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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의 가치가 빚는

더 나은 삶

KOICA 손혁상 이사장(정치학과 80)

UNRISD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정치학과 86)


 

1950년 6.25전쟁 이후 유엔 한국재건단(UNKRA)의 원조를 받으며 폐허에서 일어섰던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식량, 경제, 치수, 취로 등 많은 분야에서 큰 규모의 원조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로부터 60여년 후, 대한민국은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면서 어느새 선진공여국으로 우뚝 섰다.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나라로서 더 나은 인류를 위한 대한민국의 역할은 무엇일까.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손혁상 이사장과 유엔 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 연구조정관을 맡고 있는 이일청 박사를 만나보았다.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


손혁상 이사장 : 지난 20년간 개도국 개발현장을 다니면서 한국의 위상변화를 현장에서 실감할 일이 많았습니다. 최근에는 영화와 드라마, K-pop 등 문화적으로도 주목받자 국제사회는 한국이 다양한 주요이슈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눈여겨보고 있어요. 한국이 올해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달성하겠다(Net-Zero)’라고 발표하자 일본, 중국의 결정과 함께 이를 외신에서 비중 있게 다룬 사례가 대표적이죠.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국의 국제 위상은 높습니다. 특히 국제개발협력에서 한국은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전쟁 폐허의 최빈국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한 첫 사례이자,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개도국→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죠.


이일청 박사 : 한국의 성장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도 달라진 것 같아요. 1997년 IMF를 촉발한 아시아 금융위기 전까지 국제기구들은 한국을 소위 ‘한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 효율성을 강조한 경제 개발 정책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나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IMF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과연 한국의 저력이 무엇인지 관심 가지기 시작했어요. 이를테면 라디오를 만들던 기업이 반도체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이유, 2000년대 초반 선진국 수준의 투자로 컴퓨터를 보급하고 IT 강국으로 발돋움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국의 혁신성과 전환적 사고에 주목하는 것 같습니다.


손혁상 이사장 : 맞습니다. ‘한국의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어요. 개발협력분야에서의 사례를 들어보면,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국제개발처(USAID)로부터 KOICA와 협업하자는 요청을 여러 채널을 통해 받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 이스라엘 국제개발단 등 신흥 개도국의 원조기관으로부터 협력 요청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반대로 9월 한국 외교부와 KOICA의 공동주최로 열린 ‘제14회 서울 ODA 국제회의’에 한국이 참여를 요청하자 수잔나 무어헤드 OECD DAC 의장을 비롯해 여러 인사들이 기꺼이 함께 하겠다며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이제 ‘소집의 힘(Convening Power)’을 가진 시대가 왔다는 것을 실감했어요.




 


인류를 구할 작은 공동체의 힘


손혁상 이사장 : 하지만 국제사회로부터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기여를 요청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6·25 전쟁 폐허에서 재기할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듯이 우리도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KOICA가 맡은 ODA, 국제개발협력이 이 같은 기여의 대표적인 분야입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이제는 ‘혼자만 안전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다른 사람의 안전을 돕는 것이 결국 나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입니다. 한국이 기여할 역할이 늘어나면 비용과 부담도 증가할 것이고 이에 따른 국민적 합의와 감내가 필요할 거예요.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 속에 한국의 기여가 늘고 좋은 평가가 이어지면 우리의 소프트파워가 더 강해지는 선순환을 이끌 것입니다.


이일청 박사 : 저는 한국이 세력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담당하길 바랍니다. 보통 개도국의 개발을 이끌 때 톱다운 식으로 이뤄질 때가 많아요. 또 강대국끼리 뭉친 내셔널리즘을 바탕으로 세계가 공유하는 정책이나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외받는 국가가 생기고 그 나라 이익은 무시되면서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이죠. 더 많은 국가가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을 한국이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이미 경험이 있잖아요? 개도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며 빈곤과 불평등을 줄여나갔던 경험, 그것을 단순히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개도국이 개발 전략을 세우고 실천할 때 조언해 주고 해당 국가가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 손혁상 이사장과 이일청 선임연구조정관과 함께 진행한 캄보디아 교육개발 프로젝트 현지 조사 모습 



손혁상 이사장 : 박사님의 말씀은 세계 평화를 위한 한국의 역할에도 부합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분쟁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데 6·25 전쟁을 겪고 폐허로부터 재기한 한국은 평화조성을 위한 실질적인 방법에서 누구보다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인류공영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규범적 측면과 우리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현실적 측면을 모두 충족할 국제개발협력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더불어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도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두어야 해요. 관심과 참여가 모이면 글로벌 평화에 기여하는 일로 확대될 것입니다.


이일청 박사 : 이사장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세계가 당면한 문제는 너무나도 거대해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이때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해서 바라본다면 쉽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국의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Never doubt that a small group of thoughtful, committed citizens can change the world’, ‘사려 깊고, 헌신적인 시민이 모인 작은 그룹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말라’.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여 믿음을 갖는다면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 거라 생각합니다.




 


연대와 협력을 이끄는 선순환


이일청 박사 :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이사장님과의 에피소드가 생각납니다. 지난 2012년 이사장님께서 진행하시던 한국사회과학연구(SSK) 사업에 참여할 때였는데 당시 나이와 지위를 막론하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또 이를 바탕으로 갈등을 줄이고 조화로운 해결책을 재빠르게 모색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올해 KOICA가 30주년을 맞이하며 중요한 시기에 놓였는데 이 같은 이사장님의 소통 능력과 리더십이 최근 국제개발협력에서 강조되고 있는 수혜자 중심의 개발 협력, 융·복합적인 접근(Integrated Approach)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개발 협력에 바탕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더 옛날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은데 처음 이사장님께서 개발 협력에 관심 가지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손혁상 이사장 : 존경하는 후배이자 학자, 동료인 이일청 박사님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쑥스럽습니다. 5·18 이후 첫 신입생이었던 저에게 서울대와 정치학과는 높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인 동시에 민주화 투쟁이 연일 계속되는 치열한 현장이었어요. 그 현장을 마주친 경험이 개인적인 삶을 넘어 주변과 공동체를 위한 공공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만들어주면서 지금까지 온 것 같아요. 저 역시 지난 10년간 함께 연구하고 교류했던 서울대 후배이자 정치학과 후배인 이일청 박사님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의 개발 협력 이론이 모두 서양학계에서 출발하면서 한국의 기존 개발학과 개발이론을 보완하는 대안적인 접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일청 박사님께서 이 같은 노력에 힘써주시길 바라고 그러한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이일청 박사 : 이사장님의 칭찬이 헛되지 않도록 저도 UNRISD에서 사회적 형평성과 포용, 정의가 바탕이 되는 사회개발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KOICA 역시 한국과 개도국 모두의 ‘상생의 국익’을 위해 협력할 것을 기대합니다.



손혁상 이사장 : 맞습니다. 지금까지 KOICA가 양적(量的) 성장을 잘 해온 것만큼, 앞으로는 양적, 질적(質的) 성장을 모두 발전시키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내려면 ODA 규범 형성과 방향성 선정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OICA 임직원들에게 ‘선도적 글로벌 개발협력기관이 되자’고 강조하고 있는데, ‘선도적’이라는 단어에 그와 같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장해온 것처럼 개발 협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기여하겠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KOICA)

개발도상국의 빈곤감소와 삶의 질 향상, 지속가능발전 및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한국과 우호협력관계 증진을 실현할 목적으로 설립된 공공기관. 1991년 설립 당시 예산 174억 원, 6개 해외사무소로 구성됐던 KOICA는 창립 30주년을 맞는 2021년 예산 9722억 원, 44개국 해외사무소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의 ODA 규모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30개 회원국 가운데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엔 사회개발연구소(United Nations Research Institute for Social Development, UNRISD)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사회개발연구소는 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유엔 시스템 내외의 사회개발 주요이슈에 대한 정책 토론과 대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새로운 개발 접근 방법에 근거한 사회 지표 개발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개발 논쟁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했다. 이후 UNRISD는 경제 성장과 사회 변화에 따른 이익 배분 문제, 대립하는 사회세력의 문제 등에 중점을 두며 학제를 넘어선 다양하고 종합적인 접근을 도모하고 있다.