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삶의 공간을 수집하는 예술

조정구 구가도시건축 대표 (건축학과 86학번)

건축은 삶과 밀접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면서, 삶의 풍경을 빚어내는 예술이다. 감상하는 예술을 넘어 일상과 공존하는 예술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조정구 건축가는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며 그 해답을 찾아간다.

삶의 형상을 찾아서

조정구 건축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을 답사한다. 주로 수요일에 답사하는 까닭에 ‘수요답사’라고 부른다. 흔히 답사라고 하면 어떤 주제 아래 특정 대상이나 지역을 집중해서 둘러보지만, 그가 해온 답사 방식은 조금 다르다. 한 곳을 보고 나면 바로 옆을 이어 살피는 ‘이어가기 답사’다. 종로와 청계천의 거리를 찬찬히 살피며 서울의 지형을 탐색했던 수요답사는 서울의 후암동, 해방촌, 교남동 등 수많은 동네의 구석구석까지도 면밀하게 살피며 20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건축가로서의 경험과 안목도 사뭇 달라졌다. 동시에 이는 2000년 당시 구가도시건축의 문을 열며 다짐했던 건축에 대한 그의 생각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실천이다.
“오래전 북아현동 주변을 산책하다 우연히 까치집을 발견한 일이 있어요. 그리고 그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축대 아래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게 되었죠. 그 순간 문득 이런 깨달음이 왔습니다. ‘사람도 환경에서 서식한다’고 말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삶과 가까운 건축이란 무엇인지 더 깊이 고민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집들에 눈길이 갔다. 수요답사는 다양한 도시의 주체들이 공간에서 살아가며 이루는 삶의 모습과 교감하는 일이었다.

건축, 장소를 넘어 시간을 생각하는 일

그는 현대 건축가이면서도 한옥 설계를 자주 했다. 최초의 한옥호텔인 ‘경주 라궁’을 비롯해 서울 은평한옥마을 ‘낙락헌’ 등이 그의 설계로 지어졌다. 그에게 한옥은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대 건축가로서 관심 있게 다루는 주요한 주제다.
“2001년에 서울시에서 북촌한옥마을 재생사업을 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한옥 설계를 하게 됐습니다. 한옥이라고 하지만 제 출발점은 전통 한옥이 아닌 도시 한옥이에요. 소위 말하는 도시 속의 한옥이죠.”
그는 ‘건축가는 시간 사이에 건물을 끼워 넣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설계도 풍경 안에 녹아들지 못한다. 그래서 북촌이나 서촌에 한옥을 지을 때는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했고, 새롭게 조성된 은평한옥마을에는 우리 시대에 통용될 만한 현대 한옥의 이상을 제시하고자 했다. 오래된 한옥이 현재의 일상과 어우러지는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은 다시 한번 건축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제 작업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건축물들은 건축주가 훌륭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건축주가 10년에서 20년 넘게 가지고 있던 철학과 생각을 제가 몇 년 안에 구현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건축이란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알아가는 일과도 연결됩니다.”

건축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발견하는 사람들

지난가을에는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서 한옥 파빌리온 ‘짓다’를 선보였다. 열린송현녹지광장 서쪽 공간에 세운 ‘짓다’에는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잠긴 집의 감각을 소환하고, 집의 원형에 대한 기억을 찾아간다는 콘셉트를 담았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사람들은 공간 주변을 둘러보면서 작품의 본질을 본능적으로 탐색했다.
“한옥 파빌리온 ‘짓다’는 건축가라기보다 작가로서 작업한 작품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건축가로서 추구하고 싶은 원형을 현실로 옮길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설계를 하다 보면 설명을 덧붙일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있지만,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요소들도 있거든요. 작업 당시 배수를 위해 집수정을 설치하면서 겸사겸사 그 자리에 오래된 구들을 깔았는데, 개관 후 관람객 한 분이 그 자리에 가서 눕는 것을 봤습니다. 그 공간을 통해서 사람과 하늘이 관계를 맺어주길 바랐는데, 시민들이 본능적으로 공간의 본질을 깨달은 거죠.”

우리의 의식을 확장해주는 모든 것

조정구 건축가가 생각하는 예술은 ‘우리의 의식을 확장해주는 모든 것’이다. 언뜻 무용하게 보이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더 깊은 생각에 이르기도 한다. 예술 융복합의 결정체로 불리는 건축 역시 이러한 역할을 한다.
“건축이야말로 공존하는 예술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삶과 더 가까운 예술이기도 하고요. 마당에 쏟아지는 햇빛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느끼곤 하는데, 저는 그 역시 예술이 가져다주는 일종의 환기라고 봅니다.”
요즘 예술을 통해 새삼 ‘무용한 것의 유용함’을 생각한다. 우리네 옛 건축처럼 적당한 요소들이 지극한 조화를 이룰 때 드러나는 무형의 가치들이 더 소중해진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의 예술 역시 ‘삶과 공존하는 예술’이 되기를 바란다. 더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좋은 것’들로 삶을 채우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