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nversation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 (조소과 교수) ·
이중식 문화예술원장 (지능정보융합학과 교수)
바야흐로 문화예술의 전성기라 불리는 시대. 그 화려한 포장이 아닌 본질적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의 한 영역을 넘어 ‘삶 자체가 예술의 장르’가 되어야 한다는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장과 ‘Social of ART’로서 예술의 순환성을 강조한 이중식 문화예술원장. 서울대학교 예술의 큰 축을 이끄는 두 교수를 만나 예술의 근본적인 가치와 현시대 문화예술에 대한 성찰을 나눴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
파리제1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 박사
파리제8대학교 대학원 조형예술학 석·박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지능정보융합학과 교수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 석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
심상용 관장 미술관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쉽게 겪기 어려운 양질의 경험, 정제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찾아와 만나고, 감정이나 느낌을 주고받는 일종의 소통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요. 누구든 내 집에 온 듯 편하게 들어와서, 두고두고 곱씹을 경험을 가질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오고 가며 미술관에 자주 찾아오고 놀러 오길 바랍니다.
이중식 원장 문화와 예술은 학교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늘 후순위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문화를 많이 소비하는 사회로 바뀐 거죠. 사람들은 미슐랭 식당에서 식도락을 즐기고, 유명한 전시회에 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섭니다. 잉여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힘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강해진 거죠. 문화예술원은 ‘경험’과 ‘실천’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갖습니다. 문화예술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캠퍼스로 가져오며, 문화예술 분야로 진입하려는 학생들에게 디딤돌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심상용 관장 사춘기 때 1차 정체성이 만들어진다면 대학생 시기에는 사회적·지적 정체성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해서라도 자아와 제대로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입시 시스템은 자아에 대해서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사회 진출을 위한 도구적인 준비만 하게 되거든요. 학생들이 자신을 제대로 발견하고 만나지 않으면 세상과의 만남도 계속 어긋날 수밖에 없어요. 인간으로서 성숙하고, 건강한 자질을 키우기 위해서 캠퍼스의 문화예술적 토양이 비옥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중식 원장 서울대와 같은 종합대학이 음·미대 등 예술학과를 운영하는 이유는 후속세대 예술가를 양성하는 역할도 크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예술이 가지는 창조성을 모든 학과에 퍼뜨리는 역할에 있다고 봅니다. 세계적인 대학에 가면 예술과 관련된 시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곳을 예술전공 학생들만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창작의 결과물과 공간을 통해 예술이 가진 정수를 느끼고 자기 분야에서 창의성을 발휘하죠. 대학 내에 예술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문화예술의 영향 속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캠퍼스에 계속해서 예술적 박동을, 흐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흐름을 만들기 위해 문화예술기관이 존재하는 것이고요.
심상용 관장 입시 위주의 교육을 거치면서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그저 교과과목 중 하나라고 인식하게 됐습니다. 문화예술을 내 인생에서 영어보다 불필요하고, 인생과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거죠. 인격의 포괄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균형이 깨진, 아픈 상태인거예요. 교육이란 무엇입니까? 결국 사람이 내적·지적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교육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분과적 사고라고 봅니다. 예술은 그 자체가 우리를 제대로 성장하도록 하는 교육적 토양인 거죠.
이중식 원장 김홍중 사회학과 교수님은 제게 “요즘 학생들에게 문화와 예술에 시간을 쏟도록 하기 위해선 ‘문화와 예술은 즐기는 게 아니라 갖춰야 할 역량이다’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개인이 가지는 문화자본이 개인을 차별화할 수 있잖아요. 예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와인의 역사를, 미술 작품을 감상한 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깊이를 만들죠. 또한 요즘은 공감 능력이 중요합니다. 정서적인 힘이 중요하죠. 공감과 정서를 만드는 포용성의 능력도 문화예술이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문화와 예술, 교육은 자연스레 연결될 수밖에 없어요.
심상용 관장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기틀을 마련한 근대문화는 굉장히 이성적인 문화예요. 많은 생산과 소비의 성과를 낸 반면, 비인간적이고 폭력적인 측면도 많죠. 그런데 현대에는 지적인 측면에서도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인류의 삶을 바꾼 탁월한 발명들은 어느 순간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이중식 원장 관장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과거 학교의 우선순위는 과학이나 기술에 있었지만, 오늘날 학생들의 몸과 마음은 문화에 의해 움직입니다. 저는 개인 작가보다 기획자, 큐레이터, 프로그래머 등과 같은 메타 크리에이터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군분투하는 개인보다 연결된 작가들이 틀과 판을 짜고 협력하는 모습이 나오길 바라는거죠. 지난해 ‘MMCA(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를 인터뷰했는데 그의 작품에는 드론 조종사, 3D 전문가 등 총 32명이 협업해 다양하게 참여했어요. 이처럼 지금의 문화예술은 프로세스와 프로덕션을 겸비하고 결합해 만들어집니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 때 여러 전문가와 기술자가 협력하며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구조를 지니죠. 우리 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이런 경험을 충분히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에 캠퍼스가 문화 창작의 허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해요. 이러한 순환이 긍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자연스레 문화예술계의 리더가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심상용 관장 맞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가치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균형과 순환이에요. 한쪽이 발달했는데 다른 한쪽이 후퇴한다면 뭔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죠. 지난 8월, 학위수여식 축사에서 최재천 교수가 “서울대 졸업생으로서 혼자만 잘 살지 말고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이끌어달라”고 했죠. 양질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만 추구한다면 균열이 생겨요. 어느 시점에 가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균열이 커질 수 있죠. 이 문제를 잘 인식하고 균형감 있는 인재를 기를 수 있어야해요. 즉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만이 아닌 인간적으로도 빛나는 사람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인재에 대한 개념 정리, 방향 설정을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중식 원장 문화예술원과 제가 해야 할 일은 이 시대에 적합한 문화 조직의 발명 같아요. 시대가 바뀐 만큼 자원, 문화예술, 대중이 순환할 수 있는 새로운 구조를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계선에 있는 다양한 장르를 초청해 문화적 재생산을 이끄는 실험이 중요하고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런 고민을 계속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심상용 관장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창조성이 있어요. 다만 충분히 개발할 기회를 갖기가 어려운 거죠. 예술을 통해서 잠재적인 가능성, 자아의 발견 등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살다 보면 뭔가 모호하고 분명하게 정리가 안 되는 자신의 모습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작가의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서 “아, 이런 거였구나” 하며 만나길 원하는 거지요. 서울대학교미술관이 자신을 잘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이 시작되는 공간으로 남아 있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갈 우리 학생들이 미술관을 자주 찾아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