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예술이란 인간의
실존적 표현을 찾는 일

민은기 음악학과 교수

한 시절의 예술이 여전히 살아남아 오늘의 예술로 호흡한다. 이제는 동서양의 구분마저 무색한 클래식 음악은 과거의 기록을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며 동시대 사람들과 향유하는 예술로 존재하고 있다. 역사와 이론을 통해 음악의 본질을 연구하는 음악학자에게 예술과의 공존은 어떠한 의미일까.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예술과의 공존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결국 본질에 대한 탐구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사전에서는 예술을 두고 ‘기예와 학술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고도 하고, ‘특별한 재료, 기교, 양식 따위로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그 작품’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민은기 교수는 “예술은 정의할 수 없다”는 말로 대답한다. 지적인 실체는 있지만 규정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럼에도 예술 작품을 대할 때면 평소와 다른 어떠한 감각이 일깨워진다. 마치 없는 것처럼 치부했던 정신적 경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떤 분은 ‘음악’이라고 하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드는 일’ 정도로 여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음악은 인간의 실존적 표현’ 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이 인간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거죠.”
알면 알수록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민은기 교수에게는 음악에 관한 것이 그렇다. ‘음악학자는 무슨 일을 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음악을 연구한다’고 쉽게 답할 수가 없다.
“음악학자는 음악 작품, 음악과 관련한 사건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나 그에 대한 사상 등을 연구할 수 있어요. 음악을 사회의 산물로 바라보고 연구하는 관점도 있고요. 특히 음악학은 음악심리학이나 음악사회학처럼 양쪽 학문 분야를 연결하거나 아우르는 간학문(間學問)적인 영역이 많습니다. ”

클래식 음악은 독특한 점이 있어요.
어떤 예술이든 고전은 그것이 만들어진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되는데,
클래식만은 과거로서 남아 있지 않고
지금도 연주되고 감상되는
살아 있는 현재예요.

클래식, 옛것에 오늘의 숨을 불어넣다

1981년에 작곡과 이론 전공으로 처음 개설된 음악학과는 2023년부터 개별 학과로 독립했다. 1982년에 입학한 그는 서울대 해당전공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1995년 교수로 부임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1세대 음악학자’로 자주 소개된다.
“어떤 분야이든 ‘최초’라는 수식어에 따라붙는 부담과 책임이 있죠. 참고할 선례들이 거의 없어 애를 먹기도 하지만, 그만큼 찾아주는 곳이 많고 개척할 영역도 넘치니까요. 덕분에 대학에 있으면서도 신문이나 방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연주를 곧잘 했으면서도, 공부에 대한 열의도 넘쳤기에 ‘음악학’이 더욱더 운명처럼 다가왔다. 옛것을 폐기하고 많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려는 시도들이 넘쳐나던 1980년대 후반, 음악사를 공부하고자 건너갔던 프랑스 파리에서는 과거와 지금의 것의 구분 없이 옛것이 여전히 현재를 이루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은 독특한 점이 있어요. 어떤 예술이든 고전은 그것이 만들어진 과거 모습 그대로 보존되는데, 클래식만은 과거로서 남아 있지 않고 지금도 연주되고 감상되는 살아 있는 현재예요”.
여기서 그는 되묻는다. ‘오늘날 연주하는 베토벤의 음악은 19세기 것인지, 21세기 것인지’를. 이는 음악계의 오랜 논쟁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은 베토벤이 생전에 표현하고자 했던 정격에 바탕을 두고 악보를 해석하지만, 현시대의 관점과 취향 그리고 현대의 악기로 연주하는 베토벤 음악의 정수는 다를 수 있다. 더구나 베토벤 이전의 음악은 연주장에서 듣고 흘려보내는 오락에 가까웠다. 그 시대 작품들에 대해 후대 음악학자들이 일련번호를 붙여서 기억해주지 않았다면 모두 사라졌을 것이다.

가깝고도 먼 클래식을 친숙하게 느끼는 순간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발굴하고 음악사적 의미를 밝혀내는 일도 음악학자의 역할이지만, 민은기 교수는 이러한 방식이 ‘클래식의 정전(正傳)’을 공고하게 만든다는 한계가 있음을 언급했다.
“오늘날 청중들이 주로 듣는 곡들은 일부 작곡가에게 편중된 측면이 있어요. 어떤 작곡가의 어느 작품을 걸작으로 남게 할 건지는 학자가 선택한 결과죠. 역사적으로 보면 때로는 국가적,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기도 하고 단지 우연일 때도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모두 과거의 음악을 연구하는 음악학자의 책임이자 몫이죠. 그렇게 해서라도 음악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음악학자의 역할이에요”.
추상적인 음악 대신 음악가를 말할 때 클래식을 좀 더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효과가 있다. 2018년에 1권을 출간한 후 어느덧 7권까지 집필한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역시 모차르트, 베토벤, 바흐, 헨델, 쇼팽과 리스트, 베르디와 바그너 등 작곡가를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음악을 주제로 한 대중 교양서가 얼마나 읽힐지 반신반의했던 그도 이 책을 집필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많은 분이 ‘클래식은 어렵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클래식은 어려운 음악이 맞아요. 하지만 클래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즐기면서 들을 수는 있죠. 그 자체로 아름답고 좋은 음악이니까요”.

음악을 통해 얻는 평안과 위로

K-팝이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K-클래식’ 열풍도 자주 접한다. 올해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프라하의 봄 국제 콩쿠르,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등 국제무대에서 서울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의 수상 소식이 이어졌다. 세계무대에 서는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성과를 내는 음악 전공자들도 적지 않다.
“아티스트가 아니더라도 음악적 소양을 바탕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들이 예전보다 오히려 늘어났어요. 다른 영역의 공부를 병행해 취업하거나 창업하는 졸업생들도 있는데, 음악을 전공했다는 점을 높이 사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악기와 씨름하며 연습해 온 음악 전공자들은 성실성이 뒷받침되어 있거든요”.
음악과 같은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예술을 통한 평안과 위로는 누구든 느낄 수 있다. 서울대학교의 인기 교양과목으로 꼽혔던 ‘음악과 사회’ 수강생들은 수업이 끝날 때면 감사 인사를 자주 “힐링했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는 음악의 본질에 관한 이야기로 여러 사람과 소통하면서 ‘음악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덕분에 그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열의가 넘친다. 강의실에서, 책에서, 미디어에서 자신이 전한 음악 이야기가 어느 먼 데서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등대가 될지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