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이신자 섬유예술가 (응용미술학과 50학번)
대한민국 섬유예술의 1세대이자, 선구자로 불리는 이신자 작가는 섬유예술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미술의 재료로 생각지 못한 다양한 소재들을 이용해 어디에도 없던 수백 가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오직 자수로만 대표되던 실과 바늘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킨 그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이신자, 실로 그리다> 회고전 현장에서 만나보았다.
나는 1930년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났어요. 바다를 좋아했는데 가려면 5리쯤 걸어가야 해서 숲, 나무와 더 가깝게 살았지요. 어머니를 도와 바느질 일감을 곧잘 거들었는데 그보다는 그림에 소질이 있었어요. 당시 소학교 신문에 내 그림이 실리고 소개되고 그랬으니까. 선생님이 “넌 그림을 잘 그리니까 꼭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라”고 말해주기도 했어요. 어머니, 아버지는 별로 안 좋아하셨어요. 그림을 그려서 어떻게 밥을 먹고 사냐고 그러셨죠. 무엇보다 당시 사회적으로 여성이 대학을 간 경우가 드물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여학생이 참 드물었어요. 그때만 해도 여성은 국민학교나 중학교를 졸업하면 보통 시집을 갔죠. 여자 선후배는 2~3명 정도였고, 대부분 남학생들이었어요. 그나마도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지요. 피난 가서도 혼자 그림을 그리면서 공부는 계속했어요.
일단 실, 바늘, 천 이런 재료는 당시 여성의 삶에 굉장히 가까운 소재였어요. 나만 해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옷을 짓고 수선하고 이불을 꿰매는 걸 보고 자랐으니까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혼자 지내면서 바느질감이 많았어요.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섬유예술 장르 자체가 없어서 혼자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지요. 당시는 지금처럼 풍족한 시절도 아니었고, 근사한 재료도 구입할 수 없었으니 주변에 흔히 보이는 포대, 방충망, 벽지와 옷 짓고 남은 자투리 천을 얻어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요. 헌 스웨터를 사다가 실을 풀어 사용하기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실로 작품을 만든다고 하면 자수밖에 없었어요. 명주나 노방에다가 곱게 수를 놓는 거지요. 그런데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꿰매고 꼬고 붙이고 풀어놓고 그랬으니 그게 얼마나 엉망으로 보이고 이상해 보였겠어요. ‘발가락으로 수를 놨냐, 자수계를 망쳐놨다’ 이런 소리를 많이 들었죠. 통념을 완전히 부수는 작품을 내놨으니까요.
당시 우리나라에는 섬유로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태피스트리를 처음 본 건
1970년대에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였으니까요. 태피스트리 작품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기고
영감이 떠올랐죠.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를 했고, 매 순간 내가
스승 혹은 제자가 되는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나중에 학생들에게 태피스트리를
가르칠 때 교육과정에 대해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했어요. 제대로 가르쳐야 했으니까요.
내가 못 했던 걸 가르치고 제시하면서 학생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었죠.
작품을 창작하는 것만큼 가르치는 것도 즐거웠어요.
* 태피스트리(Tapestry): 날실(경사, 세로줄)을 캔버스로 두고
씨실(위사, 가로줄)이 붓이 되어 씨실의 색상만으로
표면에 무늬를 만들어내는 작업
1950년대에는 실과 바늘을 이용해서 기존과는 다른 작업을 시도했고, 1960년대에는 염색과 직조를 함께 시도했어요. 작품에 자연을 담고 나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이용했는데 외국 박물관이며 전시회를 다니며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대형 태피스트리를 보고 작품에 반영해보기도 했지요. 내 작품에는 살면서 보고 배운 것, 느낀 것들이 다 녹아 있습니다. 할머니의 베틀에서 배운 것을 활용했고 내가 살았던 고향의 바다, 산과 나무의 빛과 느낌도 구현했지요. 작품 속 선과 색감도 그때의 내가 느낀 감정과 심리가 그대로 반영된 거예요. 그렇게 만들다 보니 작품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변화했어요.
<산의 정기>(1996) 모사, 합성사, 금속; 태피스트리, 60x86cm,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딸의 초상>(1962) 면에 면사, 모사, 오일 크레파스; 자유기법, 92.5x61.5cm, 작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소규모로 몇 번 가진 적이 있는데 관람객들이 신기해하고 또 좋은 반응을 보여줬어요. 서양의 태피스트리와는 완전히 달랐으니까요. 수묵화 같달까, 색채와 선에서 동양화 느낌이 물씬 풍기면서 다른 정서가 느껴지니 큰 관심을 보였죠.
작품들이야 내 마음 안에서는 다 비슷해요. <한강, 서울의 맥> 같은 경우는 제작하는 데 3년이나 걸린 작품이에요. 길이가 19미터인데 팔당 산골짜기, 63빌딩, 잠실주경기장까지 한강의 물줄기와 주변 풍경을 그대로 담았어요. 한강 변에 가서 직접 스케치를 해 왔고 길이가 워낙 길어 말아가면서 작업을 했지요. <딸의 초상>이라는 작품은 오일 크레파스를 사용해 딸아이와 학을 넣은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거죠.
지금은 시대가 변화한 만큼 누군가가 가르치는 것만을 배워서는 안 돼요. 나만의 경험을 쌓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서 더 공부를 해야 하지요. 나야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환경도 열악했기 때문에 혼자 악조건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작업했지만 그만큼 자유로웠어요. 가르침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을 두루두루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꼭 해보길 바라요.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가장 행복하잖아요. 나만의 시야로 보는 느낌을 가질 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자기만의 색깔을 꼭 찾길 바랍니다.
행복합니다. 이곳에 오면 내가 그동안 살아온 삶이 그대로 느껴져요. 이렇게 대규모 전시회를 열기가 쉽지 않은데 고마울 따름입니다.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 당시의 내가 가졌던 느낌과 시간, 인생이 고스란히 떠올라요. 회고전을 찾아주신 많은 관람객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각자의 감상을 안고 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