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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위한 기술로

공동의 내일을 만들어가다

안성훈 기계공학부 교수 · 박주연 의류학과 교수



오랫동안 갖고 있던 인식을 바꾸고,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면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접하고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이뤄졌을 때, 때론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결과와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혁신설계 및 통합생산을 연구하는 기계공학부 안성훈 교수와 웨어러블 인간공학을 연구하는 의류학과 박주연 교수는 편마비 장애 환자를 위한 장갑을 개발해 손 말림 증상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환자들의 자가 재활 치료를 가능하게 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더 나은 일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두 사람은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협업이 만들어낸 
의외의 변화들 

박주연 : 저와 안성훈 교수님의 협업은 저희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한 학생으로부터 시작했어요. 당시에 안성훈 교수님 연구실에서 형상기억합금을 소재로 한 직물을 개발했는데 저희 학생이 이를 웨어러블 의류에 적용했거든요. 그런데 박사 논문을 앞두고 온도가 너무 높이 올라가는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다가 교수님과 편마비 환자를 위한 장갑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손 말림 증상을 가진 환자의 재활 치료 과정에서 장갑의 온열이 근육과 관절을 부드럽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어요.

편마비 환자를 위한 스마트 장갑


안성훈 : 말씀하신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한 직물을 처음 개발한 계기도 의류학과와의 협업 덕분이었습니다. 소프트 로봇과 웨어러블을 만드는 수업에서 저희 연구실 학생이 특수섬유를 사용해 변형이 가능한 직물을 연구했는데 괜찮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죠. 이를 뜨개질(knitting) 방식으로 만들고 온도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지금은 퇴임하신 남윤자 교수님과 공동연구를 하면서 전류 없이 온도 변화만으로 구동이 가능한 직물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박주연 : 그러고 보면 연구의 장벽이나 한계는 없는 것 같아요.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협업이 이뤄지면 생각지도 못한 성과를 만들어내니까요. 또 기술의 발전에 따라 학문의 방향성도 크게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옷 역시 그 역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했지만, 지금은 ‘웨어러블 디바이스’라고 하는, 몸에 걸치지만 옷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기술이 거듭 발전하고 있잖아요. 교수님과 함께한 연구도 그중 하나예요. 수천 년 넘은 직조 기술에 새로운 소재가 결합하면서 편마비 장애 환자를 돕는 장갑이 개발될 수 있었으니까요. 교수님께서 탄자니아에서 이어가고 계신 적정기술 활동도 그런 취지와 가치로 시작하신 걸로 알아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기술의 가치 

안성훈 : 적정기술의 정확한 의미는 해당 지역사회의 인프라 수준을 고려해 만든 기술을 말해요. 태양열을 사용한 정수 장치가 대표적인데 저는 4차 산업기술을 적정기술화해 보고 싶었습니다. 2011년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네팔의 오지 마을에 태양광, 소수력(small hydro),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기를 설치해 가정에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죠. 전기가 들어오면서 3,000여 명의 산간마을 주민들이 조명과 휴대폰, TV 같은 간단한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닭 농장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어요. 2017년에는 적정과학기술거점센터를 열고 탄자니아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저렴하고 쉽게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아두이노를 사용해 스마트 그리드, 스마트 팩토리를 구축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마을 사람들이 이를 활용해 현지 재료로 마스크를 만들었어요. 10년 넘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저희가 만든 발전소의 전기를 사용하고 있죠.

박주연 : 교수님의 활동은 일반적인 공적개발원조나 적정기술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일시적인 지원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게 놀라운데요. 네팔에서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안성훈 : 진행 과정과 들어가는 재원은 공적개발원조와 같지만,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아요. 소수력 발전은 100m가량 물의 낙차가 있어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당시 네팔에는 어떤 시설도 없었어요. 발전소를 지으려면 전신주용 나무를 베고 축대를 쌓는 작업부터 시작해 3개월간 수백 명이 동원돼야 하는데 저희가 할 수 없었죠. 그래서 공사 방법을 담은 동영상 메시지를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보냈어요. 자발적으로 전신주와 토목 공사에 참여하면 관련 기술을 전해주겠다는 약속을 믿어주신 덕분에 공사가 잘 마무리됐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 고생하며 자기 손으로 지은 건물이라 애착도 강하고 기술을 배워 사용하려는 의지도 강했어요. 저와 학생들도 생각한 것을 실현해보고, 그 기술이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 보람도 무척 컸습니다. 또한 모든 기술은 이를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상과 밀접한 의류학을 연구하는 교수님께서도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박주연 : 환경에 따라 기술의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저는 콜로라도 주립대학교에서 근무할 때가 생각나는데요. 2006년에 콜로라도스프링스 지역 공군사관학교에서 한 장교분이 찾아오셨어요. 못쓰게 된 낙하산이 많은데 그냥 버리기 아까워 재활용할 방법을 찾아 무작정 학교로 오신 거였죠. 당시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었던 때라 상이군인들이 무척 많았어요. 좋은 일을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학생들과 낙하산을 이용해 배낭이나 파우치 같은 리사이클링 제품을 디자인하고, 상이군인과 가족 분들께 그 아이디어와 생산 방법을 무상으로 제공했습니다. 이를 사업화하면서 그분들의 경제적 자립에 큰 도움이 됐어요. 이 밖에도 학생들이 낙하산을 소재로 이브닝드레스를 만들어 패션쇼도 진행했죠. 그때 저도 의류학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옷을 만드는 기술이 사회공헌 활동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얻지 않아도 베푸는 
즐거움을 알길


안성훈 : 네팔과 미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연구에 대한 주변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타인을 향한 관심과 공감은 연구자 역시 반드시 지녀야 할 태도입니다. 교수님의 전공인 웨어러블 인간공학도 사용자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학문인데요. 웨어러블 뒤에 붙은 ‘인간공학’이 기술 발달로 잠시 잊고 있던 ‘인간 중심 디자인’의 철학과 가치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탄자니아 에너지-산업 연계 적정기술거점센터


운동능력을 향상하는 웨어러블 스마트 슈즈


박주연 : 웨어러블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요. 사용자 삶에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웨어러블 인간공학으로 이름 붙이게 됐습니다. 보통 기술과 디자인 중 한쪽이 향상되면 다른 한쪽은 저하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성능을 갖춘 웨어러블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조금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글로벌 기업과 협업한 웨어러블 제품이 상용화 단계를 거치고 있고, 현재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제안으로 여러 연구진과 협업해 ‘7초에 100m를 뛰게 하는 슈트’ 제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기술 제작을 목표하는 만큼 사용자와의 소통은 물론 연구실 안에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타인의 아이디어를 듣는 회의 과정이 무척 중요해요.

안성훈 : 교수님 말씀대로 연구실 안팎으로 소통 과정이 있었기에 웨어러블의 가능성을 더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 수없이 반복될 협업 과정에서 학생들이 이 같은 소통의 자세를 가지길 바랍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Give and Take’는 협업 과정에서도 지켜야 하는 원칙이에요. 이때 그 순서가 중요할 텐데 내 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없이 남에게 주는 마음이 아니라, 보상이 없더라도 ‘내가 먼저 베푸는 마음’을 갖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듭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고 그 모습을 보는 나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죠. 학생들이 연구 과정에서 혹은 봉사를 통해서 타인에게 먼저 베푸는 즐거움을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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