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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1

위험의 눈으로 본

사회와 자본주의

『위험한 위험: 위험학으로의 초대』 



 

사람의 일생은 위험과 고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동차 사고, 화재, 지진, 바이러스 등에 의한 질병과 죽음까지. 위험은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지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대신 손실이라는 모습으로 실현된다. 보험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인류의 대응으로 발명된 기제다. 시대에 따라 달라져 온 보험 기제는 근대에 들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관리하는 체제로서 국가의 도구가 됐다. 위험이 만연한 시대, 개개인이 이를 대처할 방안은 무엇일까?

글. 석승훈 경영대학 교수


인간, 기업, 사회는 어떻게 위험을 인지하고 대응해 왔을까? 또한 현대 자본주의와 위험의 관계는 무엇일까? 위험은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있고, 경제와 금융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심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위험을 수학적 확률과 동일시하라는 과학자의 계시를 받곤 하지만 위험은 영과 일 사이의 단순한 숫자로 다 표현될 수 없으며, 심리적, 문화적, 사회적 차원을 포괄하는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개념이다.

위험의 대응인 보험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가 있다. 보험은 연대의 정신에서 시작한 상부상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저축이나 투자 같은 금융 일부로 오롯이 귀속되지 않는다. 또한 시장이라는 곳은 서로의 이기심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보험시장 역시 보험의 정신을 올곧게 재현해 내지 못한다. 보험은 금융이고 보험시장에서 발현된다는 오해로 인해 진정한 보험 정신은 비틀거리게 된다. 사적 보험과 공적 보험의 갈등이나 시장과 정부의 갈등은 이기심과 보험 정신의 충돌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유럽에서 시작됐다면, 그것은 보험시장이 거기에서 나왔기 때문일지 모른다. 위험을 계산하고 거래하는 것은 기업에 장기적인 모험을 지탱할 수 있게 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갖추게 해 주었을 것이다. 위험의 거래를 통해 기업은 위험을 타자에게 넘김으로써 보다 적극적으로 위험을 감수할 여력을 갖추게 됐다. 아울러 금융의 발전은 위험 거래가 확대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험의 거래와 확대는 결과적으로 약소국의 착취와 식민지 지배를 초래하고 기업가들에게 자본을 축적할 수 있게 해 주고, 마침내 자본주의의 탄생을 자극하게 됐을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와의 친화성은 막스 베버(Max Weber)가 생각했던 칼뱅주의(Calvinism)의 근면성이나 합리성에서보다는 위험의 계산과 거래에서 더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도덕적 해이’라는 말은 참으로 흥미로운 여정을 걸어왔다. 애초에 보험시장에서 탄생한 이 말은 도덕(moral)과 위태, 위험(hazard)의 조합이었다. 위험을 다루는 보험시장은 도덕적이어야 함을 강조하던 말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도덕적 해이는 어느 순간 경제학의 품에 안긴 후, 도덕성과 무관한 존재로 뒤틀려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이제 도덕적 해이는 합리성의 결과로 주장되지만, 바로 그 이유로 도덕적 비판을 피해 갈 수 없게 된다.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야말로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가 합리성의 결과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도덕성에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해이가 나쁘다고 해서 도덕적 해이를 해결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도덕적 해이에 대한 규율은 종종 차별로 귀결된다. 차별은 교환적 정의를 실천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분배적 정의에는 어긋나기 때문이다. 사회보험의 존재 이유는 민간보험과 달리 차별을 통해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 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도덕적 해이에 대한 규율로서 인센티브와 차별이 정당화될 때, 갑질이 부산물로 생산된다. 갑질은 약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강자의 규율로서 자신을 정당화한다.

위험은 늘 우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고, 기업과 금융은 그 위험 속에서 이익을 뽑아내려 분주하다. 위험은 사전적으로 공평한 경우에도, 사후적으로는 불공평함을 배분한다. 불공평한 결과의 배분이 너무 고통스럽지 않도록 보험의 근본정신인 연대성을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좋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은 반복되는 경제 위기나 전염병 위기와 같은위험과 재난에 임하는 우리의 슬기로운 대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