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샤로잡다

삶을 변화시키는
‘품위 있는 죽음’

윤영호 의과대학 교수

의료진이나 가족에 의한 마지막 순간이 아닌 스스로 삶을 완성하는 ‘품위 있는 죽음’, 즉 웰다잉(Well-dying)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해온 윤영호 교수가 지난 1월 21일 서울대학교 유튜브 콘텐츠 ‘샤로잡다’ 촬영에 나섰다. 카메라 앞에서 웰다잉을 다각적으로 조망한 그의 이야기를 ‘미리 보기’ 해보자.

서울대학교 공식 유튜브 ‘샤로잡다’ →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웰다잉’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임종을 맞이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죽음은 상당수가 병원에서 차가운 조명과 기계음에 둘러싸인 채 이뤄집니다. 물론 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당연히 병원에 있어야겠지만, 치료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상황이라면 환자가 스스로 삶을 의미 깊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TV 드라마 ‘서른, 아홉’ 속 인물들처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고 소중한 이들을 초대해 생전 장례식을 치르면서 삶을 아름답게 정리한다면, 이는 웰다잉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 대신 호스피스에 들어가 고통을 최소화하며 남은 생을 사는 것도 웰다잉이죠. 선진국을 중심으로 속속 시행되고 있는 의사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포함한 의사조력사망도 웰다잉의 범주에 속합니다. 요컨대 웰다잉은 법적, 의료적 테두리 안에서 각자가 정한 품위 있는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는 모든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웰다잉을 위한 법’이라 불리는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엇인지요.

현대의학으로는 더는 치료할 수 없는 말기환자의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무의미한 연명의료라고 합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스스로 결정하거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도록 하는 법입니다. 호스피스 분야는 2017년 8월 4일, 연명의료 분야는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20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층의 85.6%가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반대할 만큼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등록률은 2022년 12월 기준 2.4%에 불과하고, 실제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하는 비율은 2023년 기준 20.1%에 불과합니다. 사회적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한 웰다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입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지금은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에서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는데요. 우리 국민은 정기적으로 국가건강검진을 받고 있잖아요. 이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고, 원하는 경우 작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면 등록률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중증질환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권유함으로써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겠죠. 마지막으로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는 담당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함으로써 웰다잉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까지 언급한 세 번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에 대해 의사 상담을 통해 작성할 경우 건강보험을 인정해 국가가 일정 수가를 지급한다면, 연명의료결정법이 더욱 활발하게 시행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무엇이며,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이용률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낮은 이유도 궁금합니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앓는 환자의 신체적 증상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환자와 가족의 심리사회적, 영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성직자 등이 전문팀을 이뤄 환자와 가족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는 의료 서비스입니다. 즉 말기 진단을 받거나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와 가족이 아프지 않도록 최대한 돌봐주는 일련의 활동인데요. 우리나라는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 4개 질환의 말기 환자만 호스피스 이용이 가능하도록 법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아울러 전국의 각 병원이 적자, 관리 어려움 등을 이유로 대부분 호스피스 기관을 운영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런 점들이 우리나라 호스피스 이용률을 낮추는 요인입니다. 호스피스를 활성화하려면 정부 지원금을 늘리고 운영비를 위한 수가를 현실화해야 합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호스피스 이용 시, 사망 전 6개월 의료비가 1인당 520만 원 감소했고, 이 중 건강보험 절감액이 370만 원에 달합니다. 이렇게 아낀 재원으로 호스피스 기관 확충에 나선다면, 더 많은 사람이 웰다잉을 실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웰다잉의 한 방편으로 꼽히는 조력존엄사가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질 위험성은 없는지요.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경우, 합리적 의사결정 절차를 통해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존엄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는 말기 환자에 한해, 자발성과 진정성을 검증하고 조력존엄사 여부를 결정하는 조력존엄사위원회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엄격하게 시행한다면 생명 경시와 사회적 타살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조력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를 공론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죽음’에 관해 연구하고 관련 활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해왔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떠올리면 삶의 소중함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고, 죽기 전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다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습니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라고 말했고, 실제로 아이폰 등의 혁신 제품을 내놓으며 세상을 뒤흔들었죠. 죽음을 고찰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을 통해 삶의 중요성과 올바른 방향성을 깨달을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죽음에 대한 보다 다채롭고 건설적인 사회적 담론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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