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versation

인공지능은 인간의 거울이다

구본권 소장 (철학과 84학번) · 이은수 교수

우리는 AI라는 새로운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지성의 대화. ‘인간과 AI의 공존’이라는 화두를 놓고 사람과디지털연구소 구본권 소장과 철학과 이은수 교수가 인문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깊이 있고 전방위적인 사유를 풀어놓았다.

구본권 소장

현, 한겨레신문 사람과디지털연구소 소장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사
한양대학교 언론학 박사

이은수 교수

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수학과 학사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 협동과정 석사
스탠퍼드대학교 고전학 박사

지금 인간은 과거에 없던 도구를 얻었습니다. 인문학과 IT가 결합한 ‘디지털 인문학’을 연구하는
두 분께 디지털 시대에 철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은수 교수 디지털 인문학은 참 정의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여러 가지 함의가 있는 데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의가 새로워지고 있어서 관련 웹사이트(whatisdigitalhumanities.com)까지 있을 정도죠. 단순히 기술을 쓰는 것뿐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를 어떻게 기술 개발에 녹여낼까 하는 과제를 모두 포함한 시대적 흐름이라고 봅니다.

구본권 소장 제가 ‘디지털 인문학자’라는 별칭을 얻은 계기가 2015년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라는 책을 출간하고서였습니다. 이듬해 알파고가 등장해 큰 이슈가 되었고, 디지털 현실에서 철학적 문제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으로 인지되면서 ‘디지털 인문학자’로 불리게 되었죠. 디지털 이전의 세상은 순차적, 연속적으로 변화해왔습니다. 우리의 인식이나 세계관, 사회적 관계 역시 같은 방식으로 확장돼 왔는데 디지털 기술이 불연속적, 단절적으로 큰 변화를 불러왔죠. 그럼에도 저는 우리의 철학적 고민과 생각은 2500여 년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은수 교수 요즘 철학을 둘러싼 논의는 앞서 소장님의 말씀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요즘 외부 강연은 ‘인간학으로서의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주제로만 하게 되더군요.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데 인문학은 도대체 어떤 통찰을 줄 수 있느냐와 같은 사회적 요구들을 받게 되면서 더욱 고민이 많아졌습니다.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와중에도 디지털 인문학이 인간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큽니다. 이전에 포착할 수 없던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막대한 데이터로 얻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죠. 그래서 최근에는 서울대 인문대생들의 비판적 사고를 데이터화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정보 기반의 인공지능 생성은 비교적 쉽지만 저는 사람들의 행동 중 읽는다는 것, 본다는 것, 듣는다는 것, 안다는 것, 만든다는 것 등을 데이터 수집을 통해 재서술하고 싶어요.
장기적으로 저는 우리가 지금 통과하고 있는 인공지능 혁명이 단순히 기계적 발명인지 아니면 인류학적 변혁인지에 대해 철학적인 의미 부여를 하고 싶습니다. 또한 분초를 다투며 발전하는 이공계 기술을 다 섭렵할 순 없지만 인공지능과 관련한 논의들을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인문학자의 고유한 시선을 녹여내려고 애쓰고 있고요. 같은 맥락에서 인문학과 기술의 융합과 관련한 체계적인 교과과정을 보완하는 일에도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MIT와 옥스퍼드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엔지니어를 위한 전반적 창의력, 비판적 사고, 윤리학 교육을 발전시켜 오고 있습니다. 서울대가 그런 적극적인 행보를 펼쳐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들고 싶습니다.

구본권 소장 과거에는 모든 지식이 분과적이었기 때문에 한 분야의 기능을 가지고 여러 전문가가 모여서 일했지만 지금은 통섭의 시대가 됐잖아요. 우리나라에서도 공대, 자연대, 경영대, 인문대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상대 영역들에 대해서 관여하지 않고는 AI와 관련된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는 거죠. 공학자들에게 윤리학을 교육시키는 것은 우리가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 근원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인공지능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인공지능을 사용할수록 우리가 잃게 되는 것,
그리고 필요한 것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구본권 소장 저는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인공지능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도구가 새로 등장했을 때 잘 알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 되는 거죠. 우리가 만든 도구에 의해 지배받고, 머지않아 우리를 파괴할 것이라는 SF적인 상상에까지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를 받거나 인간이 파괴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이라는 강력한 도구를 쓸 줄 아는 사람들에 의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지배받고 파괴당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 강력한 힘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누가 가지는가에 대한 문제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이은수 교수 저는 창의성 이야기를 보태고 싶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프로를 이길 때만 해도 ‘계산 능력 정도는 인공지능이 더 뛰어나겠지’라고 생각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챗GPT는 좋은 데이터를 주면 인공지능이 창의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줬어요. 하지만 인간의 창의성을 포착할 수 있는 데이터를 모아주고 우리가 창의적 활동이라고 일컫는 것과 비슷한 걸 AI가 만들었다고해서 이 결과물을 창의적이라 규정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결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AI가 만든 모방과 생산적 활동은 인간의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내가 가진 능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예술 장르가 텍스트뿐이었는데 그 텍스트를 이미지나 음악으로 바꿀 수 있게 되는 것. 이건 엄청난 가능성이 열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AI가 오히려 사람의 창의성 증대에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제가 제일 걱정하는 건 다양성입니다. 이미 세계화 때문에 사람들의 경험치가 비슷해졌는데 이제는 지식마저 다 비슷해질 수 있거든요. 인간이 자세하게 지침을 줄수록 챗GPT는 최선의 답을 내놓을 거예요. 당장 학생들 리포트도 다 비슷해질 것 같아요. 그런데 인문학자로서 저는 차선의 수많은 생각들이 없어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답을 내고, 비슷한 생각만 한다는 건 너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지닌 여러 가지 한계와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도구입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만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이 될까요?

이은수 교수 인간은 죽음이라는 소멸을 향해서 가는 유한한 존재이고 실수를 할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인간이 특별한 존재인 겁니다. 인간을 닮았지만 실수가 없어야 하는 기계, 즉 인공지능을 만드는 입장에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더욱 세밀하게 알 필요가 있고, 그중에 무엇을 더하고 뺄 것인지를 잘 고민해야 합니다.
챗GPT의 등장과 더불어 이제 AI는 우리의 삶에 맞닿아 있는 보편적인 관심사가 되었어요. 사람을 꼭 닮은 AI를 만드는 일은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지능을 가진 또 다른 존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으로 경험한 단계라고도 할 수 있죠. 이제 우리 세대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AI를 만들어야 한다는 아주 중요한 책무를 지게 되었어요. 공상과학영화 같던 문제들을 이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것이죠. 우리가 고민하고 디자인하는 대로 완벽하게 새로운 존재가 탄생할 수 있는 지금이 그래서 저는 무척 흥미진진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본권 소장 철학이 항상 당대의 가장 첨예하고 치열한 문제를 끌어안는 고민의 방식이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 시대 사유의 최전선은 ‘디지털 시대에 직면하게 된 인간 존재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이 던져온 고전적인 문제, 즉 인간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디지털 환경에 맞춰서 새롭게 고민하는 것이 현재의 철학적 고민이자 인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그대로 빼닮은 존재를 만들려면 인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AI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것을 제대로 알아내야 한다는 과제가 먼저 주어지죠.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찰과 정확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만들어질 인공지능은 사용하기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양해질 겁니다. 그때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절대화하는 욕망과 자신의 최고 가치를 위해서 AI를 사용할 겁니다. 그런데 이것을 개인이 제대로 통제하는 방법이나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이런 강력한 도구를 인간 모두를 위한 약속과 사상에 맞춰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가 현재의 우리에게 던져졌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