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versation
주경철 역사학부 교수, 홍성욱 과학학과 교수
창의성은 길러질 수 있는 덕목일까. 역사학부 주경철 교수와 과학학과 홍성욱 교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창의적 사고와 삶’이라는 교양 과목을 오랫동안 개설해 운영한 것도, 더 많은 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동명의 책도 펴낸 것도, 그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홍성욱 교수 당시 기초교육원장님과 창의성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가 학생들의 창의성을 고양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수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주경철 교수님을 포함해 여기에 동의하는 여러 교수님과 함께 이 과목을 개설했습니다. 각자 전공만 가르치다가 다양한 분야가 한데 어우러진 수업을 만들려다 보니, 교수님들끼리 여러 차례 모여서 다양한 방법으로 커리큘럼에 대해 논의해야 했습니다. 조찬 모임, 토론, 발표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각자가 생각하는 창의성의 정의에서부터 창의성의 교육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업화하고 운영해야 할지 심도 있게 논의했고, 2012년 1학기에 첫발을 뗐습니다.
주경철 교수 첫 번째 시간은 모든 교수님이 다 같이 들어가서 수업의 방향성과 의미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했고, 교수님별로 창의성 관련 수업을 진행한 뒤 조별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에는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를 프로젝트 주제로 정한 적이 있는데요. 이 사건을 어떤 식으로 기억하고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소설, 단편영화, 음악, 웹툰 등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다른 교수님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를 찾고, 이를 조별 프로젝트로 승화시켰습니다.
홍성욱 교수 물론 이 수업을 들었다고 해서 창의성이 급성장하지는 않습니다. 입시 위주의 학창 시절을 보낸 학생들에게 기존과는 다른 수업을 제공함으로써 사고의 틀을 창의성 쪽으로 한 발 더 끌어들이는 역할은 했다고 봅니다. 이 수업을 통해서 뿌려진 창의성의 씨앗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싹트고 무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말이죠.
주경철 교수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수님들의 창의성도 일정 부분 자랐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공자들이 하나의 주제로 힘을 합치고, 공동의 수업을 구성하는 경험은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새로운 도전이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님들의 창의성도 자극한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2022년 11월에 출간한 수업과 같은 이름의 저서는 이러한 생각과 경험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경철 교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역사학과 창의성의 연관성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쉽게 말해 ‘역사학에 창의성이 필요한가?’라고 묻는 것인데요. 알고 보면 역사학은 상당히 창의적이면서도 역동적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역사가가 주목하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기후 위기가 전 세계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관심 밖에 있던 기후의 역사에 주목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컨대 ‘태양왕’으로 불리는 루이 14세의 재위 기간 중 파리의 겨울 기온이 2년 연속 영하 20℃ 정도로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이때 약 200만 명이 사망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때 사망한 프랑스인 수보다 많은 수치입니다. 이를 통해 기후가 때로는 전쟁, 혁명 시기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역사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사실을 알아낼 수 있고, 이런 점에서 높은 창의성이 필요한 학문입니다. 저도 최근에는 기존의 육지 중심의 역사가 아닌,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해양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홍성욱 교수 과학학은 과학을 역사, 철학, 기술, 사회, 정책 등에 걸쳐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두루 살펴보고 융합해야 하다 보니, 과학만큼이나 과학학 또한 창의성이 중요합니다. 주경철 교수님이 해양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계시듯, 저 또한 기술의 관점에서 인간과 세상을 해석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손가락과 손목을 연결하는 중수골이라는 뼈가 있습니다. 다른 영장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구조인데요. 인간이 도구, 즉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중수골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중수골이 발달할수록 기술도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인간이 기술을 만들었듯, 기술도 인간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상호작용은 이 순간에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 이제는 인공지능 활용에 능통한 인간을 만들고 있죠. 창의성이라는 돋보기로 과학과 과학학을 바라봐야만 깨달을 수 있는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주경철 교수 창의성은 어느 날 갑자기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능력이 아닙니다. 학습과 경험처럼 오랫동안 쌓이고 숙성된 무언가가 자연스럽게 기존의 테두리 밖으로 흘러넘치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창의성이 발현되는 순간이죠. 창의성은 기본기라는 발판이 있어야 비로소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모두가 인정하듯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하지만 그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 유럽을 떠돌며 다양한 음악을 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그의 천재성은 창의성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의성을 발휘하는 단계에 이르려면 먼저 기본기와 실력, 경험 등이 내실 있게 갖춰져야 합니다.
홍성욱 교수 아무리 창의적인 사람도 생각하지 못하는 영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분야를 섭렵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중요하고도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타인과의 협업, 다른 분야와의 융합, 소통력과 화합력이 중요합니다. ‘창의적 사고와 삶’ 수업을 조별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창의성은 대부분 긴밀한 협업을 통해 탄생한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사실 혼자만의 창의성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것 같은 인물들도 살펴보면 전승된 지식, 다수의 스승과 제자, 다방면의 사회적 교류라는 연결 고리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의성과 협업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홍성욱 교수 보통 ‘IQ’로 표현되는 지능과 창의성은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별개의 능력입니다. IQ가 노력에 따라 높아지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창의성은 노력하는 만큼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비록 노력의 양과 창의성의 향상이 비례관계는 아닐지라도, 노력하면 창의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수업할 때 학생들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주경철 교수 사실 창의성이라는 용어를 콕 집어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홍성욱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협업은 창의성 발현의 필수 요소이기에,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결과물을 만들 기회를 되도록 많이 주려고 노력합니다. 아울러 ‘학생들이 나한테 배우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끼리 서로 배우는 게 많다’는 조언을 건넵니다. 동시에 혼자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되도록 같이 공부하면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라는 말도 전하고 있습니다.
주경철 교수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는 일이나 공부를 좋아하고 매사에 열정적으로 임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창의적 혁신은 이런 과정을 통해 탄생했습니다. 창의성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신이 어떤 분야와 일을 좋아하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은 입시 중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흥미와 성향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요. 깊은 고민과 적극적 탐색으로 이 부분을 먼저 해결한다면 창의성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홍성욱 교수 그렇다고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대학교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적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수학과 물리가 좋아서 물리학과에 진학했지만, 철학과 역사, 사회도 좋아해 그 접점에 있는 과학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 분야를 살피다 보면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어지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과거 ‘창의적 사고와 삶’ 과목을 수강했던 한 제자가 취업과 연구 사이에서 오랫동안 갈팡질팡한 끝에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의 교수가 됐습니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은 덕분에 이제는 창의성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죠. 적성을 찾고, 기본기를 성실히 다지세요. 어느새 창의적 인재로 발돋움한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