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교류로 빛내는 찰나의 인생

이정은 물리천문학부 교수

별의 탄생에서부터 소멸까지의 장대한 시간에 비춰 봤을 때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우리는 이 찰나를 환히 빛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과연 어떻게 해야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정은 교수는 교류에 그 답이 있다고 말한다.

협업으로 밝힌 다둥이별 형성의 비밀

작년 8월, 미국 천문학회(AAS)가 발간하는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 분야 국제전문학술지 <천체물리학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됐다. 물리천문학부 이정은 교수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이 다둥이별의 형성 과정을 밝힌 것이다.
일반적으로 별은 여러 개가 형성되는 다중성으로 탄생하는데, 그 세부 과정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정은 교수는 2016년경 칠레 북부 아타카마사막에 있는 세계 최대의 전파간섭계 망원경(이하 ALMA)으로 세 개의 다둥이별이 존재하는 다중 원시 항성계 ‘IRAS 04239+2436’을 두 시간 동안 관측했는데, 이때 일산화황 분자가 세 개의 거대한 나선형 기체 구조(이하 스트리머)를 이루고 있음을 파악했다. 아울러 일산화황 기체의 속도와 움직임을 계산함으로써 이 스트리머가 태아별과 연결돼 있으며, 별에 성장 물질을 공급하는 탯줄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두 시간 동안 얻은 관측 이미지와 데이터로 약 50만 년에 걸쳐 일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지만 물리, 수학, 화학, 유체역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으면 어느 정도 해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과정이 어떤 역학적 과정을 거쳐 진행되었는지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은 관측 데이터만으로는 쉽지 않은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슈퍼컴퓨터 유체역학 시뮬레이션과 손을 맞잡기로 결심했습니다.”
협업의 출발점은 우연이었다. 이정은 교수는 관련 논문을 쓰고 있던 중 일본에서 열린 한 워크숍에 참가했는데, 그곳에서 호세이대 마쓰모토 도모야키 교수의 발표와 마주했다. 그가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으로 얻은 연구 결과는 이정은 교수의 관측 및 연구 결과와 맞아떨어졌고, 이정은 교수는 그간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관측 이미지를 보여주며 협업을 제안했다.
“제가 제공한 이미지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모야키 교수가 일본 국립천문대의 천문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1년여간 유체역학 시뮬레이션을 돌린 결과, 제 연구 결론대로 세 개의 나선형 스트리머가 태아별에 성장 물질을 공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아울러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는데요. 이전까지 별 탄생 시나리오는 난류를 포함한 성간구름이 여러 개의 밀도 높은 기체 덩어리로 분화해 멀리 떨어진 쌍성으로 진화한다는 ‘난류 분화 시나리오’와 기체 덩어리 내에서 형성된 원반이 분화해 근접 쌍성으로 진화한다는 ‘원반 분화 시나리오’로 나뉘어 있었는데, 시뮬레이션 결과 실제로는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함께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유체역학 시뮬레이션 전문가와의 적극적인 교류와 협업을 통해 만들어낸 혁신적 성과였지요.”

대학에서 실감한 교류의 가치, 그리고 천문학

돌이켜 보면 교류와 협업은 이정은 교수를 움직이는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물리를 좋아해 1991년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에 입학한 이정은 교수는 “지구과학교육과를 나왔다는 게 융합적 사고에 큰 도움이 됐다”라며 대학생 시절을 회상했다.
“지구과학교육과에서 지질, 해양, 대기, 천문, 지구물리 등을 배우면서 학문적 지식이 어떻게 실제로 적용되고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이런 와중에 당시 화제가 되었던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에 대한 독서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치며 교내 다양한 행사에 참가하는 등 대외 활동의 폭을 꾸준히 넓혔는데요. 덕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교류하는 데에도 점점 익숙해졌지요.”
열린 마음가짐은 이정은 교수를 천문학의 세계로 인도했다. 2학년 때 수강한 천문학 수업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 영겁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기나긴 우주의 시간에 비해 짧은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명쾌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섯 살 무렵 2년간 할머니와 함께 시골에서 살면서 시간과 사계절의 변화, 금줄과 상여를 모두 목격한 뒤 중·고등학교 시절 철학 책을 탐독하며 존재의 의미에 대해 줄곧 고민했다. 그에게 ‘세상 모든 존재는 우주의 먼지에서 태어나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는 과학적 사실은 그간 해오던 추상적인 고찰을 털어버리고 인생과 현재라는 찰나에 온전히 몰입하라는 뜻깊은 교훈을 선사했다. 게다가 좋아하는 물리와 수학까지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니, 천문학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학부를 졸업한 그는 곧장 천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교류와 협업의 근육’으로 밝히는 내일

서울대에서 키운 융합적 사고는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당시만 해도 천문학자들은 별 형성 과정을 밝히는 데 있어 역학적인 과정과 화학적인 과정을 각각 따로 분리해서 연구했는데, 이정은 교수는 이 둘을 하나로 엮음으로써 관측 데이터를 보다 통합적이고 일관되게 해석할 수 있었다. 그가 텍사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뒤, 이례적으로 허블 펠로십(Hubble Fellowship Program)에 곧바로 선정돼 UCLA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UCLA에서도 운석학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측정된 운석의 산소동위원소 값과 박사학위 동안 만든 모델을 결합해서 태양이 여러 개의 별이 모인 성단의 일원으로 탄생된 뒤 홀로 남은 끝에 지금의 태양계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대 천문학에 있어 협업은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에요. 천문학자들의 공통 관심사는 ALMA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등 우주 관측 및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고성능 망원경의 관측 시간을 확보하는 것인데요. 그러려면 새로운 관측 프로젝트를 치밀하게 준비해서 제안해야 하고, 확보한 관측 시간을 통해 얻은 결과물을 다각도로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아야 해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과정이죠. 이런 측면에서 모교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얻은 ‘교류와 협업의 근육’이 꾸준히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은 교수의 말처럼 교류와 협업은 어느 순간 필요하다고 해서 곧바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다양한 경험과 소통, 상호작용을 통해 오래도록 갈고닦아야 비로소 협업의 힘을 극대화할 수 있다. “대학 시절은 정신없는 입시에서 벗어나 다방면의 협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강조한 이정은 교수는 전공 외에도 다양한 분야 및 사람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교류해볼 것을 권했다. “이것이 바로 별의 생과 사 사이의 찰나에 존재하는 우리의 삶을 별처럼 빛낼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말한 그의 눈빛에는 서울대 후배와 제자를 향한 진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천문학에 있어 협업은 반드시 이뤄야만 하는 필요충분조건이에요.
천문학자들의 공통 관심사는 세계적으로 몇 없는 고성능 망원경의
관측 시간을 확보하는 것인데요. 그러려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결과를 다각도로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아야 해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해낼 수 없는 과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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