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versation
홍종호 환경대학원 환경관리학과 교수
이요한 농업생명과학대학 산림환경학 교수
과거 산업화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우리의 삶은 편해졌지만, 이로 인해 환경오염과 기후 위기는 세계적인 쟁점이 됐다. 산림 파괴와 기후 위기로 국제 경제 판도는 다각도로 바뀌고 있다.
홍종호 교수 학부 입학부터 경제학을 공부한 지 43년 됐습니다. 환경에 관한 관심은 1980년대 학부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 성장을 국가가 외치는 시대였고 환경보다는 산업화에 더 치중된 분위기였습니다. 1992년에 브라질에서 리우회의(지구정상회의)가 개최됐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 내에서 환경에 관심이 급속도로 커졌죠. 1994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와서 활동 폭이 한층 넓어졌는데, 세계의 흐름과 함께 정부 정책이나 관련 법,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시기였습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의 10년이 대한민국 환경 10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요한 교수 리우회의는 환경의 지속가능성 한계를 전 세계가 같이 인식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95학번이니까, 산림자원학과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시민들은 환경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다만 ‘자연은 보호해야 하지만 공공재로서 무료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산림은 국가기관인 산림청이 주도적으로 공급, 관리하는 시기였습니다. 전공하던 산림자원학과 자체는 ‘숲’이라는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인데요. 경제학 수업을 들으면서 산림의 경제적 가치를 공부하는데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홍종호 교수 현 청년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산에 나무가 울창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겁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가 헐벗은 산을 살리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입산금지’ 표현이 있을 정도로 조림과 산림 보호에 힘썼죠. 산림과 경제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울창한 나무숲이 없다면 당장 등산이 어렵습니다. ‘등산’도 하나의 ‘여가 경제활동’이죠. 또한, 산에 나무가 없으면 물을 저장하지 못합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나무가 녹색 댐 역할을 못 해서 농업과 어업 같은 1차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산림이 흔들리면 전반적인 경제활동에 악영향을 주게 됩니다.
이요한 교수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은 산업화 초기에 자연 자원을 훼손시킵니다. 환경이 파괴되면서 산업화가 일어나고 경제가 발전하는데 우리나라는 매우 특이하게 산업화 초기에 복원한 거죠. 산림이 우리나라에서 상징적인 이유인데요. 그래서 UN에서 우리나라를 유일하게 경제 성장과 산림복원을 함께 성공시킨 국가로 평가합니다. 앞으로는 화석연료에 기반을 두고 ‘경제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명제에 대부분 동의하실 겁니다. 지금은 ‘전통적인 가치관이 바뀌어야 하는 시기’인데 그 하나가 자연환경의 가치인 것 같습니다.
이요한 교수 환경경제학에서 주류로 나온 것인데 ‘평가한 자연환경 가치’는 시장에서 거래하지 않기 때문에 ‘비시장재화에 대한 가치평가’라는 기법으로 처음 개발되었습니다. 산림도 마찬가지로 이 방법을 적용해서 공익적인 가치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자연을 원래부터 있던 자원으로 여겨서 가치를 ‘0’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산림청발표(2020년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연간 259조 정도입니다. 겉으로 보면 자연은 가만히 있지만, 인간은 노동 없이 자연이 일한 맑은 물과 공기, 탄소 저장 가치를 누리고 있는 거죠. 최근 들어 이런 환경 공공재의 가치를 평가하여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자발적 탄소시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정략적으로 탄소의 가치를 평가해서 크레딧(credit)으로 거래하는데요. 대표적으로 UN 기후변화협약에서 인정한 탄소 시장 관련 제도가 있습니다. 지금은 학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발전하여 실물 경제에 적용 가능한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홍종호 교수 산림의 보전이나 가치를 정부와 기업, 국민이 ‘충분히 인정하고 어떻게 보전하는가’를 보면 아직 우리나라는 갈 길이 먼데요. 과거에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만이 중요했습니다. 경제발전의 이면에 대규모 자연 파괴가 있었습니다. 살기 편해지고 쾌적한 경제 수준에 이른 2000년대가 돼서야 대기 질이나 산림 보전과 같은 자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을 화폐 가치, 즉 돈으로 따지는 접근방법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로서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환경’을 화폐로 ‘계산’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경제학 분야는 물론, 생태학과 생태경제학 분야 연구에서도 생태계의 경제적 가치평가를 수용하는 논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구의 생태 가치를 돈으로 계산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일반 대중과 정치인들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는 것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는 노력이자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홍종호 교수 2024년 10월 스페인 남동부 지역에 8시간 동안 비가 490mm 내렸습니다. 통상 1년 강우량이 500mm 정도 되는 곳입니다. 결국 이곳 발렌시아 지역의 올리브 재배가 초토화됐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는 개발도상국만이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연재해는 인간의 생존 문제와 직결됩니다. 우리나라처럼 쌀을 제외한 곡물 자급률이 낮은 국가는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높아서 기후변화가 심각해질수록 커다란 경제적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앞서가는 기업들은 너도나도 탈탄소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산업계의 탈탄소 실천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OECD 주요 국가들 중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만, 해외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 제조업 부문의 탈탄소 경쟁력은 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탈탄소 무역규제가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만큼, 우리 경제가 녹색화되지 않으면 글로벌 시장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요한 교수 비슷한 맥락일 것 같은데요. 산림과 같은 공공재에 민간이 투자하는 가치 창출은 우리나라가 소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린 경제로 변화하기 위해 민간 주도의 혁신이 절실합니다. 2021년도에 우연한 계기로 ‘산림수종 데이터 온라인 해커톤’ 대회에 참여하여 입상했는데요. 이때, 다뤘던 주제가 산림청이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산림수종을 유용하게 관리하는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것이었습니다. AI를 기반으로 전국의 산림분포를 디지털 지도로 만들었는데요. 어느 지역에 어떤 수종이 분포하는지 오픈소스로 정보를 제공하면 ‘숲 관리의 방향성을 정해서 숲을 효율적으로 보존하는 플랫폼’ 제공이 목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시스템 자체가 이용되지 않고 정부가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단계지만, 불과 몇 년 사이에 관련 분야는 급속히 발전했습니다. 최근 산림청이나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나오는 연구들이 대부분 AI를 토대로 국내 산림자원 정보를 인공위성이나 드론 같은 시각 장비를 활용해서 디지털 정보로 변환시켜 공유합니다. 산업계와 정부는 어떻게 체계적으로 수종을 관리해야 하는지, 탄소흡수량을 증진 시키는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하고 종합적인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요한 교수
글로벌 선도 기업인 애플사나 아마존닷컴도 탄소중립을 위한 최적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모의실험을 해도 완벽하게 이루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미진한 부분은 산림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활동으로 완벽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의 산업을 가진 국가여서 탄소중립은 지난한 과정이 필요할 겁니다.
오롯이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우리나라는 단박에 현재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뛰어넘어서 탄소중립으로 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탄소시장에서 산림 같은 공공재를 거래하는 체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인증서로 그 숲의 가치를 평가했다면 지금은 탄소 크레딧(credit)으로 발급해서 시장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습니다.
탄소 크레딧은 기존 산림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고 추가로 나무를 심고 조림을 해야 생깁니다. 이미 조성된 숲은 추가로 생기는 탄소가 아니니까 크레딧을 주지 않습니다. 나무를 새로 심고, 황폐한 숲을 복원하거나 훨씬 숲을 울창하게 만들고, 산불, 산사태 같은 재해를 막는 것도 탄소 크레딧의 양을 늘릴 수 있습니다. 또한, 열대림 보전을
통한 해외온실가스감축제도가 있습니다. UN 기후변화협약에서 개발도상국이 숲을 보존한 노력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제도가 대두되었고, 레드플러스사업(Reducing Emissions from Deforestation)을 도입했습니다. 숲을 잘 보존하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제도이지만 비용 효율적이면서 단시간에 효과가 나타나는 제도여서
관심이 필요한 제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산림청에서 ‘산림 탄소 상쇄제도’를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고, 레드플러스사업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산림분야의 탄소중립을 위한 노력을 국가가 주도했는데요. 바람이 있다면 약 65%의 산림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민간 기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투자 시장이 확대돼서 좀 더 빠른
탄소중립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홍종호 교수 다들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중요한 의사결정 순간이 되면 환경과 기후는 뒷전으로 밀리는 정책이 많습니다. 독일 연방정부는 경제부에 기후를 더해 ‘경제기후보호부’로 운영하다가 최근에는 더욱 적극적인 정책 의지를 담아 ‘경제기후행동부’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기후와 경제를 통합적으로 보는 독일 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거죠. 우리나라로 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후를 중심에 두고 경제정책을 꾸리는 것과 같습니다. 경제정책이 바뀌지 않으면 ‘그린’ 달성은 어렵습니다. 시작은 환경이지만 결국 경제정책입니다. 기업은 경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니 단기적으로는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결국은 우리나라 기업과 경제를 위해 이득이 되는 길입니다. 정부가 목표의식을 갖고 일관된 정책을 편다면 탈탄소 경제를 향한 소비자와 기업의 참여가 활발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