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없는 삶을 위해

학생 창업팀 솔리브벤처스

지난해 말, 서울대학교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서울대학생 창업팀 솔리브벤처스가 CES2024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와 접근성 부분의 ‘혁신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발달장애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장난감 교구로 그들의 성장을 돕고 비장애인들과 더불어 가는 삶을 지원하는 솔리브벤처스. 그들을 직접 만나 관련 이야기를 보았다.

왼쪽부터 서지희(컴퓨터공학과 22학번) 최성현(건축학과 18학번) 서주호 대표(기계공학과 18학번) 권익현(건축학과 19학번)
먼저 솔리브벤처스의 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서주호 시작은 공과대학에서 매년 개최하는 창의설계축전이었어요.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 익현이, 성현이는 공대 축구부 선후배 사이인데 당시 함께 재밌는 추억 하나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을 한 거였지요. 때마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큰 인기를 누릴 때라 자연스럽게 자폐스펙트럼 아동 얘기를 하게 됐고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교육이나 교구 등 아직 많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은 시장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희는 공대생으로서 사회 기여를 하는 동시에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제품에 대한 목적성을 염두에 두고 공학을 배웠기 때문에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제품 개발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 축전에서 워낙 반응이 워낙 좋아서 자연스럽게 사업화를 꿈꾸게 된 경우예요.

보통 장애인 관련 사업은 가족이나 지인 중 장애인이 있거나 관련 공부를 하다가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리브벤처스 같은 경우는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데 제품 개발에 앞서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권익현 2023년 초반부터 영유아부터 중학생까지 자폐 아동을 키우고 계시는 부모님들을 만나 직접 인터뷰를 했고, 발달치료센터에 가서 자폐 아동들을 가까이서 지켜봤습니다. 장난감이 아이들의 상동행동을 감소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는 이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려고 한 거죠. 또 저희 사업 자문단에 계시는데 아동상담 및 특수아 연구실의 박혜준 교수님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전문가들을 만나서 관련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저희는 이 작업을 꼭 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확고히 했어요.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귤까기 놀이를 모방한 영유아 발달교구 ‘Peel & Play’였습니다.
이 제품은 기존의 교구와 어떤 차별점, 어떤 교육효과를 갖고 있는지요? 또 제작 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서주호 일단 자폐 아동 가까이에서 시장 분석에 집중했습니다. 자폐 아동들은 대부분 장난감으로 놀이치료를 많이 하는데, 유형이 두 가지로 구분되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치발기나 클레이 등 소근육 발달을 돕는 감각 장난감, 두 번째는 로봇이나 블록, 코딩 등 교육용 장난감이었죠. 저희는 이 2개를 병합해보자고 결론을 짓고 기능을 빼고 더하면서 지금의 장난감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핵심은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감각적인 자극을 계속 줌과 동시에 치료전문가들이 이 하나를 충분히 활용하여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장난감으로 포지셔닝을 해 차별점을 만들어내고자 했습니다.

최성현 전공 덕분에 모델링 같은 건 잘했지만 생산은 또 다른 문제였어요. 그래서 인천, 광주 등을 돌아다니면서 금형 제작 사무소나 공장을 찾아가 노하우를 들었고 설계 컨설팅도 별도로 받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설계를 계속 변경시켰고 덕분에 적정한 가격대를 가진, 양산 가능한 결과물이 나왔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Peel & Play’는 귤껍질을 까고 붙일 때마다 진동이 울리고 빛이 나오는 등 오감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여러 개의 게임까지 가능한 교구입니다.

권익현 저희 교구는 치료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계속 교감하면서 무궁무진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장난감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은 채 다양한 게임을 하는데 실제로 저희가 이걸로 아이들과 놀아보니 사용할 수 있는 연령대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보통 아이들 장난감 이용 주기나 이용 시간이 매우 짧은데 3~7세까지 ‘Peel & Play’에 높은 집중력을 보이니까 현장 치료 선생님들의 반응도 좋았습니다.

CES2024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더불어 장난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부모용 발달 모니터링
애플리케이션 '키우미'를 개발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부탁드려요.

서주호 CES와의 첫 인연은 창의설계축전의 특전으로 얻은 방문 기회였습니다. 그때가 2023년이었는데 ‘내년에는 우리가 만든 제품을 들고 오자’고 다짐했던 게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저희가 받은 혁신상은 기술성, 혁신성, 예술성을 기준으로 선정한 것으로 이 부문에서 장난감으로 2개 상을 탄 사례는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장난감 특성상 방문객들은 한정적이었지만 반응은 매우 좋았고 그 덕분에 여러 업체, 관계자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해외 진출 역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서지희 키우미 애플리케이션은 발달 모니터링 서비스입니다. 발달을 체계적으로 검사하는 콘텐츠들을 놀이식으로 바꿔 일상생활에서 부모님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이 만든 커리큘럼을 저희가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으로 구현했어요. 한마디로 아이가 얼마나 잘 발달하고 있는지 분석해서 결과치로 알려드리는 모니터링 서비스로 아이의 발달에 관해 궁금해하고 걱정하시는 부모님들께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창업 이후 발달장애에 대한 연구와 제품 개발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나와 타인의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인식에 변화가 생긴 부분이 있을까요?

서주호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자폐 아동에 대한 거리감이 있었어요. 주변에 장애인이 없었기 때문에 언론으로만 접해본 일종의 두려움이었지요. 그런데 공부를 위해 자주 만나다 보니 발달만 조금 느린 것일 뿐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 교구가 유니버셜 디자인인데 이에 대한 중요성도 공감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자폐 아동만을 위한 제품이 아닌, 자폐 아동도 비장애 아동도 같이 사용하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와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 많이 공감하게 됐습니다.

권익현 애플리케이션에 들어가는 커리큘럼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많은 발달 검사지와 놀이 커리큘럼을 봤는데 신체 나이, 발달 연령 등을 결국 숫자로 비교하는 거더라고요. 숫자가 1~2세 차이 난다고 크게 문제 있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편견으로 꺼리는 게 아닌가, 좀 더 넓게 보고 더 이해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최성현 저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자폐 아동 유치원에서 교육 봉사를 해서 큰 거리감은 없었지만, 이번 기회로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자폐 성향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불안할 때 손톱을 뜯고 미세한 틱을 보이는 것들도 상동행동의 일부일 수 있거든요. 조금 다른 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라고, 그냥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서지희 저는 장애인 관련 사업에 완전한 문외한이었어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면서 단순히 아이들 연령에 맞춰 추천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솔리브벤처스 내 발달전문가이신 권민정 이사님께서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연령 구분이 아니라 맞춤 레벨로 롤 플레이를 제공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해주셔서 굉장히 큰 깨달음을 얻었던 기억이 납니다. 완전히 1차원적으로 보던 제 생각의 틀을 깬 순간이었지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니 확실히 좀 더 유연하고 확장된 사고와 시선을 갖게 되더라고요.

위의 이야기와 연결해보겠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존, 공감, 배려 같은 단어를 많이 쓰는 시대입니다.
우리 시대에 타인과의 공존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권익현 공존이란 같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저는 거기서 좀 더 나아가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것, 즉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CES2024에 나간 것, 장난감을 만든 것, 이 모든 게 타인과 협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물이거든요. 우리는 이미 타인과 공존하고 있고 이를 통해 나의 부족한 점을 깨달을 수 있기에 더불어 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공존도 마찬가지죠. 자폐의 정식 명칭이 자폐스펙트럼장애인데 ‘스펙트럼’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자폐의 정도가 모두 다르고 그 모든 선상에 있는 사람들을 다 넓게 포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봐요.

서주호 저희가 작년에 미국에 갔을 때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해 연구하시는 저명한 교수님을 뵌 적이 있었어요. 한창 자폐 아동의 상동행동을 어떻게 하면 감소시킬까를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상동행동을 감소시켜 비장애인처럼 포장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행동을 자연스러운 하나의 행동으로 받아들이게끔 사회적 시선을 바꾸는 게 훨씬 중요하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 상동행동이라는 키워드를 많이 빼고 ‘자극에 대한 감각적인 가치를 제공해준다’라고 방향성을 잡기 하기 시작했어요. 자폐 아동과 비장애 아동을 구분 짓고 분리시키는 게 아니라 좀 더 포용적으로 판매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시작한 거죠.

서울대생으로서 여러분은 많은 성과를 이루셨어요. 서울대가 각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최성현 창의설계축전에 안 나갔으면 지금의 모든 게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축전이 저는 정말 좋은 대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공대생들이 어우러져 공학 계열의 기술을 뽐낼 수 있는 장이었고, 특전까지 있다는 게 저희에게 많은 동기부여가 돼줬습니다. 창의설계축전에 끝난 뒤에도 저희는 공대, 경영대, 스타트업지원관 등에서 계속 도움을 받았고 그 결과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권익현 옛날에는 대학을 배움의 장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서울대학교라는 필드가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공존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가 없었다면 성현이 형도 못 만나고 주호 형도 못 만났을 테니까요. 서울대학교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장 많이 준 공간이었어요.

솔리브벤처스의 향후 계획을 알려주세요.

서주호 여러 도움 덕분에 지금까지 성과가 좋았고 주목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는 시장성을 검증할 시간이 됐다고 생각해요. 업그레이드된 두 번째 버전을 출시할지 또 다른 형태의 서비스를 기획할지 지금 다방면으로 고민 중에 있습니다. 또 다음 달에 중국 제조업체를 방문할 계획도 있고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마케팅도 시작하고, 사용자를 만나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