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도전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면서 의미를 찾는 것

나진수 프로듀서 (디자인학부 03학번 ·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디지털정보 융합전공 수료)

자신이 원하는 일, 적성에 맞는 분야를 찾으려면 계속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미술과 음악, 엔지니어링, 전시 기획, 강사, 라디오 작가까지, 모두 나진수 PD가 도전한 분야다. 서로 상관없는 분야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개성’과 ‘열정’으로 이어진 그만의 삶을 채우고 있다.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리더, 웜우드힐 스튜디오 운영, 일러스트레이터, 음반 엔지니어·프로듀서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최근 주력하는 활동은 무엇인지요?

지난해부터 전시 기획 분야 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그림 그리는 작업이었는데요. 그림은 그렸지만, 생각해보면 이걸 당장 누군가가 찾아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림 관련한 전시를 직접 기획해 사람들에게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미술계 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자문도 얻고 논의하면서 전시 기획을 준비했죠. 파티나 이벤트처럼 뮤지션도 부르고 작가들도 섭외하고요. 벌써 3회의 전시를 열었고, 올 연말에도 시리즈로 전시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직접 그림도 그리시고 전시 기획도 진행하시는 건데, 참여해보니 어떠신지요?

전시에는 제 그림과 함께 다른 작가분들의 작품들이 함께 전시됩니다. 순수예술보다는 일러스트레이션 혹은 디자인, 좀 더 상업이나 응용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 작가들. 또 작가가 아닌 사람들, 예를 들면 일로 시각적인 작업만 하는 분들을 작가로서 한번 조명해보자, 이런 콘셉트를 잡아서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전시 기획이란 일은 처음 도전하는 분야라 물론 어렵고 생소한데요. 부딪혀가며 배우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참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디자인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는 디지털정보융합전공을 수료했습니다.
겉으로는 연관성이 안 보이는데 새로운 도전이었는지, 혹은 꿈에 대한 계획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디자이너가 꿈이었습니다. 막상 대학에 가 디자인 수업을 들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다른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로 하던 음악에 관심이 더 갔습니다. 사실 대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졸업 후에는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될 줄 알았어요. 디자인보다는 음악의 길을 택했죠. 대학교 졸업 후, 음악과 관련된 대학원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음악 정보 분석을 배우는 디지털정보융합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을 업으로 삼을 계획이었지만, 참여한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의 성공으로 진로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음악은 그림처럼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있는 것이었는데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좀 더 관심이 생겨 맨땅에 헤딩하듯이, 독학하면서 터득했습니다. 인터넷도 보고 책도 사서 읽고 하면서 말이죠.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에는 프로듀싱과 레코딩 믹싱 같은 후반 작업과, 그 밴드의 소리를 담는 작업을 맡았는데요. 앨범이 성공을 거두면서 단순히 재미있는 일로 여겼던 음악의 매력에 더 빠지게 됐고, 대학원도 디지털정보융합전공 오디오정보분석학으로 진학하게 됐어요.

밴드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뭔가 말도 안 되는 걸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는데,
활동 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요.

초반에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이하 술탄)는 ‘남들이 안 하는 엉터리를 해보자’ 생각해서 시작됐습니다. 원래는 밴드가 아니었어요. 남자 셋이서 노래는 틀되 노래를 하지 않았죠. 우리는 노래를 못하니까 녹음된 걸 그냥 틀고 립싱크를 하자고 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고 황당한 발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것이 술탄만의 콘셉트라 생각했습니다. 잠시 잊힌 기억인데, 과거 홍대에서 최초로 연결이 안 된 마이크로 립싱크를 하고 춤도 추고 내려왔습니다. 또 홍대 프린지페스티벌에서 술탄의 립싱크 댄스를 다 같이 배워보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50명 정도가 모였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콘셉트로 춤을 췄습니다.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과연 될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자유롭게 던졌던 아이디어가 페스티벌 현장에서 실현이 됐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기억이에요.

영국의 대표적인 뮤직 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페스티벌’에 2014, 2016년 두 번이나 초청됐습니다.
한국 최초로 초청받은 뮤지션인 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 글래스턴베리나 해외 페스티벌에 나가기 위한 일종의 뮤직 컨벤션이 있었습니다. 오디션에 참여한 밴드들이 공연하면 해외 각국에서 온 프로그래머들이 마음에 드는 밴드를 픽업하는 형식이었죠. 우리 밴드는 바로 옆에서 열리던 처용문화제 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밴드 픽업을 하러 온 프로그래머가 화장실 가는 길에 술탄의 공연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특이한 콘셉트의 의상과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술탄의 공연이 글래스턴베리와 어울린다며 초청을 받게 됐습니다. 덕분에 관객과의 소통이 무엇인지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이것을 계기로 여러 해외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펼칠 기회를 얻었습니다.

호기심이 많으신데, 현재 꽂힌 새로운 관심 분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코로나19로 밴드 활동에도 지장이 생겼습니다. 비대면 유튜브 라이브 공연이나 공연 콘텐츠 영상도 올리고, 싱글 앨범도 냈지만, 이후에는 음악 작업에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답답해하던 시기에 그림 하나를 그리게 됐습니다. 산업디자인 전공을 살려, 태블릿으로 4개월 동안 초등학교 시절 좋아할 만한 소재들로 로봇 그림을 하나 그렸어요. 어릴 때 좋아했던 것들을 로봇 그림 안에 넣은 것인데요. 그리는 동안 평온함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창작 활동을 할 때, 삶의 에너지를 느끼는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나진수 프로듀서님에게 ‘도전’이란 무엇인지요?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저의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곤 생각해요. 이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시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도 하나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데요. 시간 예술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시한 주제를 학생들이 잘 따라올까 걱정도 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의 과제 수준도 높아졌고 퍼포먼스도 훌륭했답니다. 뿌듯했고 인상적이었어요. 역시 무엇이든 도전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도전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 아닐까요? 도전을 즐기는 게 아니라 도전해야 하므로 다른 것들을 실행하고 맞춰나가는 사람이 나진수인가 봅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꼭 도전하고픈 활동이나 영역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밴드 활동부터 음악 프로듀서, 엔지니어링, 전시 기획과 그림, 대학교 강의, 라디오 작가. 이제까지 펼치기만 했던 제 영역과 활동을 연결해 하나의 세계관으로 완성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인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의 나진수를 기대해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무엇이든 도전을 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도전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한 삶이 아닐까요?
도전을 즐기는 게 아니라 도전해야 하므로 다른 것들을 실행하고
맞춰나가는 사람이 나진수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