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번역가가 이해하는
작품을 번역한다

나수호 국어국문학과 교수

하나의 선택이 인생의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국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나수호 교수는 1995년 우연히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어를 공부한 것이 작은 시발점이 되어, 한국문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취미로 한국문학 번역을 시작했다.

나수호 교수는 2003년 한국문학번역 신인상, 2013년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으로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그렇게 한국문학 번역과 국어국문학 공부는 본격적인 주요 활동이 되었다. 현재 그는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고전문학 중에서도 구비문학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우연한 한국 방문을 계기로, 변화의 시작이 일어나다

나수호 교수는 1995년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서울대 국문과에서 구비문학 전공과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일본학을 공부할 계획이었다.
“일본에 가기 전 한국에서 6개월이나 1년 정도 있다가 가려고 했습니다. 한국에 머물면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답답하더군요. 막상 한국어를 배워보니, 한국문학이나 문화에 관심이 갔습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졌죠.”
과거 나 교수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시기만 해도, 중국학이나 일본학은 잘 알려진 분위기였다. 그에 반해 한국학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상황. 하지만 한국어를 접하면서 자연스레 한국문학과 문화를 선택하고 공부하게 된 것이다. 그에게 국어국문학은 전혀 몰랐던 분야였기에, 더욱 크고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국어국문학과는 국어학과 현대문학, 고전문학 세 전공으로 나뉩니다. 현대문학이 아니라 고전문학을 먼저 전공하겠다고 결정했어요. 본래 중세 문학이나 월리엄 셰익스피어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고전문학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고전문학에서는 고전시가, 고전소설, 한문학, 구비문학을 배우는데 한문학은 한자 때문에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고전시가나 고전소설도 재미있을 것 같았지만,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구비문학이 흥미로웠다. 그가 생각하는 구비문학의 가치, 중요성은 무엇인지 물었다.
“물론 모든 문학에 해당하는 표현이겠지만요. 개인적으로 구비문학을 공부하면서 ‘살아 있는 문학’이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입으로 전해지고 생성되는 것이 구비문학인 만큼, 늘 새로운 문학이 생성되는 거니까요. 과거에 이어 현재까지도 구비문학은 이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점이 가치 있게 느껴졌습니다.”

외국인 학생에게 한국을 깊게, 제대로 이해시키다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지 어느덧 10여 년.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수업은 갈수록 참여율이 높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한국어, 한국문학을 공부하려는 외국인 학생들이 늘고 있다.
“국문과 교수로 부임하던 10년 전과 비교하면 학생들의 수업 참여가 확실히 증가했습니다. 한류 영향도 있는 것 같고 한국에 관심이 커졌죠. 학기마다 수업할 때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좀 더 재미있게 한국 문화를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수업해보면 한국 문화와 관련된 것은 저보다 학생들이 더 잘 안답니다. K-pop이라든지 한국 문화 트렌드, 유행하는 콘텐츠 등이 다양하니까요.”
강의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매번 똑같으면 지루할 수 있다. 때문에, 그는 재미있고 새롭게 수업을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학생들과 외부로 나가는 투어 형태의 야외수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경복궁에 가서, 한국문학과 관련된 스토리텔링 투어 수업을 한다.
“투어 수업을 하면서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편입니다. 최근의 중요한 주제를 다루면서 구비문학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까, 구상하기도 하고요.”
그는 외국인 교환학생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학 강의를 한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 학생의 참여가 높은 만큼,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주력한다. 한국 문화에 대한 막연한 로망이라든가, 대중매체로 얻은 잘못된 정보 등은 바로잡고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수업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국문학 작품, 한국문학 번역가의 중요성

최근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문학 번역가인 그에게 세계문학계에서 주목받는 한강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한강 작가의 작품 중에서 ‘소년이 온다’를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해외에서 한강 작가를 눈여겨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다들 궁금하잖아요.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 때, 그 나라의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식주의자’라는 작품도 그런 면이 강한 것 같고요. 한편으로 작품 못지않게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어도 좋은 번역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 작가가 피력하는 메시지 전달이나 작품이 주는 공감대 형성에 실패할 수도 있다. 노벨상 수상이 있기까지, 좋은 작품에 훌륭한 번역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이치인 셈이다.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학 번역가가 지녀야 할 자질과 기본 요소는 무엇일까. 그는 ‘번역가의 민첩성’을 꼽는다.
“문학번역은 2차 창작을 하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번역하다 보면 자신이 번역하는 책이 문학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자기 문학을 쓰는 경우라면 더 유리한 것 같습니다. 그냥 번역하는 게 아니라 번역가도 예술성이 있어야 하죠. 저 같은 경우, 영문학을 전공했고 구체적으로는 문예창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번역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는 염상섭의 ‘만세전’부터 전상국의 ‘플라나리아’, 김영하의 ‘검은 꽃’ 등 여러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독자보다 번역가가 되어 책을 읽어보면서 작품을 이해하는 깊이가 상당히 달라야 한다는 걸 느꼈다. 번역 작업 시 고민되는 부분은 친구나 가족한테 읽어달라고 부탁하고, 교차 독해를 자주 시도하는 편이다. 텍스트의 해석 없이 번역하기란 불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문학번역은 작품을 읽고 느낀 것을 자신의 언어로 한 번 더 쓰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을 먹고 소화한 후 이를 번역이라는 이름으로 완성하는 작업 같다는 생각이죠. 번역가가 이해하는 작품을 번역하는 행위이므로, 주관적이고요. 객관적인 번역은 없는 것 같습니다.”

문학번역은 작품을 읽고 느낀 것을
자신의 언어로 한 번 더 쓰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을 먹고 소화한 후 이를 번역이라는
이름으로 완성하는 작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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