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사범대학 강준호 학장 · IOC올림피즘 365위원
인간의 성장은 도전의 결과다. 도전하지 못하면 익숙함에 발목이 붙잡히고, 끝내 추구하는 아레테(Arete·탁월함)를 실현하지 못한다. 스포츠계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하며 자신만의 아레테를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강준호 사범대학장이 익숙함과의 결별, 즉 도전을 강조하는 이유다.
파리 올림픽의 해이기 때문일까.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이 주창한 올림피즘(Olympism)에 대한 이야기가 여느 때보다 많이 들려온다. 올림픽 정신과 동의어인 올림피즘은 심신의 균형 있는 발달과 사회적 연대감 제고, 조화로운 인류 발전과 평화 증진에 이바지하는 스포츠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러한
올림피즘은 국제연합(이하 UN)이 지난 2015년 제70차 총회에서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결의한 의제인 지속가능발전목표(이하 SDGs)의 지향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최고 권위의 국제 스포츠 행정기구이자 올림픽 주최를 맡은 국제올림픽위원회(이하 IOC)가 2020년 UN의 SDGs 달성에 기여하기 위한 조직인
올림피즘365 위원회를 신설한 배경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올림피즘365 위원회가 2023년 말 강준호 사범대학장을 위원으로 임명한 이유도 명료하게 설명된다. 강준호 학장은 IOC 올림피즘365 위원회와 UN의 SDGs를 한발 앞서 실천해온 드림투게더마스터(이하 DTM) 사업의 수장이기 때문이다. 2013년 강준호 학장이 정부와 함께 도전적으로 시작한
DTM은 개발도상국의 차세대 스포츠 행정가를 발굴·교육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스포츠 공적개발원조(이하 ODA) 국책사업으로, 전 세계 차세대 스포츠 행정가들과 글로벌 드림팀 교수진이 서울대라는 플랫폼에서 만나는 혁신적인 글로벌인재 양성사업이다. 지금껏 57개국에서 온 247명이 DTM을 거친 뒤 자국으로 돌아가
젊고 유능한 스포츠 행정가로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DTM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진정성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선의를 바탕으로 개도국의 스포츠 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포츠 행정 리더를 양성하는 데 첫 번째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DTM 졸업생들은 한국과 서울대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제2의 고향처럼 생각합니다. 이는 알게
모르게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이익과 발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청소년체육부 사무관은 DTM 졸업 후 돌아가 우리나라 스크린 골프 업체의 현지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몽골 체육국장은 한국 출장 중에 굳이 시간을 따로 내어 직접 찾아와 ‘우리나라 학생들을 잘 가르쳐줘서 정말 고맙다’라는
진심을 전한 적도 있습니다. 내실 있는 스포츠 행정가 양성사업이 10년
넘게 이어지다 보니, DTM은 이제 전 세계 스포츠 행정가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습니다. UN의 SDGs 달성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DTM 사업을 IOC도 인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립 4년 차를 맞이했지만, 코로나19 사태와 파리 올림픽 준비 등으로 인해 올림피즘365 위원회는 이제 막 기지개를 켠 모양새다. 당연히 주요 의제와 활동 방향성도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상황. 하지만 앞으로 DTM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오비타 라필라 위원장은 강준호 학장이 위원으로
임명된 직후 ‘DTM과 협력할 방안에 대해 긴밀하게 논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담은 서한을 보내왔다. 이후 강준호 학장은 IOC 측과 화상 회의를 진행했으며, 7월 말 올림픽이 열리는 파리에서 오비타 라필라 위원장을 직접 만나 보다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지난 10년간의 경험과 성과가 스포츠를 통해 지구촌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하는 IOC의 새로운 도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니, 그 사실만으로도 무척 보람 있고 뜻깊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저에게 있어서도 새로운 도전입니다.”
강준호 학장은 “도전은 일론 머스크와 같은 거물들만의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평생 추구하고 실천해야 하는 가치”라고 힘주어 말한다. 도전의 본질은 익숙함과의 결별이며, 이것이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출발이라는 것이다.
“익숙함에는 관행, 관습, 안전지대(comfort zone) 등이 포함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익숙함과 편안함을 선호하지만, 도전을 통해 익숙함과의 결별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것이 도전이고 그 결과가 성장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했던
아레테(arete), 즉 탁월함도 도전 없이는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과 조직의 모든 성장과 탁월함은 도전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도전은 익숙함에 역행하는 자유의지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자유, 혁신, 성장과 서로 연결된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전이란 가치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간 활동이 바로
스포츠입니다. 자기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는 신체적 건강 증진이나 여가 생활 이상의 의미를 넘어, 몸과 마음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인간의 전인격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행위입니다.”
올림피즘365 위원회의 활동이 스포츠의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듯, 강준호 학장도 스포츠 너머로의 도전을 병행하고 있다. 사범대학장으로서의 도전이 대표적이다. 2022년 2월 말부터 사범대학을 이끌게 된 그가 선택한 도전은 미래 교육의 패러다임을 티칭(teaching) 중심의 대량교육 시스템에서
학습(learning) 중심의 개인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장에서 물건을 제조하듯이, 표준화된 지식을 불특정 다수의 학생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존의 교육 체계를 학생의 학습 패턴과 개인차를 고려한 개인맞춤형 교육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인문사회과학 중심의 전통적인
교육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학습과학이다. 인간의 학습 현상을 대상으로 교육학뿐 아니라 뇌과학, 데이터사이언스, 인공지능까지 아울러 융·복합적으로 탐구하는 학습과학을 미래핵심연구 분야로 선정하고 2023년 9월 국내 최초로 학습과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강 학장은 2024년 2월
사범대학장을 연임하게 되면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서울대 사범대가 학령인구 감소라는 교육 환경의 대전환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연구중심대학인 서울대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확대가 불가피합니다. 지난 76년 동안 사범대는 교원양성대학이라는 역할에 충실해왔습니다. 그러나 1991년 교원임용시험제도라는 큰 변화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어떤
실질적인 대응도 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행히 많은 사범대 교수님들께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해주시고 지난 1년 반 동안 심도 있는 숙의 과정을 거쳐 학부에 학습과학을 교원양성 전공이 아닌 학부 전공으로 설치하기로 전체교수회의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해주셨습니다.”
스포츠학자로서의 도전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용어와 개념에 민감한 그는 ‘체육’이라는 용어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체육(體育)은 일본이 근대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피지컬 에듀케이션(Physical Education)이라는 교과목을 번역한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의미가 확대된 것으로, 몸과 마음이 분리돼 있다는 심신 이원론에 기반을 둔 용어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과 마음은 같은 실체의 서로 다른 속성으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심신 일원론적 관점에서 보면 적절한 표현이 아닙니다. UN이나 유럽에서는 ‘스포츠’를 신체 활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행위, 즉 운동이나 피트니스까지 포괄하는 넓은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는데요. 일본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에서는 ‘체육’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디어나 컴퓨터, 디자인
등을 외래어 그대로 쓰듯, 글로벌 시대에 스포츠는 번역할 필요가 없는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강준호 학장이 자신을 체육학자가 아닌 스포츠학자라고 소개하는 이유이다. 이처럼 다방면으로 끝없이 도전하는 강준호 학장의 ‘도전 스토리’는 앞으로 또 어떤 결실을 낳을까. 분명한 것은 그의 도전이 스포츠계와 사범대를 혁신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