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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고기후에서 찾는

인류 역사의 변곡점

박정재 지리학과 교수 




과거 지구 위 모든 생명의 삶은 기후에 의해 결정됐다. 기후변화에 적응한 생명만이 생존할 수 있었고,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달에도 기후는 큰 영향을 미쳤다. 박정재 교수는 국내 고기후학, 고환경학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자로서 한반도의 기후가 지나온 발자취를 복원해 문명 역사를 기후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재난이 거듭하는 오늘, 천문학,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에 이르는 통섭적인 관점은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할 입체적인 시각과 통찰력을 제시한다.




1.

국내에서 고기후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기후학은 지질시대를 포함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기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자연 상태로 보전된 시료를 활용합니다. 가령 석회암 동굴의 석순, 빙하, 나이테, 산호초, 호수 퇴적물 등을 연대 측정해 분석하면 과거의 식생 변화나 강수량, 기온 등을 파악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인간이 거주한 역사가 길고, 영토가 작은 곳은 시료를 확보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힘들게 시료를 구했더라도 그 안에 보관된 정보는 인간에 의해 교란된 환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원하는 기후 자료를 얻을 수 없죠.



2.

교수님께서 하고 계신 고기후 연구 방법을 소개해주세요.

저 역시 괜찮은 시료를 찾지 못하다가 서울대에 부임한 때인 2011년부터 제주도 오름에서 퇴적물 코어를 채취해 연구하고 있어요. 과거 제주도의 인구 밀도가 다른 곳에 비해 낮았고 오름이 외진 곳에 자리해 인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덕분이죠. 오름 속 퇴적물에는 탄산염, 실트와 점토, 유기물이 들어 있는데 염산과 불산, 황산 등으로 전처리 작업을 하면 껍질이 단단한 꽃가루만 남게 됩니다. 이를 슬라이드에 올려 현미경으로 보면 종에 따라 다른 꽃가루 모양을 관찰할 수 있고 그 숫자에 따라 과거에 어떤 식물이 많이 분포했는지 알 수 있죠. 슬라이드 하나당 보통 300~400개의 꽃가루를 확인하는데 눈으로 일일이 꽃가루 유형을 분류하고 각각의 숫자를 세야 하는 지루한 작업입니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데이터가 필요해 시간이 꽤 오래 걸리죠.



3.

현재와 다른 고대 한반도의 생태 특징은 무엇인가요?

제주도 오름의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가 아닌 참나무 꽃가루를 주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 고대 한반도는 지표의 60% 이상이 참나무로 덮여 있었어요. 그런데 약 3000년 전부터 벼농사를 위해 숲을 제거하면서 교란에 강한 소나무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참나무는 천천히 자라지만 안정적인 환경에서 소나무보다 커지는 반면, 소나무는 햇볕을 공급받지 못하면 위축되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한반도의 자연적인 기후 환경이었다면 참나무가 많아야 하지만, 인간에 의해 달라진 것이죠. 이 밖에도 하천 주 변에 과거에는 습한 곳을 선호하는 오리나무가 주로 자생했지만, 역시 인간이 하천 변을 농지로 조성하면서 그 숫자가 매우 감소했습니다. 




 


4.

지금의 기후위기가 과거의 기후변화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지구가 탄생한 후 기후변화는 늘 지속돼 왔어요. 비교적 최근인 약 900년~1200년 중세 온난기에는 기온이 따뜻해지면서 빙산이 사라지고 북대서양 해수면 온도가 상승했지만, 1400년~19세기 말 소빙기 때는 북반구 대부분 지역의 평균 기온이 하강했습니다. 프랑스 샤모니 빙하가 확장하면서 대홍수가 발생했고, 작물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유행했죠. 그러나 이 같은 문제는 기온이 떨어질 때 발생했어요. 지금처럼 기온이 올라 문제 된 적은 없었습니다. 상승 속도도 빠르고 그 폭도 커 지난해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1℃까지 올랐습니다. 세계기상기구(WMO)도 향후 5년 안에 1.5℃ 오를 확률이 50%에 가깝다고 발표했죠.



제주 서귀포 물영아리오름에서 진행한 퇴적물 코어 채취 모습  


5.

기후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과거 사례가 있을까요?

소빙기 때인 17세기 후반, 한반도 역시 경신대기근과 을병대기근이 발생했어요. 흉작과 병충해로 곡물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했고 강력한 태풍의 접근, 전염병의 유행 등으로 100만 명 이

상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처하기가 더욱 어려웠죠. 그런데 같은 시기 청나라는 오히려 크게 발전했어요. 뛰어난 성군으로 꼽히는 황제 강희제는 신하들의 간언을 귀담아듣고 가뭄이 든 지역의 세금을 면제해주고 산불로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집값을 지원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사례를 역사에서 찾을 수 없지만, 과거의 기후변화와 달리 지구 온난화는 인류의 의지에 따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요. 장기적으로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노력을 이어가고, 청나라의 사례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상황에 대비할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후변화를 좀 더 면밀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면, 기후위기 역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6.

국내에서 생소한 연구 분야인 고기후학을 연구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생물지리학에 관심이 많아 석사 공부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로 유학을 갔어요. 그런데 지도교수님 관심사가 고기후학으로 옮겨가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고기후학을 연구하게 됐습니다. 박사 공부를 하면서 멕시코의 호수 퇴적물을 분석했는데 연구 결과와 역사적 가설이 일치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가령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 문명은 크게 번성했음에도 서기 600~700년에 급격히 쇠락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기후변화가 손꼽힙니다. 연구를 통해 이를 증명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이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 같았죠. 국내에서는 고기후학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못했는데 오히려 역사적 사건과 기후변화를 연결하는 상상력을 발휘할 여지가 더 남아있는 것 같아요.



소나무 꽃가루(왼쪽)와 참나무 꽃가루(오른쪽)



7.

기후위기를 비롯한 여러 사회 문제를 직면한 때,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사회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질 것입니다. 기후위기 역시 단순히 과학으로만 해결할 수 없고 경제,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가 얽힌 문제이죠. 인문학자, 자연과학자, 사회과학자, 공학자가 모두 모여 문제를 해결할 때, 모든 분야를 관리하고 감독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이 한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는, 학문의 경계를 허무는 공부를 하길 바랍니다. 또 모든 일은 스스로가 흥미를 느껴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기대나 사회의 잣대에 따라 미래를 결정하지 말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모든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대학에 있는 동안 풍부한 경험을 통해 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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