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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그려온
‘기부’라는 꿈,
큰 울림을 만들다

익명 기부자의 숭고한 사랑

서울대학교발전재단 사무실을 갑작스레 찾은 방문자가 전한 큰 사랑이 눈길을 끈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온 ‘기부’라는 꿈으로 큰 울림을 전한 한 익명 기부자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똑똑’
작년 10월, 노크 소리와 함께 발전재단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여기가, 서울대학교 기부하는 곳 맞나요?”
발전재단 사무실을 방문한 손님은 나이 지긋한 80대 여성분.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것도 잠시, 자리를 안내하자 곧바로 ‘학생들을 위해 기부하고 싶다’는 말이 돌아왔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돕기 위해 먼 거리임에도 직접 방문했다는 기부자는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놨다.

따뜻한 마음, 미래를 꿈꾸다

기부자는 20대부터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었다. 1943년, 일제강점기 시절에 태어나 한국전쟁과 대한민국의 희로애락을 함께 걸어온 만큼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가기 힘든 이들을 줄곧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리 넉넉지 않았지만 자녀들에게 용돈을 내어주고 자신은 반찬값을 아껴가며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1년, 10년, 20년… 꽤 오랜 시간이 지나며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한 달에 1,000원씩이라도 모으려 노력했다. 나이가 들어 자녀들이 준 용돈까지 아껴 한 푼 두 푼 알뜰히 모았다. 끈질긴 노력의 결과일까. 통장에는 생각보다 제법 큰돈이 모였다.
‘때가 되었다’는 생각 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바로 최고 인재를 양성하는 서울대학교였다. 그동안 정성스레 모은 돈을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비도 막지 못한 굳은 의지

어느 날, 평소처럼 새벽기도를 하던 중 오늘 기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결심을 굳히자 마음이 급했다. 기도를 마치고 부리나케 밖으로 나섰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굳은 결심도 흔들렸다.
“비가 내리는 걸 보며 어쩐지 오늘은 기부하는 날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렵게 마음먹었는데, 당장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비가 온다고 해서 기부자의 굳은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은행을 찾아 그동안 모은 돈을 인출했다. 평소 근검절약하며 모았던 만큼 한 번에 거금을 인출하려 하자 혹시 보이스피싱 때문은 아닌지 은행 직원들의 염려스러운 눈길이 이어졌다. 결국 보이스피싱을 걱정한 직원들의 입회 아래 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꿈과 희망의 빛이 되다

본격적인 기부 여정이 시작되자 기부자의 마음은 설렘 반, 즐거운 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자택과 꽤 거리가 먼 서울대학교까지 가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초행길을 지하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길도 어려웠고, 정류장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걸음, 한 걸음 오랜 꿈을 향해 나아간다는 마음 하나로 의지를 다졌다. 다행히 난감해하는 기부자에게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마을버스에서 만난 서울대학교 학생이 한 정류장, 한 정류장 친절하게 설명해주며 발전재단 사무실까지 안내해준 것이다.
어려운 길을 찾아온 만큼 발전재단 직원들의 따뜻한 환송과 인사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기부의 숙제를 해결한 느낌이에요. 그럼에도 자식들이 알았을 때의 섭섭함이 걱정되네요.”
결국 ‘익명’을 선택한 기부자는 가족 간의 화목을 위해 외부에 알려지기 원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기부자를 위한 예우나 기념품 등 기부자 혜택도 일절 거절했다. “이런 것들 아껴서 더 많은 학생에게 지원해주세요”라고 말한 기부자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은 웃음으로 가득했다.
자기 PR이 당연한 시대, 익명으로 남고자 하는 깊은 마음과 숭고한 희생은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기부자의 따뜻한 마음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꿈과 희망을 밝혀줄 빛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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