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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점이 아닌 매력으로, 

장애의 벽을 허물다

차해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대표(체육교육학과 08학번) 






2021년 열린 ‘F/W 서울패션위크’에 참가한 모델 서영채 씨는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지 8년 만에야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10위에 들 만큼 실력을 갖췄지만,청각장애로 소속사를 찾지 못해 긴 시간 가정주부로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된 것은 장애인 전문 연예 기획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를 만난 후였다. 2020년 설립한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는 문화예술과 방송계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매니지먼트사로 약 30명의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들이 소속돼 있다. 장애를 그 사람만의 강점과 매력으로 보여주는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의 차해리 대표를 만났다.


장애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연예 기획사

회사를 설립하기 전, 아나운서로 활동했던 차해리 대표는 스포츠 행사 사회를 진행하면서 장애인 운동선수들의 어려움을 접할 수 있었다. 패럴림픽 시즌 때 방송이나 광고 출연 제의가 들어오지만, 출연료 협상, 계약서 작성, 장애 지원 등 많은 절차를 수락할 여력이 없어 기회를 놓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열정을 옆에서 지켜본 차해리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라아이스하키 대표팀 한민수 감독과 함께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파라’라는 이름은 ‘패럴림픽(Paralympic)’과 ‘모범’을 뜻하는 영어단어 Paragon에서 따왔어요. 방송에 친숙한 저는 미디어와 홍보를 담당하고 한민수 감독님은 소속사가 필요한 패럴림피언들을 연결해주셨죠. 소속사가 생긴다는 소식에 무대에 갈증이 있던 연기자, 모델, 댄서분들도 관심 가져 주시면서 지금은 대중문화계에서 활동하는 장애 아티스트를 주축으로 한 연예 기획사로 발전하게 됐어요. 2021년에 한민수 감독님이 국가대표팀에 부임하면서 지금은 저 혼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어려움도 많았다. 무엇보다 변수로 가득 찬 방송계에서 장애 아티스트를 기용한 선례가 없어 출연을 꺼리다보니 시장에 진입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에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는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며 선례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직접 기획과 촬영을 맡아 광고를 제안하고 SNS를 통해 대중과의 접점을 확장해간다. 지난해 8월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2022년 믹스볼데이〉를 개최했다. 민간 단위에서는 처음 열린 ESG 스포츠 페스티벌이었다.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이슈와 정치적 문제들이 많고, 장애인 사업을 한다고 하면 사회에 공헌한다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그저 다른 연예 기획사처럼 아티스트들의 재능과 끼를 대중에게 보여주고 판매할 뿐이에요. 자선사업이 아니기에 회사를 지속할 수 있는 수익도 내야 하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좋은 사례를 보여주며 기회를 넓히고 대중과 만나다 보면 장애에 대한 인식과 문화도 바뀔 거라 생각해요.”



창원LG세이커스의 이관희 선수와 노윤주 아나운서가 믹스볼 페스티벌에 참여해 휠체어농구를 즐기고 있다.


지금을 있게 한 좌절과 극복의 경험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했던 차해리 대표는 외고에 진학했음에도 체육교육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스포츠 과학부터 의학, 법학,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는 목표로 여러 경험을 해보니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하는 일이 가장 즐거웠다. 특기인 영어를 살려 국제방송국에서 기자로 근무하길 꿈꾸다 방송일에 매력을 느꼈다.

“‘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처럼 공부와 운동을 모두 할 수 있었던 대학 시절이 가장 즐거웠어요. 낮에는 운동 실기와 교육학 이론을 배우고 수업을 마치면 테니스부 훈련을 했죠. 무엇보다 체육교육과는 여러 분야를 한꺼번에 배우며 관심 가는 공부를 깊게 해볼 수 있었어요. 저 역시 행정고시와 로스쿨 준비도 해보고 대학생 기자로도 활동하면서 저와 잘 맞는 일과 아닌 일이 무엇인지 찾다 아나운서를 선택하게 됐죠.”

가장 원하는 일을 하며 바쁘게 보내던 중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가 찾아왔다. 멀쩡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나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발생하던 증상은 일상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급기야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게 됐다. 결국 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동안 치료에 집중했다. 증상이 가장 심했던 때에는 가족들과 필담으로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자 이대로 영원히 말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덮쳤다.

“뇌에 문제가 있을 경우 증상이 계속 악화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앞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방송일도, 누군가와 대화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절망스럽더라고요. 다행히 뇌에는 문제가 없어 심리치료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나아졌어요. 1년 만에 방송에 복귀해 카메라를 마주하니 증상이 또 발생했는데 제작을 담당하셨던 PD님께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청각장애를 가진 모델 서영채 씨.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후 다양한 패션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봉사가 아닌 비즈니스, 사회적 가치 구현을 위해

당시의 위기는 그의 삶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됐다. 쉼 없이 달려 온 자신에게 휴식의 가치를 일깨워주었고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장애를 마주한 이들의 절망과 고통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아티스트들의 정신력과 내면의 아름다움을 차해리 대표는 그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

“최근 함께하게 된 아티스트 중 황성이란 친구가 있어요. 대형 기획사 연습생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척수 장애가 생겼죠.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됐음에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다시 하겠다면서 좌절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탁구 선수로 훈련하며 좋아하던 춤을 계속하기 위해 휠체어 댄스도 배우고 있습니다. 저희 아티스트의 강점은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 그리고 스토리라고 생각해요. 장애가 오히려 장점이 되고, 예쁘고 잘생긴 외모를 뛰어넘는 매력을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죠.”

현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는 연예 기획사 사업에 더해 콘텐츠 제작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OTT 시장이 확대함에 따라 장애 아티스트들을 주축으로 한 버라이어티 쇼를 기획해 세계에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 인구 중 15%가 장애인인 만큼, 대중들이 미디어에서 15% 확률로 장애인을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창립 초기, 코로나19로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광고나 후원을 전혀 받을 수 없었어요. 큰 악재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확장하며 저희가 활약할 수 있는 분야를 찾을 수 있었죠. 앞으로도 위기는 계속 찾아올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큰 어려움을 겪고 다시 일어난 우리 아티스트들처럼 저도 이를 극복하고 목표했던 일들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도 전진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