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유물의 보존이 있어야 미래가 있다

러실라 서울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원 (인류학과 대학원 20학번)

세상은 변해도 역사 속 유물, 문화의 가치는 영원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유물 수리는 필요하지만, 변색하거나 변질돼서는 안 된다. 유물의 가치를 보존하려면 많은 이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네팔에서 온 학예연구원 ‘러실라 머허러전(Rashila Maharjan)’. 외국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말이 유창하다. 대학교에서는 국어국문학을, 대학원에서는 인류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지금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보존 가치를 알리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를 여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공부하고 싶다는 러실라 학예연구원을 만났다.

개관 이래 처음 열린, 보존 수리 특별전

서울대학교박물관은 소장하고 있는 유산들을 매해 보존하고 수리한다. 서울대학교박물관이 개관 이래 처음으로 보존과 수리를 주제로 ‘수리수리 보존수리’ 기획특별전을 개최했다. 특별전은 지난해 10월 12일부터 올해 3월 29일까지 장기간 열리는 전시회다. 러실라 학예연구원이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입사한 이후, 함께 참여한 첫 번째 기획전시가 ‘수리수리 보존수리’다.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는 매년 특별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전시를 준비하는데요. 이번 전시는 모든 부서가 보존 수리한 유물들을 엄선해 소개하게 됐습니다. 전시에 출품한 유물 가운데서도 다양한 재료로 구성된 인류민속품의 종류와 수량이 가장 많은데요. 그동안 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조사하고 정리했던 유물들을 선보이는 뜻깊은 기회여서 뿌듯합니다.”
서울대학교박물관은 그동안 모든 유물을 꾸준히 수리하고 있었다. 보존과 수리만 해왔던, 한 번도 공개한 적 없는 유물이 전시 주제가 된 것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박물관에 대한 선입견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서울대학교박물관이 하는 일은 생각보다 지속적이고 다양합니다. 유물 관리뿐만 아니라, 수리하면서 유물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의 역할을 이번 특별전을 계기로 널리 알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수리수리 보존수리’전은 1부 토기부터 탈, 관모, 목가구, 금속 유물, 서화 유물까지 6부로 구성된다. 이제껏 미처 몰랐던 부분에 초점을 맞춰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각 유물마다 특징이 다르고 보존하는 환경이 다르다. 각 부의 유물들이 어떻게 수리되는지 관련 과정을 비교하면서 관람하는 것도 이곳만의 재미 요소다.
“유물은 특징이 모두 달라서 박물관에서는 최적의 온도, 습도, 조도 등을 맞춤형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수리 방법의 난이도와 기간도 유물의 현재 상태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이번 전시는 유물특징과 보존 환경, 수리법을 구분해서 설명했는데요. 관람객 설문조사에서 ‘설명을 확실하게 해주니 이해가 쉽고 재미있다’는 공통된 의견이 많았습니다.”

본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오래 보존하다

언뜻 생각하기에 박물관에서는 유물 전시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유물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하고 수리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유물 보관은 수장고에 하는데, 수시로 수장고에 가서 유물 상태를 파악한다. 더러운 부분은 청소하고, 상태가 안 좋은 것은 실사하면서 관리가 필요한 유물들을 논의를 거쳐 선발한다. 선발한 후에는 전문가에게 수리를 맡긴다. 선발하기까지, 전시와 유물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늘 생각하고 고심한다.
“2017년부터 국가유산청의 지원을 받아서 보다 체계화된 복원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보존 수리 기법은 기술이 발달하면서 조금씩 변해왔지만, 보존 수리의 원칙은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세 문장으로 정리해서 전시실 입구 프롤로그에 배치했습니다. ‘원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는다. 꼭 필요한 부분만 수리한다. 그리고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한다’인데요. 유물은 망가졌다고 해서 완전히 새것처럼 복구할 수가 없어요. 유물만의 고유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유물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수리해야 의미가 있다. 취약한 소재로 제작된 유물이라면 유사 재질로 수리한다. 예를 들어 말꼬리로 만들어진 관모는 동일 소재의 말총이 없으면 채우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 일부러 채우지 않고 그대로 두기도 한다. 변화된 유물이라도 유사한 재질이 없으면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복원의 의미가 크다. 후세에 유물 본연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존 수리한 유물의 전과 후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찢어지거나 갈라진 부분을 메꾸는 등 극적인 변화만이 보존 수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물이 손상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박물관이 생각하는 수리입니다. 유물을 보존 수리해서 ‘새것으로 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전시가 고정관념을 전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네팔에서 온 학예연구원이 바라보는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

러실라 학예연구원은 2023년 9월부터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연구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2015년에 한국 유학을 결정했다. 아는 한국말은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가 전부였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한국어능력시험이 합격 기준 중 하나였는데, 노력한 끝에 합격했다. 관심이 높았던 언어와 문화 덕분에 국어국문학 전공이 가능했다.
“언어를 너무 좋아했어요. 한국어 공부도 재미있지만, 문학을 통해 민요나 구비문학, 그 안에 얽히고설킨 역사도 흥미로웠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는 민속학을 함께 다루며 공부할 수 있는 인류학을 선택하게 됐고요. 국문학에서는 배우지 못한 인류 연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활동한 지 1년이 넘은 지금, 그녀는 문화유산의 보존과 기록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깨닫고 있다. 직접적으로 유물을 다루고 관리하다 보니, 유물의 가치를 몸소 체험하게 된다.
“보존 없이는 유물이 없고, 유물이 없으면 박물관도 없다는 생각을 갈수록 하게 됩니다. 계절이 변할 때마다 걱정과 고민이 많아요. 습도, 온도 차이로 유물의 상태가 달라서 티가 나거든요. 늘 세심하게 확인하고 관련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함을 배웁니다.”

외국인 학예연구원이 꿈꾸는 학예연구사, 그녀가 바라보는 문화유산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녀는 ‘올드하다’는 박물관의 선입견을 깨고 모든 연령대가 찾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외국인 학예연구원, 낯설게 들릴 수 있는데요. 외국인이 한국 유산, 유물을 연구하면 자국 문화와 비교할 수 있으니 좋습니다. 비교 연구가 되고 동시에 공유하는 부분이 생기죠. 기존과 다른 저만의 시선에서 문화적 가치를 바라볼 수도 있고요.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다양한 시선에서 연구할 수 있어서 장점으로 생각합니다. 유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학예연구 활동을 펼치고 싶습니다.”

극적인 변화만이 보존 수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유물이 손상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박물관이 생각하는 수리입니다.
이번 전시가 고정관념을 전환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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