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오래된 미래,
빙하에서 기후위기 해결책을 찾습니다

안진호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지구 온도의 비밀을 추적하는 과학자’ 안진호 교수는 80만 년 전 생성된 빙하에 담긴 온실가스를 연구하며 지구의 미래 기후를 예측한다. 까마득한 과거의 비밀을 풀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2014년 대한민국의 두 번째 남극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에 도착한 연구원들은 영하 35.8℃에 사방이 얼음뿐인 풍경을 마주한다. 끝없이 펼쳐진 빙하들. 산봉우리조차 까마득하게 작아 보였다. 10여 년 동안 실험실에서 빙하를 분석하다 남극에 첫발을 디딘 안진호 교수는 그날을 인생의 새로운 기점으로 기억한다.
“석사과정까지 지질학을 공부하다 박사과정에서 빙하에 들어 있는 과거의 온실가스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남극에 막 도착했을 때 그 압도적인 자연환경에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하지만 동시에 인간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품고 있는 빙하의 한 조각을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안진호 교수는 빙하 연구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척박한 환경을 개선해가며 국내 유일의 빙하 온실가스 농도 측정 장비를 개발하고, 국내에서 빙하를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현재 국가미래전략원 탄소중립 클러스터 참여 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만년이 지나도 온실가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빙하 시료에서 대기 중의 온실기체 농도를 측정하고, 고기후를 연구하며 기후 모델을 정립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지구의 대기를 가득 채울 것처럼 늘어만 가는 온실가스. 그러면 과연 과거의 온실가스는 어땠을까?’ 그 해답이 바로 100만 년 전에 발생한 온실가스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빙하에 담겨 있다. 온실가스 문제는 지구와 인류의 안위를 좌우하는 이슈. 안 교수가 과학자로서 갖는 책임감도 무겁다.
“한번 배출된 온실가스는 금방 사라지지 않아요. 그게 문제죠.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도 현존하는 온실가스의 농도는 금세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배출된 탄소의 공기 중 체류 기간이 수백 년에서 수천 년을 넘나들기 때문이에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10~20%는 1만 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당장 전 세계의 탄소 배출이 멈춘다고 해도 이미 녹기 시작한 빙하는 계속 녹고, 해수면은 상승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탄소 배출량을 떨어트려 여러 기후재난을 줄이는 거죠. 유럽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많이 늦은 편입니다.”

안진호 교수는 온실기체 3종(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농도 측정 기계는 물론, 온실가스 동위원소 측정 기계도 만들어 연구 중이다.

빙하가 알려주는 지구의 미래

지난 2014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가 2℃ 이상 오를 경우 인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내용의 5차 보고서를 발표한 이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2100년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더 나아가 1.5℃로 제한하기로 한다’는 일명 ‘파리협정’을 채택하면서 전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에 발간된 IPCC 기후변화보고서에 주 저자로 참여했던 안진호 교수는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를 측정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조차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빙하/고기후 연구실’을 이끌면서 온실가스가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동위원소 측정을 시작해 정확한 기후 모델에 사용되는 온실가스 농도를 측정하는 것은 물론, 기후위기를 대비할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과거의 기후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정확한 기후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서입니다. 온실가스는 대기 중에 오래 체류해요. 메탄은 10년, 아산화질소는 120년 정도, 이산화탄소는 수천 년을 갑니다. 그래서 이 온실기체를 파악하려면 정말 오랜 기간의 자료가 필요해요. 그 때문에 과학자들이 1980년대부터 빙하를 이용해 온실가스를 연구하기 시작한 거죠. 온실가스와 기후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져왔는지,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래서 빙하와 눈으로 덮인 지역, 즉 ‘빙권(氷圈)’ 연구가 중요합니다. 기후변화의 내력을 잘 보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기후까지 예측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빙하가 녹으면 기포가 터지면서 ‘톡톡’ 소리가 난다.

정해진 미래, 예측과 대비가 필요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은 지구온난화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지금 과학자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1~2℃의 지구 온도 상승보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기후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기후위기 시계는 지금과 같은 탄소 배출 추이라면 7년 후 인류는 현재와 같은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득한 옛날의 기후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인류에게 들려주는 메시지를 추적하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되기에 안진호 교수는 확고한 믿음으로 빙하를 통한 온실가스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먼 과거에 지금과 기온이 비슷하거나 더 따뜻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갑자기 온실가스가 방출되었던 시기도 있었죠. 일종의 자연적인 기후 변화 실험이 있었던 거예요. 그 데이터를 잘 연구하면 지금보다 지구 온도가 3℃나 높아질지도 모를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후 및 환경 변화를 알아낸다면 생물학적·생태학적 환경 변화까지도 예측해볼 수 있을 겁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과학자가 예측하듯 앞으로 기후위기, 기후재난이 더 커질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에 가깝다. 다만 해수면이 2100년까지 1m 올라가느냐, 2300년까지 5m 혹은 15m 올라갈 것인가는 현재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안진호 교수는 강조했다.
“저는 지금 학교에서 기후위기 교양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준정 교수님, 환경대학원에서 환경경제학을 연구하시는 홍종호 교수님과 함께 하고 있어요. 그 수업을 통해서 제가 연구하는 분야 외에도 경제학적인 관점이나 인문사회학적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어떻게 볼 것인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분야에서 기후위기를 함께 고민하는 건 이 문제가 우리의 삶 자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체적인 기술 개발로 만드는 온실가스 예측 모델

온실가스 연구에는 해양, 대기, 빙하, 동토 등이 모두 중요하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빙하를 중심으로 온실가스를 연구해온 안진호 교수는 온실가스 동위원소 측정을 통해 온실가스의 거동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한 토대를 다지고 있다. 이와 함께 기후위기 문제 파악의 중요한 단서로 주목받는 빙권에 대한 연구를 서울대학교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를 희망한다.
“빙하에서 과거의 공기를 추출해 온실가스 농도를 측정하는 기술은 저희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문제는 온실가스 동위원소 측정 기술이 아직 걸음마 수준이라는 겁니다. 온실가스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농도뿐 아니라 동위원소 측정이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자체 기술을 개발하고, 그 장비를 다룰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미래 기후 환경 변화를 대비하기 위한 온실가스 거동 모델을 개발하려 합니다.”

빙하 시료 보관실에서 빙하 코어를 들고 나오는 안진호 교수.
늘 영하 20℃를 유지하는 이 대형 냉동고에는 남극대륙과 그린란드에서 가져온 빙하 샘플이 보관되어 있다.

먼 과거의 기후를 잘 연구하면 지금보다
지구 온도가 3℃나 높아질지도 모를
우리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후 및 환경 변화를 알아낸다면
생물학적·생태학적 환경 변화까지도
예측해볼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