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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와 나

연기 열정처럼 타오른

타인을 향한 사랑

신영균 동문(치의학과 48학번) 



 


 

한국 영화 전성기를 이끈 전설 


신영균 동문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인 1960~70년대를 풍미한 영화계 살아있는 전설이다. ‘연산군’, ‘빨간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 29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제1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청룡영화제,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30여 개의 연기상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던 그는 영화계에 입문하기 오래전부터 연극무대에 오르며 실력을 쌓았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하자 연기에 대한 꿈은 잠시 접어야 했고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치과의사로 잠시 살았다. 그러나 가슴 한편에 있던 꿈이 그를 다시 무대로 부르며 32살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데뷔했다.


“풍족한 생활에도 늘 배우라는 꿈은 마음속에 있었어요. 대학에 다닐 때는 연극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총학생회 연극부를 창립해 활동했습니다. 어떻게 해도 타고난 끼와 열정을 못 버렸으니 운명적인 직업이었던 셈이지요.”


영화 ‘화조’를 끝으로 1978년 은퇴한 후 그는 사업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금호극장, 명보극장을 인수했고, 우리나라 4대 제과인 명보제과를 운영했다. 1968년에는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된 후 예술인의료보험조합을 결성하며 사회단체의 의료 복지 운동 부문에 선례를 남겼다. 제15대,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는 동안 여야 의원 62명으로 구성된 국회문화예술연구회를 만들어 문화예술계의 지원과 발전을 위한 입법 활동에 앞장서 많은 이의 지지를 받았다.



나눔과 사랑의 가치를 알기에 


2010년 그는 충무로 시대를 상징하는 명보극장(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등 500억 원 규모의 사재를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기부했다. 배우로서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대중에게 듬뿍 사랑받았던 지난날에 대한 보답이었다. 당시 설립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은 지금까지 장학사업과 영화 인재 발굴에 힘쓰며 한국 영화 산업의 교두보로 활약하고 있다.


“받았던 사랑만큼 사명감이 큽니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의 설립목적은 뚜렷해요. 어린이들에게 영화의 꿈을 심어주고,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젊은 영화 인재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지요. 그 취지가 이어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려고 합니다.”


신영균 동문은 “가족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전했다.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취소한 뒤 1억 원의 불우이웃 성금을 낸 것도 타인을 돕는 일이 행복하다는 것을 아는 가족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치의학대학원 100주년 기념기금’ 10억 원을 쾌척하며 후배들을 응원했다. 꺼지지 않던 그의 연기 열정처럼 타인을 위한 나눔과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비롯된 평범한 가르침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착하고 진실하게 살길, 사랑은 나누고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갖길, 그리고 늘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살며 인생을 보람차게 이끌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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