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U donator
한운성 서양화과 명예교수(회화과 65학번)
얼마 전 무려 100점의 작품을 기증한 한운성 명예교수는 서울대학교미술관의 미래가 기증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퇴임 10년을 기념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언젠가 외국 여행자가 그림을 보기 위해 서울대미술관을 찾는 그날을 생각한 밑그림이라고 전했다.
지난 5월 아이패드로 그린 작품 30여 점을 중심으로 <한운성의 아이패드 드로잉>전을 선보였던 한운성 서양화과 명예교수는 전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그림
100점을 골라 서울대학교미술관에 기증해 또 한 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한국의 데이비드 호크니’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파격적인 회화 작품을 내놓곤 하는 그의 작업실에는 작품 100점의 빈자리만큼 뜨거운 열정이 가득 채워진 듯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대표작 가운데 ‘나이트 호크(Nighthawks,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를 아시나요?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 한국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죠. 많은 관람객이 그 작품을 기대했을 텐데. 사실 그 작품은 시카고예술대학 미술관에 있어요. 저는 대학 미술관이 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 작품 하나를 보기 위해 시카고를 방문할 정도니 대단하지 않나요?”
기증에 대한 생각은 은퇴하기 전, 미술대학 부학장과 미술관 운영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부터 키워온 꿈이었다.
“서울대학교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대학 미술관입니다.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 졸업생인 삼성 홍라희 여사가 리움미술관 관장으로 있을 때 지어준 것이 그 시작이었죠. 네덜란드의 유명 건축가 렘 콜하스가 멋들어지게 지은 미술관은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가 부족해요. 도쿄대 미술관만 해도 3만 점을 보유하고
있는데, 현재 서울대학교미술관의 작품 수는 800점이죠. 미술관 운영위원회를 하면서 나중에 퇴임하면 작품을 추려서 꼭 기증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기부와 기증에 대한 마음은 그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을 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듯했다. 부자가 아니어도 배움을 지속할 수 있고, 새로운 곳에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그때까지 우리나라의 기부, 기증 문화는 미미한 편이었지만, 한 교수는 이제 활성화될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후 ‘이 작품이 기증 문화의 씨앗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기증을 실천했다. 지금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대구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등 국공립 미술관 8곳에 작품 600여 점을 기증했다.
첫 기증의 시작은 한 편의 꽁트 같았다. 한운성 교수는 필라델피아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귀국한 후에 덕성여대 교수로 강의를 시작하고 32세에 모교로 돌아왔다.
“제가 교수실에 앉아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어요. 광주시립미술관 관장님이었지요. 광주시립미술관이 개관했는데, 작품이 부족해서 교수실마다 문을 두드리고 기증을 요청한 거예요. 당장 15호짜리 작품을 하나 가져갔죠. 지금까지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대학교나 국공립 미술관의 부족한 예산을 감안할 때 해외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은 기증밖에 없다. 한운성 교수가 이번에 기증한 것도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기증에 대한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작가들은 작품을 자식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런데 자식을 데리고만 있으면 어떡합니까. 시집,
장가를 빨리 보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은 대갓집 아니겠어요? 다른 어떤 곳보다 작품 관리도 잘 되고, 내가 기증한 작품을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잖아요.”
한운성 교수는 기부 문화와 더불어 ‘디자인 감각’을 서울대학교에 불어넣고 싶다고 덧붙였다. 3천여 명에 달하는 교수 명함을 비롯해 각종 기념 감사패, 학생회관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등에 서울대학교의 이미지를 담고 관리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즉 전문 디자이너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이야기였다.
학교를 떠난 지 벌써 10년, 이미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세월은 무게가 아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지나온 세월에서 보지 못하고 하지 못했던 또 다른 것을 시도하는 힘. 작업 중인 작품들 사이에서 이뤄진 짧은 인터뷰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름다움은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는 말이
오감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