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장병탁 AI연구원 원장
현시대, 세상의 시선은 온통 인공지능을 향한 듯하다. 과연 AI 기술은 우리의 일상을 긍정적으로 바꿔놓을 혁명이 될 수 있을까? 컴퓨터공학부 교수이자 AI연구원(AIIS)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장병탁 원장을 만나 AI와 인간의 공존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지난해 말 미국 오픈AI사가 공개한 생성형 AI ‘챗GPT’는 글을 입력해 질문하면 기존 데이터를 활용해 기대 이상의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연설문을 대신 쓰기도 하고,
MBA 과정과 의사·변호사 시험까지 통과할 정도로 걸출한 능력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올해
3월 업그레이드되어 출시된 챗GPT-4는 한국어를 포함한 26개 언어 구사가 더 원활해졌다. 그동안 SF영화에서만 맞닥뜨리던 AI의
존재감이 일상 안으로 한 발짝 더 들어온 것이다.
“챗GPT의 경우 구글이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서울대학교 캠퍼스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 잡고 있는 AI연구원 2층 집무실에서 만난 장병탁
원장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문을 열었다. “알파고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면서 AI 발전을 전문가 영역의 기술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언어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잖아요. 이전에도 언어를 활용하는 챗봇이 있었지만 크게 성공하진 못했죠. 챗GPT가 기존 챗봇과 다른 점은 방대한 문헌 데이터를 학습해서 긴 글을 써주는
초거대 AI라는 사실일 겁니다. 언어를 매개로 일상생활과 업무에 직접 활용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일상 영역에 AI가 관여하다 보니 몰입감이 커졌고 더 친밀해졌습니다.” 장
원장은 챗GPT의 GPT가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미리 훈련된 생성 변환기)’라는 뜻을 가진 어려운 기술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실망할 부분도 생길 겁니다. AI의 시각 능력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어서 세세한 정황을 파악할 순 없거든요. AI는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인터뷰인지 세미나인지
좌담인지를 한 번 보고 인식할 순 없습니다. 챗GPT만 해도 글로 학습한 형태라 다 이해한 것 같지만 텍스트 생성에 초점을 맞췄을 뿐, 문맥의 이해에는 이르지 못했지요.
현재로선 말놀이를 잘하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물론 텍스트에 관한 한 기계가 글을 읽고 작문하는 일을 어느 정도 해내게 된 셈이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AI 연구를 우리
AI연구원에서 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서울대 컴퓨터공학 학·석사를 마치고 독일 본(Bonn)대학에서 컴퓨터과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장병탁 원장은 독일국립정보기술연구소(GMD) 선임연구원 시절부터 AI 연구에
몰두해왔다. MIT 인공지능연구소 및 뇌인지과학과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했고, 한국정보과학회 인공지능소사이어티 회장을 지낸 그는 2019년부터 서울대 AI연구원을 이끌고 있다.
2019년 개원한 서울대 AI연구원은 AI 연구를 통합 지원하고 연구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원천 기술 인력을 대규모로 보유한 국내 최대
AI 연구기관으로 AI 기술 개발과 산업화, 더불어 AI가 갖는 사회적인 영향에 대한 정화 작용까지 논의하고 주도하는 중심체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재 62개 학과, 300여
명의 서울대 전임교수진이 겸무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창의적인 AI 원천 기술과 함께 모든 학문에 AI를 접목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AI의 산업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업 7곳과 멤버십을 체결해 공동 연구를 하고 있죠. 기업의 수요에 맞춘 원천 기술을 연구함으로써 산업 발전에 더욱 힘쓰고
있어요. AI가 일상과 더욱 가까워지도록 쓸모 있는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장 원장은 산업화와 함께 다학제적 접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십 년 고민하던 것이 철학과 교수를 만나 2시간 만에 해결되기도 하더군요. 인문학 분야에서는
언어 연구뿐 아니라 철학과 인류학 교수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공학, 음성인식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이 모여서 더 중요한 흐름을 찾아가고 있지요.”
장 원장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연구 분야에 대해 물었다.
“인간 수준의 AI입니다. 기계 수준이나 가상 세계의 AI가 아닌 인간 수준!”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챗GPT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합니다. 기술적 측면으로 보면 굳이
AI가 사람을 닮을 필요가 없다고도 얘기하지만 저는 인지과학 프로그램을 통한 정보처리 구조와 기능을 가진, 마치 사람 같은 인지 로봇을 개발하고 있어요. 임보디드
AI(Embodied AI), 몸을 가지고 현실 세계에서 행동하며 배우는 AI 로봇을 연구하는 거죠.”
현재로선 AI가 수능 문제를 풀 순 있어도 커피를 만들거나 청소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AI가 몸을 쓴다면 산업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할 수 있다.
“챗GPT는 말로만 하잖아요. 빅데이터로 언어를 학습했지만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AI가 컵과 양동이를 구분하려면 언어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컵과 양동이를
다르게 인식할 수 있어야 해요. 사진을 딥러닝(Deep Learning) 해야 합니다. 구분 정도를 넘어 제대로 이해하려면 소리 인식을 포함해 여러 경험을 체화한 인지가
필요한데 현재로선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몸이 필요한 것이죠. 센서를 통해 AI가 스스로 체험 학습하도록 하는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지각도 하고, 행동도 하는
AI에 대한 연구입니다.”
AI가 책상 위에 놓인 여러 과일 중에 바나나를 구분해 내게 직접 가져올 수 있도록 총체적인 지식을 불어넣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장 원장은 이처럼 인간
수준의 AI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
초기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10~20년 후면 AI가 체스 게임에서 사람을 이길 것이라 예측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47년이나 걸렸다. 그런데 알파고는 달랐다. 바둑은 체스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인데도 AI가 금세 학습해버렸다. 존재하는 지식을 넣으려 한 방식에서 벗어나 딥러닝을 통해 ‘경험하는 AI’로 진화한 덕분이었다. AI도 성장한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면 스스로 학습하는 AI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AI의 진화를 급속도로 앞당기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결국 사람과 AI가 함께 진화해 나아가겠죠. 공존과 함께 공진화하는 것입니다. 배제하는 것은 뒤처지는 일이 될 테니
성숙한 사람들은 AI를 도구 삼아 더 부가가치 높은 일을 하며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할 거예요. 같이 살아가는 관계가 되는 것이죠. 더 놀랄 일은 계속될
거예요. 설령 AI가 식상한 일상적 존재가 되더라도.”
장병탁 원장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며 AI 연구에 관심 있는 학생이나 시민에게 전할 조언을 구했다.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먼저 이야기했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AI를 연구하면 좋겠습니다.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래야 합니다. 기존 학문 분야가 살펴보지 못한 사람의 다른 측면을 AI를 통해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AI 연구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한 가지 학문 분야가 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