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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노트 2

생산의 세계화 흐름 속

국민경제 성장을 이룰 방법은 무엇인가

『세계화와 국민경제의 재구성』




 


아이팟은 미국 기업인 애플의 제품이지만, 생산 과정을 살펴보면 미국의 기술과 디자인, 한국의 메모리칩, 일본의 디스플레이, 대만의 비디오 프로세스, 중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결합한 세계화의 산물이다. ‘생산의 세계화’ 속에서 많은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다투어 생산라인을 국제적으로 재조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국민경제에 심각한 긴장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도요타는 해외 생산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얻었지만 일본 경제 전체는 4,200억 달러의 생산 감소와 100만 명의 일자리 감소를 겪어야 했다. 기업과 국민경제의 성장 및 발전을 위해 이러한 긴장과 갈등은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


글. 권형기 정치외교학부 교수




 

『세계화와 국민경제의 재구성』은 세계화와 국민경제 간 긴장, 그에 따른 국민경제의 재구성과 해체의 문제에 대해 미국, 일본, 독일 3개국의 사례를 비교함으로써 그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그동안 세계화와 국민경제 간 관계 논의는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한편에는 세계화가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낙관론이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세계화가 국민경제를 손상시킬 것이라는 민족주의적 비관론이 있다. 그러나 이 두 관점 모두 세계화 강조와 국민경제 강조가 필연적으로 대립한다고 전제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화의 결과가 ‘탈국민경제화’로만 이어질 것이라 전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세계화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때로는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큰 손상을 입힐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국가별로 상당히 다양한 효과와 결과를 보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세계화의 서로 다른 효과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기존 제도주의 시각은 각 국가에서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오던 제도나 문화, 역사적 발전 경로 등이 그 차이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어느 나라에서도 그 속의 행위자들이 기존 제도나 발전 경로를 무비판적으로 답습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화의 서로 다른 효과와 그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각국의 여러 주요 행위자들(대기업, 중소 부품업체, 학계와 연구기관들, 정부 등)이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응하며,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정책을 만들어 가는지와 관련된 ‘구성의 정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각국에서 경험한 세계화의 서로 다른 결과는 산업 발전을 위한 인프라, 즉 기본적인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역량, 연구 결과를 상품화할 수 있는 생산 조직화 역량 같은 ‘산업 공공재(Industrial Commons)’가 각 행위자의 상호작용 속에서 얼마나 형성되는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비조정적 자유시장 체제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기업들의 생산 세계화는 국가 기능의 축소, 단기적 주주가치 향상에 초점을 두는 금융화 추세 등에 따라 조정되지 않는 상태로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국내 생산 네트워크와 해외 생산 네트워크가 분리되었고, 국내 생산 네트워크가 약화하면서 학계나 연구소에서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그것이 유의미한 경제적 상품으로 창출되지 못하게 되었다. 반면 사회적 조정 체제를 채택한 독일에서는 기업과 노조, 프라운호퍼 연구소와 같은 공적·사회적 연구소 등이 밀접하게 협력하고 서로의 이해와 전략을 조정했다. 이를 통해 기업의 해외 생산 네트워크 형성이 국내 생산 네트워크의 고부가가치화와 연결함으로써 세계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자리와 국민경제 수준이 증가하는 결과를 보였다.


한편 일본은 독일과 비슷하게 조정 기능이 작동했지만, 그 기능이 사회가 아니라 국가에서 수행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즉, 일본에서 국가(정부)는 일정한 육성 정책과 전략에 기초해 경쟁력이 떨어진 국내 산업을 해외로 이전시키고 고부가가치를 가진 생산 활동은 국내에서 육성함으로써 세계화에 따른 효과를 조정해 나갔다. 


이처럼 3개국 사례를 살펴보았을 때, 주력 산업과 기업들의 생산 세계화와 국민경제 간의 긴장은 서로 다른 결과로 귀결될 수 있으며 그 차이는 세계화 과정에서 국내 생산을 어떻게 재조정하는지, 산업 공유재를 어떻게 축적하고 향상하는지와 관련된 ‘조정의 정치’ 과정에 달려 있다. 세계화 시기 경제운영에서 국가가 배제되어야 하는지,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일방적으로 결론 내리기보다는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 산업 공유재와 혁신 생태계를 다양한 행위자들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그 속에서 국가를 비롯한 각 행위자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얼마 전 대선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도 팽창재정·복지와 건전재정·시장, 일자리 증대를 둘러싼 시각들, 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 지원 등의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국민경제의 행위자들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의 문제는 제시되지 않으며, 특정한 정책을 도입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만 이어지고 있다. 체계적인 논의와 협의 과정을 통해, 관료와 기업, 노조나 연구소 등 다양한 행위자들이 참여하는 민주적 공론화 과정이 촉진되어 세계화 시대의 문제를 보다 통합적인 시각에서 논의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