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erview
여인택 피치스 대표(사회심리학 석사 18년 졸업)
서브컬처로 분류되는 자동차 문화를 엔진 삼아 성장 가도를 질주 중인 ‘힙한’ 브랜드 피치스(Peaches.). 그 운전대를 잡고 있는 여인택 대표는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세상과의 다채로운 교류와 협업을 통해 자동차 문화에 멋과 매력을 더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 출신 아버지와 음대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여인택 대표는 어릴 적부터 줄곧 자신이 법조계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유능한 법조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바람도 그 길을 당연한 인생 경로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유학을 떠난 그가 미시간대에서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것도 사실 미국
로스쿨 진학을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 이토록 공고했던 그의 꿈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촉매가 등장했으니, 대학 3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군대였다.
“2011년 6월 입대 후 전역 전까지 다양한 보직을 맡았는데, 그중에는 고충상담병도 있었어요. 미국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이른바 관심병사들이 군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이들을 상담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거죠. 밀착 상담을 진행한 그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심리학의 중요성을 실감했고,
더불어 전에 느끼지 못했던 흥미도 돋아났습니다. 전역 후 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쓴 <군대 심리학>이라는 책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잘 팔렸죠. 자연스럽게 ‘심리학으로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015년 로스쿨 대신 서울대 사회심리학 석사과정에 입학했습니다. 부모님 뜻대로 살게 되진 않았지만
동시에 부모님과 동문이 된, 재밌고도 아이러니한 순간이었죠.(웃음)”
새로운 길에 들어선 여인택 대표의 첫 번째 목표는 심리학 교수였다. 그는 열심히 학업에 임하면서도 외식 문화 브랜드 기업의 창업 멤버에 이름을 올리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병행하던 중 자동차에 입문했다. 창업을 통해 번 돈으로 소형 해치백부터 고성능 컨버터블 쿠페까지 꽤 많은 차를 바꿔 타며 자동차에 푹 빠진
그는 다소 거칠고 때로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는 ‘멋없는 자동차 문화’를 많은 이들이 기꺼이 좋아하고 즐기는 역동적 트렌드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인택 대표가 심리학 교수라는 목표에서 다시 한 번 핸들을 돌려 2018년 자동차 문화 브랜드 피치스(Peaches.)를 만든 이유다.
미국에서는 유난히 멋지고 탐스러운 자동차의 뒤태를 ‘복숭아(Peach) 같다’고 표현하는데, 피치스라는 브랜드명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 어원처럼 멋지고도 탐스러운 자동차 문화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흥미로운 점은 피치스의 활동 영역이 자동차라는 울타리를 매우 능숙하게 넘나든다는
것이다. 영상, 음악, 패션에서부터 IT, 식음료, 화장품,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 및 브랜드와의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피치스와 협업사의 가치를 모두 끌어올리고 자동차 문화에 멋을 더하는 것이 여인택 대표와 피치스 구성원들의 특기다.
“브랜드를 만든 직후 일본 포르쉐 전문 튜닝업체 RWB의 도쿄 행사 스케치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에 업로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그 뒤로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꾸준히 기획, 제작하면서 피치스만의 독보적이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죠. 아울러 2018년
나이키가 피치스를 ‘주목해야 할 브랜드’로 선정하면서 ‘힙한’ 이미지와 경험을 젊은 고객에게 선사하려는 여러 분야의 브랜드에서 협업 제의가 물밀듯이 들어왔어요. 그들은 우리의 트렌디함을 원하고 우리는 피치스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를 원했으니,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인택 대표는 지금껏 피치스가 해온 수많은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2022년 3월에 진행한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과의 협업을 꼽았다. 당시 플레이스테이션은 인기 레이싱 게임 시리즈의 홍보 파트너로 피치스를 점찍었으며, 이에 따라 피치스의 오프라인 공간인 서울 성수동 소재의 ‘피치스 도원’에 게임 속
자동차를 전시하고 기념품을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이와 동시에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차를 몰고 성수에서 파주까지 약 70km를 운전하며 세 개의 랠리 포인트를 찍고 오면 특별 제작한 굿즈를 선물하는 이벤트도 마련했는데 무려 1,500여 대의 자동차가 참가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레이싱 게임의 특성과 피치스의
정체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렸기에 만들 수 있었던 멋진 광경이다.
여인택 대표는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교류의 장을 마련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빠르게 전기차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동차 마니아들은 여전히 내연기관 특유의 야성을 사랑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지지 않고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라는 관측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여인택 대표는 사양 산업으로 분류되던 주유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2022년 12월 현대오일뱅크 및 넥슨과 협업해 탄생시킨 서울 한남동의 ‘파츠 오일뱅크’에 이어 2023년 12월에는 피치스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피치스 주유소 빙고점’을 부산 충무대로에 열었다. 여인택 대표의 의도대로 두
주유소는 자동차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성지이자 교류의 공간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피치스 구성원 내부의 교류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다 보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션 디자이너, 뮤지션, 프로그램 개발자, 캐릭터 디자이너, 자동차 커스터마이저 등 다채로운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하고 있는 건데요. 이렇게 놓고 보니 저와 피치스의 행보, 그 중심에는 ‘교류’라는
키워드가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다방면으로 긴밀하게 협업하는 ‘교류 전문가’이지만, 교류에 대한 여인택 대표의 생각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변화와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변과 활발하게 교류하면 그 상호작용 안에서 세상과 일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고, 나아가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여인택 대표는 힘주어 말한다. 그가 여러 교류를 통해 법조인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움직일 수 있는 시야와 행동력을 갖춘 것처럼 말이다.
한때는 한 달에 20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만큼 협업에 진심이었던 피치스는 최근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멋있는 자동차 문화’라는 피치스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내실 다지기에 돌입한 것. 이런 가운데에도 국내 최대 자동차 애프터마켓 전시회 ‘서울오토살롱’과 업무협약을 맺는 등 피치스가 자동차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큼직한 교류와 협업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행보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힌 여인택 대표. 세상과의 더욱 긴밀한 교류를 향한 그의 진심은 한껏 달아오른 엔진처럼 여전히 뜨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