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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집념

한국 우주의 새 시대를 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고정환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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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1일 오후 5시,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II)가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고도 191km에서 나로호 발사 때 실패했던 페어링(위성 보호용덮개)을 분리하고 발사 15분 남짓 만에 고도 700km에 도달했다. 성공이 눈앞에 있던 그때, 마지막 3단부 엔진이 계획한 만큼 작동하지 않았다. 모형 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지 못하는 결과에 누군가는 ‘절반의 성공’이라 말했다. 그러나 순수 독자 기술로 우주에 1.5톤급 위성을 실은 발사체를 쏘아 올린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발사 과정을 진두지휘한 고정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이 있었다. 오는 5월 누리호가 2차 발사를 앞둔 가운데 2015년부터 8년째 누리호 개발을 이끌고 있는 고정환 본부장을 만났다. 


1. 
작년 10월 있었던 누리호 발사에 대한 소회를 여쭙고 싶습니다. 
7년간 본부장으로서 누리호를 이끌고 오셨기에 더 특별하셨을 것 같아요.
한국형발사체 개발사업본부장으로서는 7년째였지만, 이전 누리호 개발을 포함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에서 20년 동안 발사체를 개발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학생으로 치면 졸업시험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그날 오전 10시부터 공식적으로 발사 운영을 시작하고 오후 4시에 예정되었던 일정이 한 시간 미뤄졌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막상 발사 시간이 다가오니 단 16분 만에 지난 20년의 평가를 받는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무척 복잡했던 것 같아요. 물론 잘 될 수도 있지만 성공을 확신할 수 없는 일이기에 저도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마음을 졸이며 발사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2. 
새로 개발된 발사체의 첫 발사 성공률이 30%도 채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누리호도 미완의 과제를 남겼습니다. 이번 누리호 발사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우리나라의 인공위성 기술은 90년대 말부터 개발을 시작해 현재 굉장한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우주 발사체는 항우연이 창립된 80년대 말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더딘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요. 제가 2000년에 항우연에 입사했을 때 처음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위성발사체의 전 단계인 액체추진 과학로켓(KSR-III) 개발이었어요. 뒤이어 러시아와 공동 개발했던 나로호, 그다음 누리호 프로젝트인데요. 우주 발사체 기술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데에도 활용될 수 있기에 국가 간의 기술 이전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나로호 개발 때도 기술 이전은 처음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었어요. 이번 누리호 발사는 완벽한 성공은 아니었지만, 초창기 과학 관측 로켓과 나로호 개발을 통해 쌓은 우리의 기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3. 
기술 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60년대 우주 관련 러시아 책을 보거나 우주 강대국의 박물관에 방문해 로켓엔진 전시물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했어요.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했던 것 같습니다. 나로호 개발 때는 러시아 엔지니어들이 회의 후 버리고 가는 메모를 주워 러시아말 사전을 뒤져가며 공부했어요. 당시에는 보안요원들이 나로우주센터에 상주하며 저희를 철저히 감시해 낮에는 러시아 엔지니어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보안요원들이 퇴근한 저녁에 러시아 엔지니어들을 초대해 고기 굽고 소주 한잔하면서 친분을 쌓았어요. 그러고 나니 궁금한 걸 물어보면 가르쳐주었어요. 그런 경험과 지식이 토대가 되어 누리호 개발에 필요한 적지 않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4. 
수많은 실패가 있음에도 우주 발사체 개발을 계속할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로켓은 10년가량 준비해 한 번 발사하고, 발사 시간도 누리호 16분이 굉장히 긴 시간이었을 만큼 찰나에 이뤄집니다. 그런데도 로켓이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그동안 했던 고생은 잊어버리고 온몸에 전율이 납니다. 수십만 개 부품이 정해진 시퀀스에 작동할 때의 희열, 또 발사 당시 지축을 울리는 진동과 소리는 실패하게 되더라도 계속 도전하고 싶게 만들어주지요. 더불어 항우연에서 함께 발사체를 개발하고 있는 연구자들로부터 받는 동기부여도 큰 힘이 됩니다. 로켓을 향한 열정, 성실함, 해결방법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 가운데서도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 문제를 풀어나가는 인내심은 저를 비롯한 모든 연구자들에게 큰 원동력이 되었어요. 그런 열정이 있었기에 이번 누리호 개발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5. 
미래에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은 어떤 모습일까요?
우주는 여전히 일반인들에게는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우주 관측을 통해 여러 자원을 개발하고, 인공위성을 이용한 통신 기술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기에 인류는 우주에 나가는 도전을 이어갈 것입니다. 선진국은 이미 민간 기업들이 활발하게 우주개발을 하고 있어요. 다소 늦게 시작한 우리나라는 이 같은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단계라 생각합니다. 누리호가 궤도진입에 성공한다면 우리나라 역시 활발한 우주개발이 이뤄질 것이고 우주가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또 발사체에 위성이나 다른 물체를 실어 보낼 수 있어 우주여행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6. 
앞으로 누리호 발사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지난 1차 발사 때, 3단에 달린 7톤 엔진의 목표 연소시간이 521초였는데 475초에 종료됐습니다. 이 때문에 목표 속도인 초속 7.5km까지 오르지 못하고 6.5km에 그치고 말았어요. 위성 더미가 우주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오는 5월에 누리호 두번째 발사가 계획돼 있는데요. 1차 발사에서 생긴 문제의 원인을 찾고 보완하며, 2차 발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2차 발사에는 국내 기업에서 만든 소형 성능검증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으로 이후에도 국내에서 제작된 위성을 발사할 예정입니다. 그때도 물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이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술을 한 단계 도약해 나갈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7.
서울대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빨리빨리 해내려고 하기보단, 긴 시간을 거쳐 쏘아 올려지는 로켓처럼 남들보다 다소 느리거나 뒤처지는 것 같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계획하고 의미를 부여해 어떤 성과를 이뤄낸다면 굉장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도전한다면 이전보다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거예요.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고 묵묵히 나아가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