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한젬마 러쉬코리아 부사장 (서양화과 졸업)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시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젬마 부사장은 그때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가득하다. 러쉬코리아 부사장이자 다양한 분야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는 그는 창의성과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세상에 널린 구슬을 꿰어 유의미한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인물로서 여전히 그 빛나는 가치를 자랑한다.
한젬마 부사장은 1999년 출간한 <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킨 인물이다. 전공자들만이 접근 가능한 분야로 여겨졌던 ‘미술’을 대중 속으로 끌어들인 그는 예술인이자 방송인으로 큰 인기를 누렸고 아트 디렉터,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저술가, 강연자, 칼럼니스트 등으로 불리며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 덕분일까? 언제, 어느 곳에 가도 아는 사람을 만날 정도로 폭넓은 인맥과 인적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바로 ‘엮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직업상 지인들 혹은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에게 제안을 받거나 도움을 요청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상대가 원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라요. 그 분야의 전문가가 생각나는 거죠. 그럴 때면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겁니다. 돕거나 지원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거지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강원키즈트리엔날레 예술감독, 오티즘엑스포 조직위원회 예술총감독, 청주공예비엔날레 홍보대사 등 굵직한 이력을 바탕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인맥들을 잇고 꿰고 교류시킴으로써 결실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바로 한젬마 부사장이다.
예술부터 비즈니스까지 한계 없는 영역을 넘나드는 한젬마 부사장은 대한민국 1호 아트 컬래버 디렉터로도 꼽힌다. 한젬마 부사장이 ‘컬래버 디렉터’라는 당시만 해도 생소한 호칭으로 불리게 된 출발점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오픈갤러리를 통해서다. 중소기업과 예술의 교류, 컬래버레이션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중소기업들은
‘예술’ 얘기만 들어도 도망갔다. 돈만 퍼붓게 될 거라는 편견과 오해, 두려움으로 인해 비롯된 상황이었다.
“그때 찾았던 답이 명화 컬래버레이션이었습니다. 사후 70년이 넘은 작가의 작품은 사용권이 무료였고, 저작권이 없다고 중소기업 관계자분들에게 설명하니 비로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거죠.”
성과는 놀라웠다. 안경 케이스에 고흐 그림을 넣어서 반고흐미술관에 납품했고 드가의 ‘발레’라는 작품을 신발에 삽입해서 마치 명품 같은 효과를 본 기업도 있었다. 또 체형 보정기 제품을 판매하는 의료기기 업체는 ‘비너스’ 작품을 통해 해외박람회에서 많은 MOU를 맺기도 했다. 컬래버레이션에 선정된 작가들 중에는
장애인도 포함됐다. 말 그대로 교류, 소통, 협업의 힘으로 중소기업에 또 다른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작가들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알릴 소중한 발판을 만들어준 것이다. 교류의 장, 갤러리 플랫폼의 완성이었다.
평생을 예술을 기반으로 교류와 소통, 협업, 창작 활동을 해온 한젬마 부사장에게 발달장애인과의 관계는 무엇보다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일을 하던 중 발달장애 친구들의 그림을 보고 타고난 천재성을 발견한 것. 이후 포털사이트에 ‘그림 엄마’라는 카페를 만들어 발달장애인들이 미술에 오롯이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들이 그린 작품에는 코멘트를 달아줬으며 화가로서 성장하도록 격려했다. 발달장애인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회도 개최하고 공모전에도 출전하도록 독려했으며 그들의 작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도 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기회들이 찾아왔다. 발달장애 예술가들만의 시각으로 안동의 대표
문화유산을 그린 작품을 선보인 <이야기도, 그림도, 남달라> 전시를 비롯해, 실학자 정약전이 집필한 해양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참여형 전시로 기획한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같은 경우도 그랬다. 이 모든 것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교류, 협업, 소통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교류나 소통은 현대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덕목입니다. 대화나 교류에서 중요한 것은 내 입장에서만 뿜어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원활한 교류, 상대와 주고받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사람들과 협업한다는 것은 잘 갖춰진 서류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마음이 먼저고 종이는 그다음이에요.”
한젬마 부사장이 가는 길에는 늘 사람들이 서 있다. 그들 사이를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어 새로운 길을 내는 것 또한 한젬마 부사장이다. 개인의 가치를 더 크고 유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그. 한젬마 부사장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컬래버 디렉터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