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versation
기계공학부 바이오로보틱스 실험실
정순필·송재영·이해민
익숙한 활동 반경을 넘어 새로운 무대에 나서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최근 힘을 합쳐 도전을 실행하고, 나아가 값진 성과를 거둔 로봇공학도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공과대학 기계공학부 조규진 교수의 바이오로보틱스 실험실에서 의기투합한 끝에 지난 5월 미국 보스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Form & Function Robotics Challenge’에서 정순필 박사과정 학생, 송재영 석사, 이해민 박사는 MIT, 하버드, 코넬, 스탠포드 등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정순필 사실 저와 송재영 석사는 작년 대회에도 출전했는데요. 아쉽게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로봇 청소기 크기의 로봇에 접혀 있다가 길게 펼쳐지는 로봇 팔을 달아서, 사람 대신 물건들을 집어 정리할 수 있는 로봇을 출품했는데요. 작은 로봇이라도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로봇이라는 평가는 받을 수 있었지만, 길어지는 로봇 팔의 성능적인 부분에서 저희 기술만이 가지는 특별한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피드백을 양분 삼아 저희 기술의 성능을 훨씬 부각할 수 있는 새로운 로봇으로 올해 두 번째 도전에 나섰고, 마침내 1위를 하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송재영 사실 현장에서 다른 팀들의 출품작을 둘러본 뒤 확신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1위를 하겠구나!’ 우리 로봇의 규모가 남달랐던 데다가 외형 및 구동 방식도 신선했고, 우리가 의도했던 성능을 지구 반대편에서 100% 구현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우주라는 미래 지향적 스토리텔링까지 잘 연결되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해민 저는 3D 프린팅을 활용해 의수와 로봇 손을 만드는 연구를 주로 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규모가 큰 로봇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웠는데, 결과까지 좋아서 무척 뜻깊습니다. 아울러 실험실 내에서 다른 주제를 연구하는 동료들과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었다는 점도 즐거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대형 전개 구조물 로봇을 연구하는 두 분과 손발을 맞출 기회가 영영 없었을지도 몰라요. 덕분에 다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해서 의미 있는 가치와 결실을 새로 마련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정순필 한마디로 ‘이동식 전개형 3D 프린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수납 시 높이 0.9m, 지름 0.9m의 원기둥에서 전개 시 높이 3.6m, 밑변 3.2m의 삼각뿔 형태로 대폭 커지는데요. 여기에 달린 3D 프린터로 사람보다 큰 구조물을 출력할 수 있으며, 구조물을 완성한 뒤에는 다시 크기를 줄인 뒤 새로운 지점으로 이동해서 또 다른 구조물을 연속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가 만든 로봇의 핵심 부품은 ‘Fold-and-Roll 이중 압축 방식’으로 압축될 수 있는 로봇 암 구조인데요. 이 로봇 암 구조들을 이용해 크기를 자유자재로 키우고 줄일 수 있는 견고한 전개형 프레임을 구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작년 대회에서 출품한 로봇과 같은 핵심 기술을 사용한 로봇이지만, 이번에 구현한 로봇은 기존 기술들과 성능적인 부분에서 비교했을 때 저희 기술의 우수함을 더 강조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작년 대회와 다르게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송재영 어떻게 하면 우리 로봇을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작고 가벼우면서도 대형 구조물로 전개가 가능하고, 큰 3D 출력물을 만들 수 있는 특징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게 ‘달 기지를 건설하는 무인 로봇’이라는 콘셉트를 잡았고, 우리 로봇을 우주로 보내기 쉽다는 점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별도의 수하물로 부치지 않고 대형 여행 가방 4개에 나눠 싣고 보스턴으로 향했습니다. 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관람객들에게 이런 점을 강조하며 로봇을 설명했는데요. 그래서인지 대회 후 시상식 때 사회자가 우리를 ‘한국에서 보스턴까지 이 로봇을 직접 가져온 팀’이라고 소개하더군요. 우리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이해민 현장에서 1.2m 높이의 구조물 프린팅을 시연한 과정도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이 정도 크기의 구조물을 만드는 데 25시간 정도 걸립니다. 때문에 대회 전날 미리 로봇을 현장에 설치하고 프린팅을 걸어둔 뒤 잘 출력되는 것을 확인하고 숙소에 복귀했는데요. 다음 날 아침에 와서 보니 구조물의 중간 부분이 조금씩 밀려 있는 거예요. 행사 담당자에게 확인해보니, 옆에 세워둔 홍보 배너가 3D 프린터 쪽으로 넘어져 있어서 다시 세웠는데 그때 프린터가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프린팅 중에 3D 프린터에 충격이 가해지면 동작이 멈추거나 구조물 형상이 엉망이 되는데요. 우리 로봇은 배너가 넘어져 있던 시간만큼만 구조물이 조금씩 옆으로 밀렸고, 그 뒤로는 다시 정상 동작해서 끝내 구조물을 완성했어요. 그래서 관객들에게 로봇을 설명할 때 이 점도 부각했습니다. ‘우리 로봇은 불의의 충격을 겪었지만, 고난을 이겨내고 제 역할을 다했다’고 말이죠. (웃음)
정순필 작년 대회에서 아쉽게 4위에 머문 뒤, 저와 송재영 석사는 대회에서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로봇의 업그레이드 방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우리 기술의 성능을 부각한다는 관점에서 스케일이 매우 큰 전개형 프레임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 과정에서 전개형 프레임의 용도로서 건축 자동화를 염두에 둔 3D 프린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목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3D 프린팅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의수와 로봇 손 연구에 적극 활용 중인 이해민 박사를 영입했습니다.
이해민 사실 우리 세 사람이 주축이 되어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은 맞지만, 바이오로보틱스 실험실의 직간접적 지원도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김찬 박사과정 학생과 정인철 석·박사통합과정 학생이 프로젝트 수행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줬는데요. 비록 보스턴에는 함께 가지 못했지만, 두 사람 또한 팀의 일원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송재영 솔직히 서울대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로봇 연구에 필요한 각종 장비와 인프라, 인적 자원을 내실 있게 갖추고 있는 데다가, 무언가에 과감하게 도전하도록 독려하는 분위기도 잘 형성돼 있으니까요. 우리가 팀을 이뤄서 이번 대회에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서울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정순필 저는 2016년에 실험실을 나갔다가 2020년에 다시 돌아왔어요. 그사이 창업 도전을 위해 학교 밖에서 지냈었는데요. 서울대에서는 꿈, 흥미, 즐거움, 성취감을 이야기하는 게 아주 자연스러웠던 반면, 학교 밖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다수가 매우 현실적이었어요. 이런 측면에서 송재영 석사가 말했듯, 우리가 꿈꾸고 실현하도록 독려하는 서울대에 있기에 이번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에 있었다면 ‘이 프로젝트가 취직에 무슨 도움이 될까?’, ‘상금은 어떻게 나눌까?’, ‘이걸로 연구 과제를 딸 수 있을까?’ 등 현실의 울타리에 갇힌 생각과 이야기만 했을 거예요.
이해민 제 연구 분야가 의수와 로봇 손인 만큼, 휴머노이드 로봇에 부착될 로봇 손을 고도화시키고 싶습니다. 현재 연구 단계에 있는 각종 로봇 손은 꽤 정교하고 연구 기간도 긴 편이지만 기술, 가격 등 여러 측면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에 부착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런 점을 개선해서 사람의 손처럼 정교한 손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현재 제 목표입니다.
송재영 작년 대회에 출품했던 로봇 청소기 사이즈에 전개형 로봇 팔을 부착한 프로젝트를 계속 파고들 계획입니다. 예전부터 제가 만든 로봇이 일상에 널리 쓰이는 모습을 상상하며 연구에 임해왔는데요. 현재로서는 길게 뻗을 수 있는 로봇 팔을 가진 청소 로봇 크기의 로봇이 그 청사진에 가장 가까운 아이템입니다. 현재 연구 중인 로봇은 로봇 청소기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에 2m 높이까지 닿을 수 있는 전개형 로봇 팔을 가져 사람 수준의 작업 범위를 갖춘 다용도 로봇으로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순필 이번 대회에 출품한 로봇을 논문화해서 해외 저널에 투고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후에도 한동안 이동식 전개형 3D 프린터에 매달릴 예정입니다. 이 로봇이 실제로 건물의 구조물을 프린팅하고, 나아가 우주에서 활약하려면 개선해야 할 부분이 여전히 많습니다. 이 로봇의 크기, 프린팅 능력, 견고성 등을 차근차근 보완해서 실제로 건설 현장이나 우주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시키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