하셨는데, 프로젝트 진행에 앞서
공간(땅)에 여러 번 가본다고 하셨습니다. 조경가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첫 단추처럼 느껴지는데요.

땅 자체는 계절별로 가볼 수 있으면 최대한 여러 번 가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 오는 날이나 더운 날, 날씨마다 땅 자체가 어떤가를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프로젝트를 맡든지 간에 그 현장은 여러 번 가는데요. 자신 스스로 땅에 대한 소화가 다 될 때까지 가서 봅니다. 관찰하고 그다음에 결과를 내는 거죠. 그게 그냥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조경가의 대상이 땅이니까, 땅의 겉과 속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지요. 땅속으로 물은 어떻게 흐르는지, 어떤 곤충이 살고 있는지, 어떤 특색을 지니는지를 말입니다. 그 지역에 원래 나는 풀들은 어떤 종류가 있는지도요.

정영선 조경가가 조경 설계한 호암미술관의 전경

조경가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요.

조경이라는 것은 건축이나 도시계획, 혹은 물을 다루는 수질학자, 곤충학자처럼 자연을 다루는 모든 전문가의 의견을 통합해 ‘땅에다 표현하는 것’입니다. 조경설계를 하다 보면, 생태학과 도시건설, 토목 등 모든 분야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요. 이때 조경가는 여러 요소를 잘 연결해 묶은 다음, 하나의 작품으로 도출해내는 연결사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정원을 만드는 일이란, 단순히 꽃 심고 나무를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와 회복이 이뤄지는 곳인 동시에, 자연과 소통하고 이를 보살피는 공간과 시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자연 본래 모습을 더 아름답게 번영시켜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 또한 조경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1세대 조경가로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조경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느끼는 변화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조경에 대한 인식과 관심 모두 높아졌습니다. 건축이나 도로, 산업단지, 주거 공간 등 모든 공사에 조경 계획이 들어가는데요. 도시계획과 토목, 조경 모든 분야가 중요한 역할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에서 살짝 언급했지만, 조경이 아직도 꽃과 나무를 심는 것이라 이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산천을 보호하면서 살기 좋은 도시이자 땅을 만드는 것, 이를 미래에 물려주는 것이 조경이 다루는 영역임을 알리고 싶습니다.

한국 조경의 개척자로 현재까지도 현업에서 조경가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조경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향후 포부가 궁금합니다.

벌레 한 마리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 생물의 존재 이유를 깨닫길 바랍니다. 자연의 소중함과 국토의 가치를 아는 조경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에게 국토를 아름답게 보는 눈을 키우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조경은 공간을 화장하듯이 예쁘게 꾸미고 나면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나라 땅은 하나의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파트와 빌딩, 도로가 들어서면서 국토의 아름다움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데요. 조경가로 활동하는 마지막 날까지,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고 소중함을 널리 퍼뜨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땅은 하나의 풍경화처럼 아름다운 장소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파트와 빌딩, 도로가 들어서면서 국토의
아름다움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데요. 조경가로 활동하는
마지막 날까지,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전하고 소중함을
널리 퍼뜨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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